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비정규직화에 발맞춘 구조조정 계획 ‘S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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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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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공단은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화도 심화했다. 아사히글라스의 사례처럼 기존에는 정규직이 하던 업무가 외형상 사내하도급의 형태로 전환되는 방식이 확인된다. 또, 구미 공단의 산업 재편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아사히글라스 차원의 구조조정도 진행됐다.

구미에서는 1960년대부터 전자공업과 섬유산업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전자공업은 LG(당시 금성)와 삼성, 대우를 필두로, 섬유산업은 제일합섬, 코오롱 등 굵직한 기업이 규모를 키웠다. 노동 집약 산업인 섬유산업은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가 비교우위에 있었고, 점차 쇠퇴했다. 2000년대 들어 구미는 전자공업이 치중하던 디스플레이 산업 또한 쇠퇴했고, 모바일 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2016년 2월 12일 아사히글라스 공장 입구 사진.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확대된다. 비정규직 추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자료를 근거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구미시가 보유한 1996년도부터 2020년까지 5년 단위로 구미시 제조업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 통계를 살펴보면, 구미시 제조업은 종사자 수가 7만~9만 명 사이에서 증감을 반복하는 데 비해 사업체 수는 해가 갈수록 급증한다.

1996년 사업체 수 1,836개, 종사자 8만 2,409명, 2000년 2,168개에 7만 5,298명, 2005년 2,701개에 9만 1,534명, 2010년 2,791개에 9만 2,695명, 2020년 6,449개에 8만 6,818명으로 나타난다. 1996년 대비 2020년에 종사자 수는 1.05배로 근소하게 증가했으나, 사업체 수는 3.51배 증가한 것이다. 사업체 수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상황에서 종사자 수가 줄었다면 기술 고도화로 인한 필요 인력 감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사자 수가 비교적 일정한데 사업체 수가 급증했다는 것은 기존 사업체가 도급 또는 위장도급 형태로 쪼개졌기 때문이고 추정해볼 수 있다.

2010년도 초반까지 구미에서 인력 파견업체를 운영했던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오수일의 설명도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오수일은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가 재편되면서 비정규직이 많아졌다. 비정규직 확대 추세에서 인력파견업 시장도 확대됐다”며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 전자산업 특성상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름을 넘기면 생산 물량이 줄어드니 사람을 내보내기 시작하고, 그래서 (파견 기간을) 1년 채우는 사람이 잘 없다”고 설명했다.

아사히글라스는 공단의 산업 재편 흐름과 함께 시장 변화에 따른 구조조정도 대비했다. 아사히글라스 차원의 구조조정안은 PDP 시장 축소에 대비한 계획이었다. <뉴스민>이 입수한 아사히글라스가 2014년부터 작성한 내부 문건 ‘S-Project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아사히글라스는 PDP 수요 감소 등 시장 상황으로 인해 그룹사 한국법인 4곳(아사히피디글라스한국(PGK), 한욱테크노글라스(HTG), 에이지씨디스플레이글라스오창(ADO),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AFK)) 중 PDP 생산 업체인 아사히피디글라스한국, 한욱테크노글라스에 대한 구조조정을 중점적으로 대비했다.

아사히글라스는 구조조정 시 법률적, 노무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으로 인해 노조가 결성될 경우도 대비했다. 해당 문건에는 회사 정책에 반발해 쟁의행위가 있거나 외부세력 연대가 발생하면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정당성이 없음을, 단체행동 시 법과 사규에 따른 징계를 한다는 안도 담겼다. 또한 ‘유관기관(정보과, 노동부) 연대강화’에도 나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외에도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 등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시 대응 방안에 대한 검토도 나타난다.

한편, 노조는 아사히글라스가 주로 대비한 쪽이 아닌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 하청업체 GTS에서 결성됐다. 아사히글라스는 정규직 사원의 노조 설립 시 설득과 전환 배치, 정리해고 등 대응을 세웠지만, 하청업체 GTS에서 노조가 생기자 특별한 설명이나 설득 없이 GTS와의 계약을 취소하는 형태로 소속 하청노동자 178명을 일시에 해고했다.

[편집자 주] 올해로 9년째다. 2015년 7월 아사히글라스 하청노동자들 178명이 전원 해고됐다. 22명의 노동자들은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9년째 공장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1, 2심 법원도 아사히글라스가 해고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자 직접 고용을 거부하면서 노동자에게 배상해야 할 임금, 이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약 90억 원이다. 노동자들과 아사히글라스가 서로 제기했던 민사소송은 6건이고, 파견법 위반으로 진행 중인 재판도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에 사건을 맡겼다.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 대리 비용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글라스는 노동자들의 해고 이후 정문 앞 경비 강화에도 비용을 더 투입했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법률 대응으로 아사히글라스가 9년 동안 쓴 돈은 100억을 훌쩍 넘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 해고를 겪으며 다방면으로 투쟁에 나섰다. 법원을 출입하는 일도 잦아졌다. 9년 동안 26건의 다양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고, 소송비용으로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질문을 수없이 했다. 30대 초반의 노동자는 40대가 됐고, 40대 중반 노동자는 50대가 됐다. 만약,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조합을 인정했더라면 9년째 거리에서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뉴스민>은 노동조합을 만나 삶이 바뀐 해고노동자들의 현재 모습을 통해 노동자에게 취약한 법과 제도까지 짚어 본다.

취재=박중엽, 김보현 기자
기사=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