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 ⑥ 너무 취약한 미등록 이주민 지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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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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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미등록 이주민은 39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통계 추산 이래 올해 처음으로 이주민 수가 감소했지만, 한국의 전체 이주민 대비 미등록 이주민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경기 침체가 지속될수록 체류자격 변경 기회 역시 제한받기 때문에 앞으로 미등록 이주민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인 사회보장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할 인구 집단이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자체도 이주민에 대해서 차별적으로 작동하지만, 그 제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 침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공적 제도를 살펴본다면 ‘응급의료 서비스 지원제도’,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사업’,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 정도가 있다.

‘응급의료 서비스 지원제도’는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를 대신해 국가에서 의료기관에 의료비를 대신 납부해준 뒤 추후 상환하도록 하여 응급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과정, 국가 환급과정의 불편함을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그 적용을 기피해서 일반시민조차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데 보험자격도 없는 자가 이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사업’의 경우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지역 편차가 크고 그마저도 예산이 부족해서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구의료원만 보더라도 2020년 7억 원이 책정되었다가 2021년에는 4억 원으로 그 예산이 오히려 줄었고, 지역 공공병원 이외에 다른 시행 주체는 전무한 상황이라 접근성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어린이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의 경우 보건소에서만 가능한 데다 해당 보건소조차 사업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예산이 천차만별이며 그나마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전면 중단되었다가 최근에 한두 군데 보건소에서 시행되고 있다.

민간 부문 의료지원은 이주민지원단체가 협력의료기관과 의료비를 감면하거나 지원하는 형태, 협력의료기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의료공제회, 정기적인 무료 진료소 등이 있다. 공적 제도에서 배제된 이주민의 최소한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미등록 이주민 전체를 포괄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건강권이라는 문제는 인도적 차원에서 어떠한 문제와 타협할 수 없다. 하물며 현재 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 문제는 본질적으로 비합법 이주민 고용을 야기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와 이주정책, 제도의 부실에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국가적 대책이 없어서 되겠는가? 체류관리의 문제, 불법의 문제로 접근해서 우리나라에 없는 인구집단인 양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는 지금의 국가적 대응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공적 지원 제도의 경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고 만성질환, 검진, 예방 등 건강관리를 지원하는 사업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최소한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사업’을 법률로 확장하거나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등록 이주민 규모에 대비해 예산을 현실적으로 증액해서 고액 치료비에 대한 지원, 응급・모자보건 등 필수 의료서비스 제공, 만성병 관리, 검진, 예방접종 등의 사업에 대한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또한, 미등록 이주민에게 일부 의료기관에서 적용하고 있는(주로 상급종합병원) 국제수가(건강보험 수가의 3~5배)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법률, 시행규칙의 변경이 시급하다. 당장 정부가 합법/불법의 행정적인 쟁점을 조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정책을 입안하기 어렵다면 국내의 여러 이주민 민간지원단체와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그를 통해 간접적인 지원을 늘릴 것을 촉구한다. 출입국관리라는 행정제도와 인권보장이라는 쟁점이 첨예한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좀 더 손을 들어주어 최소한의 체류자의 건강권을 보장해주고 있는 독일, 영국, 일본 등에 비추어 한국의 국가적 대책은 매우 취약하다.

최창수 행동하는 의사회 대구지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