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도 용납할 수 없는 과거사 청산

마푸체 민족사를 통해 들여다 본 세계사 (2)

14:27

칠레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1973년 칠레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들어선 군사독재정권이 1990년에 들어서야 선거를 통해 물러나고 여러 가지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있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의 희생자 딸인 미첼 바첼렛이 칠레 대통령이 되기까지 했으니 그러한 과거사 청산은 꽤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재정권이 남긴 경제 체제를 고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했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나, 정치의 자유만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정부마저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 과거사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칠레 사회가 마푸체 민족에게서 빼앗아간 토지 및 영토 반환 요구였습니다. 칠레 정부는 19세기 동안 펼친 정복전쟁으로 마푸체 민족의 안데스 서쪽 영토 약 1000만 헥타르를 모두 빼앗고, 생존자들을 좁은 공간에 나누어 밀어 넣었습니다. 이 토지들을 “레둑시온(Reducci?n)”이라 하였는데, 이 레둑시온의 폭은 50만 헥타르 정도, 그러니까 원래 영토의 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웨누포예. 현대 마푸체 민족운동에서 사용하는 깃발.[출처=[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lag_of_the_Mapuches.svg]
▲웨누포예. 현대 마푸체 민족운동에서 사용하는 깃발.[출처=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lag_of_the_Mapuches.svg]

게다가 그 5%마저도 갖가지 명목으로 계속 빼앗겨 다시 20만 헥타르 정도를 잃었던 것입니다. 칠레 정부는 그렇게 빼앗은 땅을 유럽에서 온 이민자와 칠레인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 모든 것이 마푸체 야만인을 문명인 사이에서 살며 문명을 배우도록 하는 혜택을 베푸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마푸체 대부분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새로 조직을 갖추고 칠레 사회 내 권력 투쟁을 이용해서 그나마 남은 땅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빼앗긴 토지를 일부 되찾는 단계에 이르렀던 것은 쿠바 혁명 이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토지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의 인민연합 정권 시절에 그런 활동이 매우 활발해서 “카우틴(Caut?n)” 지역의 토지 점거 및 반환 요구 물결은 “카우티나소(Cautinazo: 카우틴의 충격)”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마푸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극좌의 선동에 따른 무정부 상태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세력은 이미 쿠데타 얼마 전부터 마푸체를 공격하며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시작했고(이때 군부의 행보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온 아리엘 도르프만의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에 일부 나와 있습니다),

쿠데타 이후에는 더 거침없는 행보에 나서며 당시 레둑시온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던 마푸체 공동체들 자체를 해체해 버리려 시도했습니다. 이에 맞서 레둑시온의 공동체 소유 토지를 지키려는 마푸체의 노력은 피노체트 정권 시기 주요 저항 운동의 하나로 자라났습니다.

피노체트 정권 이후 나타난 민주정부는 이러한 마푸체 운동의 지지 또한 구했으나 모든 마푸체 운동이 칠레인들의 정부와 협력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몇은 아옌데 정부의 몰락과 함께 멈췄던 토지 회복 운동을 재개하려 했고, 이를 체제 전환 시기의 안정을 바란 정부 쪽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92년, 199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토지 점거 및 반환 요구를 이끌던 마푸체 조직 “모든 영토 위원회(Consejo de Todas las Tierras)의 일원 144명이 “강탈” 및 “불법조직 결성” 죄로 체포되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강탈” 및 “불법조직 결성”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은 마푸체 민족은 여전히 칠레 식민주의 아래 살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과거사 청산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식민주의는 결국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