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영의 다시보기] 9월 18일 33R 대구FC VS FC서울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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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FC는 18일(일) 오후 3시 DGB대구은행 파크에서 열린 정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FC서울을 셧아웃시켰다. 같은 시간에 벌어진 K리그1 모든 경기에서 경쟁팀 대비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막판 스퍼트 덕분에 수원과 김천을 승점과 다득점으로 따돌리고 스플릿B의 앞 좌석인 9위를 차지하며 유리한 홈경기 일정을 만들었다.

▲18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벌어진 FC서울과의 경기 [사진=대구FC 페이스북]
시작은 불안했다. 시즌을 책임졌던 핵심 센터백 두 명이 빠진 선발 라인업을 바라보는 팬들의 심정은 편치 않았다. 중앙 센터백은 조진우, 왼쪽은 박병현이 11경기 만에 선발 출전했다.

양 팀 감독은 아픈 구석을 숨기고 싶은 동병상련을 갖고 있었다. 대구는 최종 수비수 홍정운의 공백을 메워야 했고 서울은 주득점원인 최전방 공격수 일류첸코 빈자리에 고심 끝에 팔로세비치를 세웠다.

관중석에도 비장감이 흘렀다. 올 시즌 최다에 버금갈 만큼 가득찬 관중석에 걸린 “오늘 여기서 같이 죽자”는 걸개는 팀이 처한 위기를 인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양 팀 골키퍼를 긴장시키는 박진감 넘치는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대구의 기운이 우세했다. 장성원과 황재원이 번갈아 가며 오른쪽을 파고들자 서울 수비진이 움츠렸다. 15분경 고재현이 수비진과 경쟁을 이겨내고 올린 볼이 제카 머리를 향했지만, 한 뼘 정도 높았다. 근래 보기 드문 약속된 플레이를 펼치며 골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수세에 몰리자 서울의 전방 공격수 팔로세비치가 중원까지 내려와서 공격 전개에 가담했지만, 대구의 수비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22분경에는 세징야의 재치로 제카가 침투해서 고재현까지 연결되었지만, 서울 수비진도 만만치 않았다.

쉴 새 없이 대구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경합 과정에서 처리하는 세컨 볼 처리 미숙은 개선되지 않았다. 수비진의 납득 안 되는 뻥 차기에 기운이 빠지던 36분경 제카가 상대 골문을 위협하며 자칫 넘어갈 것 같던 분위기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39분 세징야는 자신이 만든 프리킥에서 캐넌슛으로 골문을 노렸지만 양한빈이 방향을 읽었다. 관중석에선 탄식이 나왔지만 가까이서 지켜본 원정 응원석은 얼어붙었다. 수세를 실감한 서울은 파울로 경기 흐름을 차단했고 불안함을 느낀 원정 응원석에선 동네 굿판 마냥 북소리에 맞춘 중저음의 절규가 끊기지 않았다.

득점을 위해 압박을 가하던 42분, 제카의 패스를 받은 고재현이 선제골을 만들었다. 제카의 재치가 돋보였다. 볼을 치고 들어가던 제카가 왼쪽에서 질주하던 세징야를 얼핏 쳐다보자 수비진이 멈칫했다. 볼은 오른쪽에서 쇄도하던 고재현에게 갔다. 수비진을 벗겨내고 골키퍼와 마주한 고재현이 놓칠 리 없었다. 강력한 오른발 슛이 골망을 시원하게 갈랐다.

홈팬들의 첫 골 복기가 끝나기도 전에 세징야가 세징야 했다. 전반 정규 시간이 멈춘 인저리 타임이었다. 절묘한 제카의 패스가 골문으로 향했다. 볼을 컨트롤한 세징야가 수비수를 왼쪽 페인트로 멈칫하게 만든 후 오른쪽으로 한번 제치고 날린 슛은 선방하던 서울 골키퍼 양한빈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폼이 올라왔음을 증명한 세징야의 전매특허 슛이었다. 새벽녘 바다 건너온 손흥민의 낭보에 집중된 축구팬들의 관심을 K리그로 돌려놓은 슛이었다. 삼각 편대의 화려한 비행 속에 전반을 2대0으로 갈무리했다.

후반 시작하면서 수원의 안익수 감독은 더는 조영욱과 정한민 카드를 아낄 수 없었다. 기대에 부응한 두 선수 덕분에 전반보다 서울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가열된 공격의 결실을 보고 싶었던 안익수 감독은 61분경 김진야까지 가세시켰다.

교체 효과로 대구의 공격력이 숙지자 대구의 최원권 감독 대행은 헌신하다 지친 제카 대신 이근호를 투입하여 맞불을 놓았다. 들어온 지 채 5분 만에 황재원의 자로 잰듯한 크로스가 머리로 배달되었다. 자신 있게 골문으로 헤더를 날렸지만 양한빈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걷어냈다. 리바운드된 볼이 이근호 발밑이었다. 지체 없이 날린 슛을 양한빈이 다시 한번 잡았지만, 몸은 이미 골문 안쪽이었다. 3대0을 만들었다. 순위를 올리는 골이었다.

71분 사력을 다한 세징야가 쓰러졌다. 근육 경련이었다. 부상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풍성했던 잔치 설거지는 맏형 이용래 몫이었다. 세징야가 찼던 주장 완장은 이근호에게 전달되었다. 20분을 남기고 차, 포를 접을 만큼 최원권 감독 대행의 자신감이 드러났다. 최근 상대를 가장 압도한 경기였다. 파울 관리에 성공하면서 공격 전개가 수월했다. 덕분에 최전방 공격수들이 차례로 득점을 기록한 바람직한 경기가 되었다.

책임을 다한 고재현은 출장 기회가 적었던 동향의 친구 오후성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우정의 무대까지 연출했다. 수고한 이진용도 파울과 체력 관리를 위해 김우석으로 교체했다.

홈팬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전북전 면목 없음을 치유하고 싶었던 우리 선수들은 불필요한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한 골이라도 더 넣고 싶은 간절함에 부상 걱정은 사치였다. 인저리 타임 4분이 아쉽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우울했던 추석 기분을 일주일 만에 반전시킨 선수들은 9,330명의 홈팬 앞에서 승전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인터뷰어는 쐐기골이자 시즌 마수걸이 골을 터뜨린 이근호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