[코로나19 대구 보고서] (4) 감염병의 시대, 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국가가 결여된 접경지대, 그곳을 누비는 사람들

10:59

[편집자 주] 감염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신종 감염병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내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1차 대유행이 할퀴고 지나간 대구는 극심한 감염병으로 직접적인 피해만큼 사회과 품은 또 다른 아픔도 명징하게 드러냈다. <뉴스민>은 ‘코로나19 대구 보고서’ 기획을 통해 이주민과 난민, 학생과 교사,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통해 감염병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짚고, 감염병에 대응하는 공공의료체계의 현실도 짚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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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기 이주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었다. 국가의 빈자리에 국가의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있다. 네팔에서 온 수잔 가왈리(Sujan Gyawali, 30)는 코로나19 시기 대구에서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코로나19 때문에 직장을 잃어 기숙사에서도 나와야 하는 이주노동자, 또는 출국을 앞두고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지낼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수잔이 운영하는 쉼터로 향했다. 노동 현장에서 사투하는 다른 이주노동자보다 수잔의 사정이 좀 더 나았다. 유학생으로서 대구에서 공부 중이라 여유 시간이 있었고, 브라만 계급이어서 주머니 사정도 비교적 나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구 확산 초기, 한국어 실력이 상당한 수잔도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비교적 빨리 실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 교민에게 방역 수칙부터 감염 상황까지 제대로 알리기에 힘썼다. 교민들에게는 수잔이 사비를 털어 운영하는 쉼터가 도움 됐다. 수잔이 쉼터를 운영하게 된 데에는 누나의 영향이 있었다. 수잔의 누나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한 교민의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일주일 뒤 그 교민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는 한국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길에서 사망했다. 그는 사장의 폭언과 폭행, 출입국에 신고해 네팔로 돌려보내겠다는 협박에 기숙사에서 도망쳤는데 임시로 머물 곳이 없었다고 한다. 누나는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지금 수잔이 운영하는 쉼터를 만들었다. 수잔은 훗날 누나에게서 쉼터 운영을 넘겨받았다.

▲수잔 가왈리가 운영하는 쉼터에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수잔의 교민 사랑은 애향심에서 나왔다. 그는 네팔이, 네팔 사람이 좋았다. 고향 룸비니에서 카트만두로 옮겨 독립생활을 하면서부터 NGO 활동에 매진했다. 2015년 네팔 지진 당시에는 사비를 털어 식료품을 나눴고, 3개월간 봉사활동에도 나섰다. 한국만큼 치안이 좋거나 개발된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끼리 부대끼는 네팔이 좋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도 대구에서 네팔 커뮤니티 활성화와 네팔공산당 지부 활동도 했다.

수잔이 네팔에 기거하던 시기, 네팔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활동은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의 네팔공산당 당원 활동이다. 마오이즘을 추종하는 네팔공산당과 거리를 뒀다. 네팔 내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1 수잔은 그 책임이 마오쩌둥주의 네팔공산당에 있다고 생각한다. 네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해외로 나가 이주노동자가 된 것도 내전 탓이 크다. 한국은 네팔 사람들이 이주목적국으로 선호하는 곳이다.

수잔은 네팔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독립하고부터는 카트만두에서 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꽤 번창했고, 여러 인맥이 쌓이고 직원도 늘면서 수잔 본인도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한국도 처음에는 여행길에 들렀는데, 한국 체류 중 부모님이 한국에서 학위를 따라고 했다. 여행 중 한국에서도 동업자를 통해 사업을 관리하던 수잔은 사업을 넘기고 부모님 말씀을 따라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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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수잔이 코로나19 시기 대구에서 확인한 것이다. 수잔은 네팔에서도 이를 어렴풋이 느꼈다. 네팔 역시 인도에서 오는 이주노동자가 있고, 그들이 네팔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한다. 한국인이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대하는 태도와 네팔인이 자국에 있는 인도 이주노동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다. 이런 착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민족에서? 국가에서? 공포로부터? 인간 본성으로부터?

대구의 패닉 속에서 코로나19와 싸우면서 수잔이 확실히 느낀 것은, 이주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별과 착취는 감염병 위기와 연결된다. 코로나19는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누구 하나만 잘한다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집단만 살아남을 수도 없다. 코로나19는 사회의 취약한 곳을 향해 흘렀다가 다시 더욱 증폭되어 돌아온다. 고용허가제로 네팔 사람이 한국에 가는 것은 국가 간 정당한 계약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네팔은 결코 한국에 네팔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보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의에 관한 문제다.

“한국 좋아요. 안전하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차별이 있긴 하지만, 바꿔야죠. 코로나19는 사람한테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안 묻잖아요? 지금은 온 세계가 연결돼 있어요. 이기는 길은 모두 함께 이기는 길밖에 없어요.”

▲네팔에서 온 수잔 가왈리는 코로나19 시기 대구에서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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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국가가 결여된 접경지대, 그곳을 누비는 사람들

국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지탱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수잔이 네팔 교민들과 함께 버텼듯, 곳곳에서 위기를 함께 넘기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결혼이주여성과 결혼한 한 한국인은 성서공단의 인도네시아 사원을 인도네시아 교민 쉼터로도 활용하도록 했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임소현 씨의 휴대전화는 코로나19 이후 쉴 틈 없이 울린다. 도움을 요청하는 교민들의 전화다.

영주권이 있어 여타 이주노동자보다 자유로운 임소현 씨는 최근 경찰 신고로 미등록 신분이 드러나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의 보호소에 잡혀간 사건 때문에 분통이 터진다. 성서공단 한 공장이 인력감축에 들어서며 한 사람을 해고해야 했는데, 이 일로 두 베트남 교민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둘 모두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는데, 해고된 교민의 지인이 다른 한쪽을 경찰에 신고하면서 신고된 쪽이 출입국에 잡혀가게 된 것이다. 신고한 지인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었고, 결혼이주여성은 영주권이 있어서 추방 위험이 없다.

▲인도네시아 사원에서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 공장 휴업으로 일거리를 찾거나 기숙사에서 나와 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가 이곳에서 머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출입국에 포착되는 순간 강제추방 상황에 놓인다. 그는 성서공단에 8개월 된 딸, 미등록 신분인 아내, 오랜 한국 생활로 이룩한 모든 것을 놔둔 채 급작스럽게 증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남은 가족이 겪는 고통은 더욱 크다. 남은 아내는 아이를 보살피면서 집기를 처분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방도를 혼자서 알아봐야 한다.

남편은 바로 추방되는 것도 아니고 출입국 내 보호소에서 수개월 간 갇혀야 하는 것도 걱정이다. 이주노동자는 자꾸 보호소에 몰려드는데 항공편이 없어 출국하는 사람은 부족하고, 보호소가 과밀하면서 코로나 감염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8월 21일, 딸과 함께 남편을 면회하는 자리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기는 아버지에게 손을 뻗었고 아버지는 입을 맞추려 했지만, 보호소의 이중 아크릴판에 막혀 닿지 않는다. 보호소 안은 이미 한국의 외부다.

▲자진 출국 신고와 남편 보호일시해제 청구를 위해 A 씨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이주노동자 사이에서도 서로를 추방할 정도의 갈등이 있듯, 이들은 단일한 사회 집단이 아니며 다양한 정체성과 이해관계 속에서 접경지대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다문화’라는 개념으로 일축해 동일화해서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이 갖는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문화’로 동일화됐을 때, 이들은 한국인인 것도, 한국인이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된다. 이들은 사실 한국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제도 안에 초청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는 못한다. 이들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들은 불쌍한 존재로 그려질 때에만 제도 안에 수용된다.

이주민은 시혜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주민에 대한 적극적인 방역·의료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마스크를 주지 않아도,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아도, 감염병 예방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그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들은 요구를 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8월, 기니 난민신청인들이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취직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일2이 있다. 법무부는 난민신청인에 대한 난민 불인정 결정 후, 이들이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한 경우 난민 재신청을 할 수 있으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외국인등록증을 회수한다. 등록증이 회수된 난민신청인은 합법적으로 취업 활동을 할 수 없다. 이 난민신청인의 요구는 재신청 결정이 날 때까지 스스로 일을 해서 아이들의 분유 값을 벌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가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요구가 됐다.

▲아주아(가운데, 마이크 든 사람) 씨와 아프리카 출신 난민신청인들이 지난 8월 24일 대구출입국 앞에서 난민신청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니 난민신청인에 대한 보도 후 한 독자가 그의 처지에 공감하며 육아용품 지원에 힘을 보탰다. 기자는 독자가 지원한 물품을 수령해 기니 난민신청인에게 전달했는데, 그는 특별히 고마운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움보다 정의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니 난민신청인의 반응이 의아했는데 이 또한 접경지대 히스테리의 하나로 이해됐다.

코로나19는 평등한데,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대구 이주민의 생존기를 들으며 확인한 것은 이 간단한 명제다. 이주민의 평등은 코로나 극복의 한 조건이다. 대구 이주노동자 코로나19 보고서의 결론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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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네팔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내전 기간 약 17,000명이 사망했다.
  2. 한국 체류 난민재신청 기니인, 자녀 넷인데 취업도 못한다(‘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