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욕구는 곧 창조의 욕구다!”: 미하일 바쿠닌 ③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 (12)

12:31

4. 소유권 사상: 집산주의

바쿠닌은 자유를 위한 사회혁명 사상의 현실적 실현가능한 모델로 집산주의(collectivism)를 제안한다. 그는, 근본원칙으로 생산수단의 집산화를 선호하고, 이 생산수단이 집산화된 상황을 ‘집산주의’라고 불렀다(玉川信明(이은순 옮김), 78쪽). 그가 제안한 집산주의는 점차 발전된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집산주의적 아나키즘’(collectivist anarchism) 혹은 ‘아나르코-집산주의’(anarcho-collectivism) 등으로 불린다.

“부는 늘 그리고 지금도 권위?권력?지성?지식?자유와 같은 모든 인간의 문제 실현에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정치권력과 부는 땔래야 땔 수 없는-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가와 사유재산은 땔래야 땔 수 없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바쿠닌은 일찍부터 경제문제에 주목하고, 국가와 사유재산제도의 양립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집산주의의 핵심은, ‘국가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다. 이를 위하여, 그는 개인(특히 노동자)의 국가에 대한 반역과 맑스와 같은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개인의 연대를 통한 혁명을 주장한다. 바쿠닌의 집산주의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코뮌주의’와 ‘노동조합주의’에 바탕한 생산수단의 집산화와 상속권의 폐지다(玉川信明, 79쪽).

먼저, 생산수단의 집산화와 관련하여 정치적 기본단위로서 ‘코뮌주의’와 경제적 기본단위로서 ‘노동조합주의’를 주장한다. 전?후자를 나누어 살펴보자.

바쿠닌은 코뮌주의에 바탕한 생산수단의 집산화를 위하여 국가와 사회를 구별한다. 즉, 그는 국가가 아니라 ‘사회의 자연적 연대’에서 집산주의의 근거를 구하고 있다. 그에게 국가는, ‘압제의 인위적 도구’인 반면, 사회는 ‘인간을 서로 연결하는 본능적, 자연적 유대관계의 확장’이다.

“국가는 인간의 인격 속에 내재된 사회적 본능을 해방시키기 위해 말살되어야 하는 사유재산제도나 법률적인 강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외된 권력 또는 반사회적 권력이다. 이에 반하여 사회는 내면화된 조정형태를 제공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환경을 말하며, 또 그러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이 생리화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회는 ‘자연의 산물’이다. 사회는 국가 없이도, 또 어떤 형태의 간섭 없이도 잘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바쿠닌은, 국가는 ‘극히 중요하며 자연적인’ 사회의 결속체를 분산시킴으로써 팽창을 유지하는 소외된 사회세력이라고 본다(김우현?배규성, 26~27쪽).

그래서 그는 국가를 대체하는 ‘자유 정신에 입각한 사회 통합의 원리’로서 ‘연합주의’(혹은 연방주의 federalism)를 제안한다. 이 연합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 바로 ‘코뮌’이다.

“자유결사와 자유연합의 원리에 의하여 질서와 조직이 ‘아래로부터 위로’, 그리고 ‘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형성되어 나아간다.”

그는 연합주의에 따라 사회는 재구성되고 재조직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원리에 따라, 개인들은 코뮌으로, 코뮌들은 지방으로, 지방들은 민족으로, 민족들은 유럽합중국으로, 그리고 종국적으로 전 세계 합중국으로 결속한다는 게 바쿠닌의 연합주의 사상*이다(이종훈, 134쪽).

그의 이 사상은 “사회는 자연의 질서”라는 관념에 입각한 것이다. 이것이 그 후의 개인적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하나의 사상으로 확대?발전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6남 4녀의 대가족에서 성장하였고, 이탈리아 남부에 체류하고 있을 때 자유코뮌의 형태인 농민집단촌을 보았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는 ‘미르’(mir)라는 농민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바쿠닌의 코뮌주의는 원칙적으로 ‘소규모 자치 코뮌’(small autonomous communes)이다. 이 코뮌은 어느 개인이 타인을 위해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자연적?본능적 연대를 기초로 국가를 파괴하고 구성원의 절대적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다(김우현?배규성, 54쪽). 그는 이 코뮌을 정치의 기본단위로 설정하고, 이와 더불어 경제의 기본단위인 ‘노동조합주의’를 제안한다(이종훈, 135쪽).

바쿠닌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뿐 아니라 비노동자들의 ‘순수하고 본능적인’ 혁명능력을 믿고 있다. 이 점은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가 위로부터 조직된 ‘노동계급’에 의한 혁명을 의도하고 있는 것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그는 반란의 본능은 모든 억압받는 대중계급(예: 노동자 계급 외 사회의 가장 어두운 요소들, 원시적 농민, 도시빈민가의 실업자, 방황자, 무법자 등과 같은 인간의 비참한 노예화를 발판으로 삼아 번성하는 이들에게 대항하는 모든 계급)의 공유물로 보고, 그 근거를 러시아지방의 맹목적이고 무자비한 폭동의 오랜 역사, 특히 농민공동체의 특징인 ‘러시아 인민의 오래된 사회적 본능’에서 찾았다(김우현?배규성, 60·61쪽).

바쿠닌이 노동계급 이외 ‘모든 억압받는 대중계급’을 사회혁명세력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가난한 자들은 이미 진짜 집단적인 생활의 기원을 가지고 있고, 사회혁명은 바로 그 가난한 자들의 생활양식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김우현?배규성, 60·61쪽).

따라서 만일 그들이 결속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국가라는 노예제에 종속된 상태에서 영원히 신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결속하기만 하면, 국가와 자본가에 대항하는 막강한 정치적?경제적 힘을 가지게 되어 마침내 그들을 이길 수 있다(이종훈, 135쪽). 결국 바쿠닌은, 국가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사회혁명의 이념은 ‘가난한 자들의 결속과 연대’를 통하여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집산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다음은, 상속권 폐지에 관한 문제이다. 바쿠닌은 생산 수단의 집산화와 더불어 사유재산 가운데 상속권의 폐지를 주장한다. 상속권이 존속하는 한 계급?지위?자본의 세습에 의한 차별, 즉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도 여전히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속권 폐지에 관한 그의 관념 그가 작성한 <상속문제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Commission on the Question of Inheritance: 1869)에 잘 드러나 있다.

“그러나 무엇이 노동에서 소유와 자본을 분리하는가? 무엇이 경제적?정치적?계급의 차이를 구성하는가? 또 무엇이 평등을 파괴하고, 불평등과 소수의 특권, 그리고 다수의 노예상태를 영속시키는가? 그것은 바로 상속의 권리(상속권) 때문이다.”

바쿠닌은, “상속권이 모든 경제적?정치적?사회적 특권을 생성하는 방법을 보여줘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계급의 차이는 상속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상속권이 자연적이고, 개인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상속권이란 개인이 사라지면(죽으면) 자연히 소멸하는 권리다. 이에 반하여 개인이 가문이나 출생, 계급의 차이로 인해 상속권을 부여받고, 그로 인하여 ‘모든 억압받는 대중계급’이 노예상태에서 영원히 착취 받는 것이 정당한가? 바쿠닌은 그 원인이 바로 상속권에 있다고 주장한다.

“상속권이 기능하는 한 우리는 경제적?사회적 및 정치적으로 평등한 세상에 살 수 없다. 그리고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억압과 착취가 있을 것이다.”

상속권에 관한 바쿠닌의 이와 같은 주장을 둘러싸고 제1인터내셔널에서 맑스와 격렬하게 충돌하였다. 특히 1869년 바젤 대회에서 그들간의 이견은 공개적으로 표출되었으며, 1872년 헤이그대회는 결국 제1인터내셔널에서 바쿠닌을 제명하는 결정을 내린다.** 1869년 8월 2~3일 맑스가 작성하고, 8월 3일 총평의회가 승인한 <총평의회 보고서: 상속권>에는 이 주제에 대한 두 사람의 명백한 견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상속은 한 사람의 노동의 산물을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 이전하는 권력을 창출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권력을 발휘하는 개인들 사이에서의 변화에 관련될 뿐이다. 민법을 포함한 다른 모든 법처럼, 상속법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생산 수단 즉 토지, 원자재, 기계 등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기존의 경제적 사회 조직의 법률적 귀결이다. 동일하게, 노예에 대한 상속권은 노예제의 원인이 아니며, 반대로 노예제가 노예 상속의 원인이다.”

맑스는 “우리가 움켜쥐어야 하는 것은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다”고 하면서, “사회 상태가 충분히 발전하고, 노동자 계급이 이 같은 제도들을 폐기할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가진 곳에서, 노동자들은 이를 직접적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국채를 없앰으로써 그들은 국채의 상속도 당연히 함께 없애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들이 국채를 폐지할 권력을 갖지 못한다면, 국채의 상속권을 폐지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상속권의 소멸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지양하는 사회적 변화의 자연적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상속권의 폐지는 이 같은 사회 변혁의 출발점이 결코 될 수 없다.“

이 보고서에서 맑스는, “상속권의 폐지를 사회 혁명의 출발점으로 선포하는 것은, 현재 사회에 맞서기 위한 진정한 공격 지점에서 노동자 계급의 눈을 돌릴 뿐이다”라고 비판한다. 그리고는 “상속에 관한 이행적 조치들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a. 많은 국가에서 이미 현존하는 상속세의 확대, 그리고 이렇게 얻어낸 기금을 사회적 해방의 목적에 활용
b. 유언 없는 상속이나 가족의 상속권과 달리, 사적 소유의 원리 자체에 비추어 볼 때도 자의적이고 미신적인 과장으로 보이는, 유언에 따른 상속권의 제한“(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와 바쿠닌(1)“)

‘상속세의 확대를 통한 기금의 사회적 해방 목적에 활용’이란 맑스의 주장은 ‘공공육성기금만의 상속 허용’이란 바쿠닌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상속세의 확대를 포함한 일체의 상속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바쿠닌의 주장과는 본질면에서 차이가 있다. 다분히 이상적이고 혁명적 사회상을 꿈꾸었던 그의 사상은 현실적으로는 실현가능성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속권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자유와 평등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그의 주장 앞에서는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평생 자유를 위해 헌신한 그의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모든 사람-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자유로울 때 나는 오직 진정으로 자유롭다.”


* 바쿠닌의 코뮌에 대한 관념은 연합(연방) 사상으로 발전한다. 그의 연합 사상은 ‘범슬라브민족연합(연방)구상’, ‘범슬라브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쿠닌의 반국가주의와 집산주의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그의 연합(연방) 사상은 그리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의 연합 사상의 맹아는 혁명적 범슬라브주의에 관한 정치강령에 이미 나타나 있다.

범슬라브민족연합 구상에서, 그는 ’슬라브평의회‘(Славянский совет)라는 제민족 대표기관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관은 슬라브세계에서 최고권력 및 최고법원의 기능을 담당하고, 모든 슬라브인은 이 ’평의회‘의 명령과 결정에 따를 의무가 있다. 또한 ’슬라브평의회‘는 외국에 대하여 국권을 발동하여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마디로, 연합의 주권적 주체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山本健三, “M.A. バク?ニンにおけるスラヴ問題: ?究史と問題提起”, p. 326).

** 맑스주의자와 바쿠닌은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하였다. 바쿠닌이 친구이자 그의 지지자인 알베르 리샤르에게 보낸 ‘비밀 독재를 수립하자’는 다음 편지 내용도 맑스주의자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폭풍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선장이 돼 혁명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나 공개적 권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동맹의 집단적 독재로서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 배지 따위도 달지 않고 공식 직함이나 권한도 없이 독재를 실행할 것입니다. 그 독재는 드러나지 않을수록 더 강력한 권력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입니다.”(존 몰리뉴(이승민 옮김),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책갈피, 2013, 61쪽에서 재인용)

하지만 이 편지는 그가 친구 네차예프에게 쓴 아래 편지와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 볼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인정된 것도,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것도 없는 힘. 우리들 결사의 집단적 독재에 의해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힘은 공인된 것이 아닌 만큼, 또한 어떠한 권한도, 가치도 부여받지 않은 만큼 한층 강대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

… 이 독재는 어떠한 사리?사욕?허영?야심도 가지지 않은 청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이 발현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집단을 구성하는-특정한-구성원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다. 또 여러 집단들에게 어떠한 이익이나 명예, 그리고 공인된 권력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독재는 인민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다.“ (玉川信明, 79쪽에서 재인용)

바쿠닌은 스스로 ‘위대한 음모가’를 꿈꾸었고, 일종의 ‘과도기적 권력’으로 비밀리에 일종의 ‘독재권력’을 인정하기를 원했다. 그는 ‘비독재의 독재’를 꿈꾼 것이다(玉川信明, 79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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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석주, “슬라브애호주의의 사상적 기원: 끼레예프스끼와 셸링이 사상적 관계성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제12권 제1호.
?박홍규, <자주?자유?자연’ 아나키즘 이야기>, 이학사, 2004년.
?배규성, <미하일 바쿠닌: 자유, 혁명 그리고 유토피아>, 세명, 2003.
?이종훈, <바꾸닌의 아나키즘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강대학교 대학원, 1993.
?이종훈, “바꾸닌 사상에서의 자유와 사회 혁명의 문제”, 서양사론 제45호.
?장 프레포지에(이소희?이지선?김지은 옮김), 《아나키즘의 역사》, 이룸, 2003.
?존 몰리뉴(이승민 옮김),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책갈피, 2013.
?E.H. 카(이태규 옮김), <미하일 바쿠닌>, 이매진, 2012.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마르크스와 바쿠닌(1)“, <사회운동> 2008.1-2, 80호에서 재인용.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journal&nid=4290)
?Mikhail Bakunin, <Man, Society, and Freedom>(1871)
?Mikhail Bakunin, <The Reaction in Germany)>(1842)
?Mikhail Bakunin, <The Reaction in Germany: From the Notebooks of a Frenchman>(October 1842)
?Mikhail Bakhunin, <Statehood and Anarchy>(1873)
?Mikhail Bakunin, <Report of the Commission on the Question of Inheritance>(1869)
?Michel Bakounine, <Oeuvres>, tome I, 1900.
?Michel Bakounine, <Oeuvres>, tome III,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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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Gray, <The Socialist Tradition, Noses to Lenin, London-New York-Toronto, 1946.
?バク?ニン(勝田吉太??), <神と?家>(世界の名著, 第42?), 中央公論社, 2005.
?玉川信明(이은순 옮김), <아나키즘>, 오월, 1991.
?勝田吉太郞, Katsuda Kichitaro, “バク?ニンの革命思想: マルクス主義との?決”, スラブ?究(Slavic Studies), 3:7-65.
?山本健三, “M.A. バク?ニンにおけるスラヴ問題: ?究史と問題提起”, http://src-home.slav.hokudai.ac.jp/publictn/slavic-studies/50/yamamoto.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