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도 제주4.3항쟁 70주년 추모···”미군정에 저항한 민중 투쟁”

5일까지 대구백화점 앞 시민 분향소 마련

17:50

“4월이 지나고, 기념식이 지나면 또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역사입니다.” –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 

3일 오후 1시, ‘4.3항쟁70주년 대구행사위원회’가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4.3항쟁의 역사적 의미 재정립을 요구하고, 희생자 분향소를 마련했다.

▲3일 오후 1시, ‘4.3항쟁70주년 대구행사위원회’가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4.3항쟁의 역사적 의미 재정립을 요구하고, 희생자 분향소를 마련했다. (사진=정용태 기자)

이들은 “제주 4.3의 아픈 과거를 청산하고 치유하는데 일부 진전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명예회복은 말뿐인 명예회복이었다”며 “가해 책임자의 범죄 사실을 밝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1948년 당시 미군정은 물론 정부 수립 후에도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했던 미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2000년 제정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상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 통치에 반대하던 민중들의 저항은 전국에서 벌어졌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열린 ‘3.1기념대회’에서 경찰 발포로 시민 6명이 사망하자, 이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미군정에 대한 저항도 계속됐다. ‘제주4.3사건 진상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2~3만 명 제주도민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3.1 독립운동을 기리는 제주도민들에게 미군정은 총부리를 겨누었다. 도민들은 미군정이 잘못됐다며 다양한 항거를 했지만, 늘 총부리에 가족들을 잃어야 했다”며 “제주4.3항쟁은 자주, 자치,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민중의 투쟁이었다”고 강조했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도 “추모곡을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 역사는 잘못된 억압에는 반드시 항쟁이 따르랐다. 하지만 끊임없이 잘못된 억압이 이어지고 있다”며 “10월항쟁, 여수반란사건, 제주4.3항쟁의 역사를 바로 재정립하고, 전국에서 억울하게 학살된 원혼들을 위해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행사위원회는 “4.3은 단지 1948년 4월 3일의 봉기가 아니라 해방 이후 지역 공동체를 일구고 분단에 반대하며 통일된 나라를 세우고자 싸웠던 과정 전체를 지칭한다”며 “4.3의 진실과 교훈은 올곧게 전해져야 한다. 정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의 나라로 가는데 모두 함께 나서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부터 5일까지 대구백화점 앞 시민 분향소를 운영하고, 미국과 유엔의 책임을 촉구하는 서명도 받는다. 또, 이날 오후 7시 대구백화점 앞에서 지역 인디 음악인들이 ‘4월에는, 바람의 노래를 불러요’ 거리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한편, 제주4.3항쟁은 지난 2000년 ‘제주 4ㆍ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진상규명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