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말의 힘, 장애 혐오 표현 그리고 ‘대구스럽다’

13:03

프랑스면 파리, 파리하면 루브르를 다녀와야 “나 파리 좀 가봤어” 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나는 하물며 거길 세 번이나 다녀왔다고 자랑을 좀 늘어놓겠다. 온 세상의 난다긴다 하는 예술품들을 모아 놓은 루브르 리슐리외관에는 독특한 그림이 하나 있다.

온통 화려한 왕과 귀족. 혹은 찬란한 엄숙한 신들의 그림이 아니라 익살스럽긴한데 뭔가 불편한 16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풍속화가인 피테르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의 그림이다. 작품명은 ‘The Blind Leading the Blind(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 하는 업이 무섭다고, 딱 봐도 장애인을 그린 듯한 그림이고, 작품명 역시 그러했기에 작가가 누군지, 뭘 의미하는 건지, 그 자리에 서서 검색을 해봤다. 작품명은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가져온 거였다.

▲브뢰헬,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1568년 캔버스에 템페라, 86*154, 루브르, 파리

다행이랄까? 브뢰헬이 장애인을 비하하기 위해서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마태복음에서 어리석은 지도자를 비유하는 내용의 문구를 그림으로 나타냈을 뿐이고(장님이 장님을 이끌면 둘 다 구덩이로 빠진다는 마태복음 15장 14절 구절. 잘못된 지도자는 모두를 혼란에 빠트린다는 비유로 역시 부정의 비유), 풍속 화가다 보니, 그림체가 조금 더 익살스러웠으리라 이해를 하고 넘어가자 했다.

요즘 논란이 되는 정치인들의 비유적 표현을 보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다. 부정적 상황을 장애에 비유하는 것의 역사가 오래도 되었구나 싶었다. 16세기 북유럽에서도 그랬고, 서기가 시작되자 마자 마태오가 복음서를 쓸때도 그러했구나 싶다.

뭐든지 적절한 비유는 대중의 인식을 환기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 효과가 좋다는 말이다. 문제는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장애를 부정적인 상황으로 비유하는 것을 지속하는 것은 올바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장애가 비유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긍정적인 비유는 없었다. 마태오도 나쁜 지도자를 장애에 비유했지 않은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비유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 확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하지 맙시다’ 하는 거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이것저것 있습디다. 왜 못쓰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굳이 대답을 하자면 “못 쓰는게 아니라, 쓰다 보면 장애는 계속 나쁜 거라는 인식이 박히고, 그 인식은 결국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을 더 만들어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좀 자제합시다”정도가 된다.

“대구스럽다”는 말이 ‘보수적이고 말이 통하지 않고 형편없다’는 뜻으로 요즘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구시민으로서 몹시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대구스럽다’가 점점 비유적으로 많이 쓰인다면 다른 “대구스러운”것은 다 제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질 것이다. 대구는 뭘 해도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도시의 전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장애’는 개인의 잘못도 아닌데 이미 수천 년 동안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지 않은가. 브뢰헬이 살았던 16세기에 무슨 인권 감수성을 기대할 수 있었겠냐마는, 그래서 루브르에도 멋있게 그림이 걸려있겠지만, 지금은 21세기이지 않은가? 이제는 나와 다름에 대해 생각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