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 동아시아 여성의 주체적 활동 증거물”

내방가사,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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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는 올해 11월 말 개최 예정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 총회(MOWCAP)’에 제출할 국내 후보 목록 3건(내방가사, 삼국유사, 태안 유류 피해 기록물)을 선정해 발표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세계적 가치 여부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는 현재까지 세계기록유산 16건이 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이 가장 최근(2017년)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이다.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이 지은 가사문학인 내방가사와 삼국유사는 어떤 세계사적 가치가 있는걸까? 등재 신청을 맡았던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장에게 물었다.

내방가사는?

내방가사는 조선시대 양반가문 여성이 한글로 지은 가사문학을 지칭한다. 규방가사라고도 부르며 창작과 전파가 주로 영남지방에서 이뤄졌다. 발생 시기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 말로 추정한다. 1794년(정조 18) 4월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 정부인 연안 이 씨가 장자인 유태좌(柳台佐)의 도문연(到門宴)을 축하하여 지은 <쌍벽가>가 작자와 시대 추정이 가능한 작품으로 알라졌다.

한글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성행했다가,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점차 쇠퇴했다. 현재도 내방가사전승보전회가 경북 안동에서 활동하며 계승과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에 제출한 등재 대상 작품은 348점(한국국학진흥원 222, 국립한글박물관 126)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존하고 있는 쌍벽가(1794년)

이상호 센터장은 “동아시아 여성의 주체적 활동의 증거물로서 가치가 있다. 18세기~20세기 서구 여성들은 참정권을 확장하는 운동이 있었다면 동아시아 여성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주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내방가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호 센터장은 “한국은 20세기 서구가 400년을 겪은 일을 100년 정도 만에 압축적으로 겪었다. 주권 강탈, 식민지배, 광복, 산업화까지. 100년간 압축적 역사기에 여성들만의 기록을 보여준 경우가 기록물로는 거의 없는데 내방가사에는 이런 부분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창제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이 어떤 활용 단계를 거쳐 공식 문자 지위를 획득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도 내방가사가 품고 있는 가치다. 이 센터장은 “한글이 자기만의 장르를 갖게 되는 게 가사문학이다. 한문의 부수적으로 활용되다가 자기만의 문학 장르를 획득하는 게 가사문학이고, 그중 7~80% 정도가 내방가사”라고 말했다.

삼국유사는?

삼국유사는 1281~1285년 사이 일연이 집필한 한반도의 고대 신화와 역사, 종교, 생활, 문학을 담은 책이다. 후보 신청서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나의 민족 형태를 갖게 된 기록물, 주체적 역사관의 등장이 강조됐다.

▲삼국유사 규장각본

이 센터장은 “13세기는 몽골 민족이 지배하던 시기다. 한족이 차지하던 중원을 밀어버리고 유럽까지 갔던 세계 최고의 사건이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관념을 갖지 않았는데 단군을 설정하면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관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17세기 등장하는 민족의식을 담은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고, 나머지는 주변국이라는 인식으로 주체적 역사관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몽골과 맞서기 위해 민족의식이 만들어지면서 자국 중심 역사가 담긴 최초의 기록물”이라며 “그때 베트남에서는 대월사기가 작성됐지만 남아있지 않다. 기록물로는 삼국유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내방가사와 삼국유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센터장은 “우리 내부의 시각이 아니라 인류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시각에서 기록물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삼국유사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사료적 가치나 단군 신화가 담겨 있다는 점에 집중한다. 내방가사도 담긴 내용이나 문학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주로 이뤄져왔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세계적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가치를 발굴하게 된 것이다.

2015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유교책판의 예도 그렇다. 공론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출판하고 보존했던 ‘공동체 출판’과 ‘집단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이라는 가치가 등재 이유였다. 2013년 등재한 새마을운동 기록물도 지역공동체 민주화와 여성의 사회 참여 촉진 등이 세계적 중요성의 한 부분으로 제시됐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