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민 여러분, 저를 안다고 찍어주면 안 됩니다”

[거대정당에 맞서다] (3) 무소속 장시원 경북도의원(울진군) 후보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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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대통령 선거 직후 연이어 열리는 선거, 중대선거구제 전면 도입 실패 등으로 대구, 경북에는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배출되고 있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넘겼지만, 지역의 자치 일꾼을 뽑기보다는 거대 양당 구도가 더 공고해지고 있다. 뉴스민은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주목할 활동을 벌여온 소수정당, 무소속 후보를 연속해서 소개한다.

“산불 났을 때 장 의원이 소방차 몇 대를 끌고 불 끄러 오는 걸 봤다. 저렇게 하는 군의원은 장시원밖에 없었다.” 지난 3월, 대기하던 소방차를 찾아가 불 끄러 갈 곳이 있다고 쫓아왔던 장시원 전 울진군의원을 두고 다리 밑에서 더위를 식히던 50대 사내 5명이 주고받던 이야기다.

▲장시원 후보가 울진군민과 산불 방지 대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경북 울진군에서 1명을 뽑는 경북도의원 선거는 오는 6.1지방선거 최고 격전지로 꼽힌다. 국민의힘 김원석(63), 무소속 남용대(68), 무소속 장시원(51) 후보까지 3명이 나섰다. 남용대 후보는 4년 전에도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번 선거를 앞둔 5월 국민의힘을 탈당해 재선에 도전한다.

장시원 후보는 낙선한 2006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공직선거 5회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선된 울진군의원 선거 3회 모두 2인 선거구에서 득표율 1위였다. (울진군의원 가선거구 2010년 33.08%, 2014년 31.60%, 2018년 44.21%) 무소속 출마는 소신이자, 주민들과 약속이다.

장 후보는 “기초의원도 무소속 당선됐는데, 도의원 선거 나간다고 당에 입당하면 주민들과 약속을 어기는 게 된다. 울진군민들은 무소속도 일 잘하면 뽑아주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서울예전 극작과 졸업 후 떠나고 싶었던 고향에 돌아오다
15년 된 트럭, ‘라보’ 타고 다닌 군의원
“정치인은 명예를 얻었는데 부까지 얻으려면 안 된다”

고등학교까지 울진에서 마친 장 후보는 울진을 떠나고 싶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극작과를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왔다가 탈핵운동, 왕피천 살리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4년, 원전 6기가 이미 가동 중인 울진은 핵폐기물 처리장 신청이 접수했고, 이를 막아내는데 적극적이었다. 울진참여자치연대, 왕피천살리기대책위원회 등에서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15년째 타고 다니는 소형트럭 ‘라보’는 그의 분신이다. 군의원 12년 동안에도 트럭을 타고 다녔다.

“댐 반대 때문에 고향에 내려와서 생활하다가 대학 동기를 불러 울진에서 문화공연을 많이 열었다. 홍보를 하려고보니, 현수막을 많이 거는 게 아까워서 라보 트럭 뒤에 광고판을 만들어서 홍보하려고 구입했다. 이색적인 홍보였다. 이후에도 그 차량으로 선거운동도하고 의정활동 할 때도 타고 다닌다. 제 차인 줄 다 알아서 문도 안 잠그고 다닌다(웃음)”

▲15년 전 문화공연 홍보를 위해 샀던 소형트럭은 장시원 후보의 분신이다. 군의원 시절에도, 선거운동 중에도 함께 하고 있다.

2018년에는 울진군의회 의장도 지냈다. 울진군의원 8명 중에 그를 제외하면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2년 동안 의장을 지냈지만, 군수를 상대로 한 군정질문 횟수는 장 후보가 최다였다. 제8대 울진군의회는 4년 동안 군정질문을 7번 했는데, 장 후보가 5번 했다. 군의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행정감시라는 소명 때문이다.

울진읍·금강송면이 장 후보 지역구였는데, 도의원 선거는 군수와 마찬가지로 울진군 전체가 선거구다. 쉽지 않은 선거다. 그런데 군의원 시절 지역구가 아니었던 평해, 후포에서도 인사 나누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21일 평해장날 선거운동에 나선 장 후보를 지켜봤다. 장 후보는 “도의원은 장시원입니다, 절대 이권개입하지 않는 도의원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나가던 주민들이 말을 걸자, 자리에 앉아 손에 쥐고 있던 수첩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왜 이권개입 안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는지 물었다.

“저는 명예를 얻었는데 부까지 같이 얻을 수는 없다. 군의원이면 정치인이 됐으니, 부를 쫓으면 안 된다. 주민을 대표해서 일하는 의원이 됐는데, 의원을 이용해서 부를 가져가는 것은 맞지 않다.”

“저를 안다고 찍어주면 안 된다”는 후보
무소속으로만 연이어 5번째 선거

울진읍내에 돌아와서 거리연설을 시작했다. 라보 트럭이 등장했다. 유세차를 따로 만들지 않고, 타고 다니던 차량에 소형 스피커를 장착해 유세에 이용했다.

“울진군민 여러분, 안다고 해서 저를 찍어주고, 집안이어서 저를 찍어주면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좋을지 모르겠지만,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길입니다. 장시원이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찍어주시고, 장시원이 아무리 봐도 아니면 저를 선택하면 안 됩니다. 경북의 1등 도의원을 울진에서 만들어주십시오.”

3월에 이어 5월 28일에도 울진에 산불이 났다. 산불을 예방하고, 불이 나더라도 빨리 끄는 일이 울진군민에게는 중요한 이슈가 됐다. 장 후보는 “울진군수가 현장에 들어가도 3단계가 되면 결정권이 없다. 지리를 잘 아는 군수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의원이 되면 경북 차원에서 산불 메뉴얼을 새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군의원을 지내며 과수농업 교육과 지원 예산 편성, 왕피천공원 국가정원 공모 신청을 제안했다. 장 후보는 “울진이 살길은 첫째도 관광, 둘째도 관광, 셋째도 관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울진은 덕구온천, 백암온천, 성류굴, 금강송군락지 등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관광지가 있다. 그러나 주변 시설이 노후화돼 찾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

▲울진군의료원 맞은편 공터에 컨테이너박스로 마련한 선거사무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시원 후보

도의원이 되면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묻자,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다.

“소규모 단위로 지역에 임대주택을 지어서 임대주택 때문에 읍내 나와서 사는 게 아니라, 살던 읍·면에 살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또, 발전소 옆 비상활주로가 있는데 신한울 3, 4호기를 건설재개한다면, 건설 중에 비상활주로는 반드시 폐쇄해야 한다.”

장 후보는 무소속으로 정치를 이어온 자신이 경북도의회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다양성을 바라는 장시원 후보의 무소속 도전은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는 6.1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영주시장에 출마한 황병직 전 경북도의원도 시의원 2번, 도의원 2번을 모두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