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인터스텔라’가 보여준 10차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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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2014년)>는 지구에 몰아친 환경오염과 식량난 때문에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는 내용의 사이언스 픽션(SF) 영화다. 인류가 멸종당할 수 있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의 파일럿이자 엔지니어,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를 비롯해 연구원들과 광활한 우주의 시공간을 헤맨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항성간의’, ‘성간의’라는 뜻이다.

<인터스텔라>는 개봉 당시 큰 성공을 거뒀다. 국내에서만 누적 관객 수 1,032만 명을 달성했다. 돈을 크게 번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관심을 하나로 모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당시 사회 전반에서 <인터스텔라>를 둘러싼 이야기는 이슈가 됐다.

성공과 화제의 요인은 인류를 정복하려는 외계인도, 태초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거나, 인간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를 다스리는 중력이었다. 영화는 과학적 사실주의 이론을 화면에 담았다. 이 때문에 영화는 복잡하고 어렵다. 영화에 내포된 메시지를 읽어내려면 물리학 이론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봉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해한 <인터스텔라>를 이해하기 위한 팁을 소개한다.

<인터스텔라>를 이해하려면 ‘차원’에 대해 알아야 한다. 1차원은 점과 선으로 되어 있고, 2차원은 면으로 이뤄진다. 3차원부터 입체가 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3차원이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4차원이 된다. 현대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를 ‘시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보통 시간과 공간은 구별하고 절대불변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이게 되면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공간의 길이는 짧아지고 시간의 흐름은 느려진다. 절대적인 시공간이 빛의 속도에서 상대적으로 바뀐다고 해서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상대성 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중력이 없는 이상적인 시공간의 현상을 기술하는 건 특수 상대성 이론이고, 중력이 있는 경우의 시공간을 설명하는 건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가 불변한다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관측 사실에 기인한다.

블랙홀은 빛이 휘어진 모양으로 그려진다. 강한 중력에 의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어서 검게 보이는 천체이기 때문이다. 빛이 아주 먼 곳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할 때 블랙홀을 만나게 되면 빛의 경로가 휘게 된다. 사실 빛 자체가 휘어진 것이 아니고 휘어져 있는 공간을 빛이 지나가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불변하니까 빛이 휘어져 있는 공간에선 시간 간격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영화에서 쿠퍼의 우주선이 웜홀을 통해 공간이동으로 날아간 곳은 블랙홀 주변이다. 블랙홀에 가까이 갈수록 시간이 느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쿠퍼 일행의 시간이 지구보다 천천히 흐른다.

영화에서는 극심한 환경오염과 식량난으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에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웜홀이 발견된다. 나사는 웜홀을 통해 무인 위성 선발대에 이어 12개의 유인 우주선도 보낸다. 그 결과 생명이 정착할 가능성이 큰 세 개의 행성인 밀러, 만, 에드먼즈 행성을 찾아낸다. 브랜드 박사는 웜홀을 통해 공간이동을 하면서까지 죽어가는 지구를 떠나 인류가 정착할 새로운 행성을 찾게 된다. 쿠퍼는 이를 각오하고 시공간의 한계에 도전했으나, 시간이 지체되는 위기를 맞고 20년이 넘는 지구 시간을 날려버린다. 쿠퍼 일행이 처음 도착한 밀러 행성은 블랙홀과 가까운 곳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달의 인력으로도 밀물과 썰물이 생겨나는데, 블랙홀이 가까이 있으니, 산맥보다 높은 쓰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쿠퍼의 여정은 블랙홀의 이벤트 호라이즌(사건의 지평선)에서 종료된다. 브랜드 박사를 마지막 행성인 에드먼즈로 보내기 위해 쿠퍼는 희생한다. 우주선의 궤도를 이벤트 호라이즌에 근접시키고 본인이 탄 착륙선과 브랜드 박사가 탄 우주선을 분리시킨다. 블랙홀에 의한 위치에너지를 우주선의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킨 것이다. 연료를 모두 써버린 로켓에서 연료통을 분리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속도를 얻는 원리와 같다. 여기에서 얻은 에너지로 브랜드 박사는 에드먼즈 행성으로 이동한다. 대신 쿠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영화에서 블랙홀 내부는 5차원의 공간으로 구현된다. 격자로 구성된 5차원에서 쿠퍼는 4차원인 딸 머피의 방에 담겨진 모든 순간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5차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영화에서 4차원 공간이 수없이 겹친 것처럼 보이는 격자 공간을 구현한 것은 5차원의 공간 이론에 근거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쿠퍼는 블랙홀 안에서 딸 머피와 교신한다. 이론적으로 블랙 홀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신호는 없다. 쿠퍼가 머피와 교신한 건 중력이다. 이는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아주 작은 끈의 진동으로 생겨난다는 초끈 이론에 따른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으로 보고 이 작은 끈의 진동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초끈 이론에서는 10차원이 존재한다. 10차원의 세상에서 인간은 4차원의 공간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차원의 수가 늘어나면 인간이 상상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세상 너머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전자기력도, 빛도 전파되지 않는 공간에서 중력은 전달된다는 이론에 착안해, 영화는 쿠퍼가 블랙홀 속에서 자신이 경험한 양자중력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중력을 이용한 모스부호로 머피에게 전달한다. 영화 초반부 쿠퍼의 집에서 서고에 꽂아놓은 책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중력 이상 현상은 5차원의 공간에 갇힌 쿠퍼가 벌인 짓인 것이다. 5차원에서는 한 단계 낮은 4차원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인과율(因果律)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머피는 쿠퍼의 도움을 통해 실현 불가능한 중력방정식을 풀어낸다. 쿠퍼가 머피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건 블랙홀에 함께 빨려 들어간 인공지능 로봇 타스 덕분이다. 타스는 블랙홀의 양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 양자 데이터를 모스부호로 옮겨 쿠퍼에게 알려줬다. 결국 중력방정식을 완성시켜 대다수의 인류를 직접 새로운 행성으로 보내는 게 가능해졌다.

그 후 쿠퍼는 다차원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웜홀을 통해 다시 태양계로 복귀한다. 우주에서 홀로 떠돌고 있던 쿠퍼는 자신을 우연히 발견한 우주선에 의해서 구조가 된다. 쿠퍼에게는 아주 짧았던 이 시간이 딸 머피에게는 100여년의 세월이었다. 딸이 임종하기 직전, 부녀는 다시 재회한다.

<인터스텔라>는 웜홀, 시공간의 초월, 고차원, 상대성 이론 등 이해하기 어려운 물리학 이론이 혼재되어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우주여행이라는 설정에서 우주의 광활함과 신비롭고 환상적인 자태만을 전했다면 그저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 이론적인 가정이 가능한지 따졌다면 고리타분한 수학 시간이 됐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어렵고 복잡한 설정에 가족애, 동료애, 인류애 등 사랑을 입혔다. 다양한 종류의 사랑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우주의 먼지처럼 작고 무력한 인류에게는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