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지자체 주최 미인대회, ‘홍보요원’이라는 궁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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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물 아가씨(미인대회)가 사라져 간다. 마지막까지 대회명에 ‘아가씨’라는 이름을 고수했던 영양군이 올해는 홍보사절로 이름을 바꿨다. 영양군 유통지원과 관계자는 ‘홍보요원’이라는 말을 쓰면서, 미인대회가 문제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렇지만 홍보요원으로 ’20대 젊은 여성’이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관련기사=성 상품화 논란 미인대회, 올해 경북에선 영양만 개최(‘24.06.03))

젊은 여성들이 ‘꾸밈노동’을 통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주로 ‘나이든 남성’ 심사의원들로부터 세세하게 외모 평가를 받는 대회 방식부터 문제다. 까만 양복을 입은 군수를 비롯한 나이든 남성 대회 관계자들과 색색깔의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치장한 20대 초반 여성 참가자들이 등장한 대회 시상식의 한 장면은 고전적 ‘성 상품화’의 한 장면이다. 영양군 홍보를 위한 요원 선발에 참가자를 젊은 여성으로 한정하고 참가자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걸 ‘성 상품화’라고 한다. 대회명이 무엇이든, 공공기관이 성 상품화에 나서는 상황이 문제의 본질이다.

영양군 인구는 불과 1만 5,508명으로 경북 기초지자체 중 대표적인 소멸지역이다. 2024년 기준 전체 여성이 7,768명인데 그 중 20~24세 여성은 199명에 불과하다. 참가자격은 ‘미혼여성’으로 다시 제한된다. 주최 측은 지역 내 지원자들이 적어 몇 년 전부터는 지원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올해는 대회 자격 요건을 26세까지 늘렸다. 대회를 없애거나 성격을 바꿀 수도 있는데 영양군은 참가 대상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특산물 홍보 요원에서 중요한 건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전문성 보다 외모라는 것일까. 어떤 설명을 갖다 붙여도 ‘여성의 외모’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미인대회의 성격을 지우기는 어렵다. 홍보요원이라는 말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 ‘제20회 영양 고추아가씨 선발대회’ 모습. 영양군은 올해는 ‘아가씨’라는 이름을 대회명에서 빼고, 홍보사절로 바꾼다. 경북에서 유일한 미인대회다. (사진=영양군)

지난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을 신체 등급화하고 전시하는 미인선발대회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지자체장의 예산 지원 및 사업 운영의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영천시는 만 18세 이상 35세 미만 남녀를 대상으로 참가자를 받아 ‘제1회 영천 포도피플’선발대회를 열면서, ‘미인대회를 연상케하는 복장 지양’이라고 명시했다. 참가자를 남성으로 확대하면서 특산물 홍보 행사가 미인대회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의 복장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을 쳐다보는 관객의 시선도 다를 수 있다. 그건 대회만 탓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 사회에 아주 뿌리 깊게 내려진 성 역할 고정관념은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어야 한다.

수년 전 안동시는 한우아가씨 선발대회에서 홍보사절로 대회명을 바꾸고, 수영복 심사도 없앴다. 그럼에도 경북 다른 기초지자체에서 대회 자체를 폐지하거나 남성까지 포함해 미인대회 성격을 아예 바꿔버리자 대회 지속 여부에 고민이 있다고 했다. 그게 1년 전 안동시 축산진흥과 관계자의 말이었다. 같은 질문을 최근 다시 물었다. 그러자 “2년 뒤에도 안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부정적인 사회 인식도 있고, 주최 측은 어떨지 모르지만 (시의) 행정적인 부분에서는 대회 개최에 부정적 기류가 있다”고 했다. 결국 영양군도 안동시나 다른 지자체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론에 떠밀리는 쪽보다 영양군이 대회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서서 없애는 선택을 했으면 한다. ‘홍보요원이 미모의 젊은 여성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부터 찾아야 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