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대구백화점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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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운 여름에는 대구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땀을 식혔다. 겨울에는 바로 앞 광장에서 얼어버린 손을 핫팩으로 녹이며 공연이나 집회를 구경하기도 했다. 백화점 정문을 끼고 좌측으로 돌면 친구와 선 채로 어묵을 먹던 분식점이 있고, 그 건너편엔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던 액세서리 가게가 여전히 있다. 팔짱을 끼고 깔깔대며 동성로를 누비던 그 시절 우리의 시작은 ‘대백 앞에서 만나’였다.

▲8월 10일 취재를 위해 찾은 대구백화점 앞. 평일임을 감안해도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문을 닫은 지 1년, 대구백화점은 더 이상 동성로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구역의 중심을 잡고 사람을 품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동성로를 찾는 젊은이들은 삼덕동, 봉덕동 등 외곽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향하고, 인근 가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든 유동인구에 한숨만 쉬었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임대 문의’라고 적힌 종이만 덜렁 붙어 있었다.

지역 랜드마크가 있던 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는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졌다. 대구백화점은 잔금일이 여러 번 변경된 새 주인과 계약이 어그러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구청도, 중구의회도 민간택지를 민간끼리 거래한 것이니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중구의 한 구의원은 “(대구백화점 본점 부지와 관련해) 의회에서 이야기 나온 게 없다. 우리가 가타부타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땅의 주인은 정해져 있을지라도 이용하고 기억하는 도시의 주인은 우리 모두다. 동성로 일대가 도심 역할을 하며 사람을 모으고 꾸준히 오른 땅값 덕을 본 데는 대구의 역사성과 발전상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대구백화점의 50여 년 성장도 마찬가지다. 대구백화점은 1988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고 한때 연 매출 4,000억~5,000억 원대를 기록하는 등 대구의 발전, 중구의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 대구백화점 폐점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안내문 하나로 후련하게 땅을 팔고 떠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이유다. 도시공동체가 그 땅에 공공성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아무도 새로운 걸 상상하지 않으니 뻔한 이야기만 나온다. 대구시는 ‘2030년 대구도시기본계획’에서 ‘중구 도심은 풍부한 역사문화자산(근대도시 원형 보존), 매력 가득한 도심 골목길, 역사 깊은 동성로, 다양한 공연, 예술 인프라가 집적하고 있어 관광산업 활성화에 유리하다’고 분석하며 이를 살리는 개발을 해야 한다고 적었다.

대구백화점 부지에는 주상복합이 들어올 거란 전망이 나온다. 땅의 전 주인과 새 주인에게 중요한 건 ‘돈이 되는지’이다. 중앙네거리의 롯데영플라자 대구점, 동문동 동아백화점 본점, 반월당역 대한적십자사 병원 자리에 이어 대구백화점 부지까지 중구 곳곳에 들어서는 주상복합이 이러한 도시 개발 방향과 관련 있어 보이진 않는다.

▲2014년 12월 대구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영상 중 일부. 크리스마스를 앞둔 대구백화점 앞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공공이 직접 매입하기 어렵더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할 순 있지 않을까. 상가층 중 한 층을 청년들의 기회에 투자하거나 중구를 관광하는 이들을 위한 여행자 센터를 만들 수도 있다. 중구 문화동의 ‘카페 문화당’과 같이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카페, 문화시설 등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MZ세대에게 유행이라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대구백화점 앞 광장의 역사성 또한 대구백화점 건물 이상으로 큰 상징성을 갖는다. 주상복합이 들어설 경우 소음 민원, 교통난 등 인근의 많은 것이 영향을 받게 된다. 문화예술단체의 한 관계자는 “‘공공이 매입하거나 청년공간으로 쓰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시민의 공간인 대백 앞 광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익숙한 공간이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다. 한일극장, 노보텔, 중파(중앙파출소), 반월당역 지하 분수대 등 이젠 사라지거나 옮겨간 장소를 사람들은 여전히 지나간 이름으로 부른다. 그 자리에 새로 들어선 것이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대구백화점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외부인에 닫힌 주거용 건물보다는 모두에게 열린,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 제시돼야 한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