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차광호

45미터 굴뚝 위에서 400일을 보낸 차광호를 위하여

12:31

015년 6월 28일 일요일. 45미터 굴뚝 위에서 398일을 버틴 노동자 차광호 동지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오늘도 리프트에 오른다. 10번째 오르는 길. 오늘도 성정미 헤아림숲치유센터 대표가 동행했다. 그녀는 이제 4번째. 그녀나 나나 고소 공포증이 있기는 마찬가지. 그녀가 눈 감고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서 오르지만, 나는 앉아서 눈을 감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주문으로 외며 조금은 씩씩하게, 안 무서운 척 올라간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겠다. 리프트가 덜컹거릴 때마다 만약 떨어지면 어떻게 매달려 있을까 상상을 한다. 게다가 오늘은 안전띠가 하나밖에 없어 만약 사고 나면 내 팔힘이 나를 살릴 유일한 희망인 것. 굴뚝에 오른 한 달 동안 굴뚝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는 차광호의 말이 떠오른다. 45미터는 보통 번지 점프하는 높이. 아파트로 치면 15층? 오를수록 적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무섭게 상상력은 자라난다. 차광호의 품에 안겨 꼭대기에 내릴 때야 이제 반쯤은 살았구나 한다.

그의 얼굴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일단 안도.

처음 진료를 위해 굴뚝에 오르던 때가 생각이 난다. 리프트에 오르기 전 사측 직원이 내 가방을 뒤졌다. 우의, 작은 텐트 등을 빼앗겼고 같이 먹으려던 초코렛도 빼앗겼다. 당시에는 밥만 올라갈 수 있었고, 굴뚝 위에는 비닐 하나만 허공에 처져 있어 비가 오는 날이면 온 밤 비닐을 뒤집어쓰고 비가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고 했다. 초코렛도 빼앗기고 가져간 인스턴트커피마저 빼앗으려는 걸 무지무지 화를 내고 커피만은 겨우 지켜냈다. 어이가 없는 행태였다. “먹고 싶으면 내려 와서 먹어야죠. 왜 남의 땅에 올라가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지…” 직원의 말에 “생각 좀 하며 삽시다.”하고 쏘아붙이고 올라왔지만 불쾌한 마음은 쉬 가라앉지 못했다. 굴뚝이 서 있는 이 땅은 과연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땅인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지배는 인간에 대한 물상의 지배, 살아있는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지배, 생산자에 대한 생산물의 지배이다. 왜냐하면 노동자에 대한 지배수단(자본 그것의 지배 수단에 지나지 않지만)으로 되는 상품들은 사실상 생산과정의 결과이고 생산 과정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전도는 부 자체의 창조, 즉 자유로운 인간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유일하게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의 무자비한 발전을 대중의 희생으로 강요하기 위한 필연적 통과점으로 나타난다.>(마르크스. 『1861-1864 초고』)

“얼굴 좋은 것 같은데요?”
“요즘은 몸의 감각 하나하나를 다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400일 금욕 생활한 보람이 있네요.”
“내려가면 바로 아기 생기겠는데요?” 성정미 대표가 농을 던지자 모두 킬킬거렸다.
“지난번 텐트 안에 안 들어가고 아래가 내려다보이게 앉아있다 간 후 밤새 굴뚝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어요.”

성 대표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도 지난번 아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 앉아 있으면서 스멀스멀 숨었던 공황 증상이 나타나 서둘러 내려왔던 터였다. 잠시 있어도 이런데 300일 넘게 어떻게 견뎠을까 새삼 그가 아프게 다가왔었다. 바깥이 덜 느껴지는 비닐 천막 안의 온도는 32도. 여러 잡동사니들은 남자의 자취방 딱 그만큼 정돈되어 있다.

“아프다더니 어디가 아픈건가요?”
“운동하다가 어깻죽지 쪽에 통증이 오더니 자고 나면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아마 담이 걸린 것 같습니다.”

진찰상 특별한 문제없어 말 그대로 염좌 정도인 것 같았다.

딱 한 번, 그가 울음이 터지기 직전까지 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심리 치유를 하는 성정미 대표가 있었고 그와 대화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많은 마음의 갈등,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 등등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가 굴뚝에 올라오고 몇 번 진료하면서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우울증이었다. 젊으니 육체적 문제야 아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견디리라 예상을 했지만, 마음의 병이 그를 괴롭히지 않을까, 그것이 가장 크게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그는 잘 견뎌 주었고, 그가 잘 견디는 만큼 굴뚝 밑의 경찰 메트리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방치되고 있었다.

성정미 대표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10분이면 내려올 궁리를 했을지 모른다. 말 잘 안 하는 경상도 남자 둘이 뭔 말을 길게 하겠는가. 사람 좋은 성 대표가 조곤조곤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굴뚝 위에도 잠시간 활기가 넘친다. 사랑방 같다. 사람이 누군가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언젠가 그가 말 한 적이 있다.

그가 왜 굴뚝에 올라갔는지 지금 처음 보시는 분이나 잘 모르시는 분은 인터넷 포털에 ‘차광호 스타케미칼’을 치던지 본 <뉴스민> 기사를 검색해 보시면 된다.

다만 굴뚝 농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알고 싶다면, 이런 것이다. 이제 꼭 400일째 굴뚝에 올라가 있는 차광호, 그와 함께 굴뚝 밑에서 차광호만큼 힘겹게 싸우고 있는 스타케미칼 해복투 노동자들, 바로 이 사람들을 보라(Ecce Homo)는 것. 그들이 왜 힘겹게 싸우고 있는지, 또 그것이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이제 ‘노동자 운동’ 혹은 운동의 ‘노동자 중심성’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어느 측면에서 그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지리멸렬한 운동의 시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들이 틀렸다는 것을 논증하기 이 전에 우리는 이 말들이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해졌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끌려온 예수를 두고 군중들에게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말한 빌라도처럼 우리의 손을 씻기 위해, 우리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왜 저기 있는가?

차광호와 스타케미칼 해복투 노동자에게 오늘은 힘찬 박수를 보내자. 모든 승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패배에 대해서도 우리는 갈채를 보내야 한다. 함께 한다는 것,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우리의 사랑법 아니겠는가?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랑,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안도현 「사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