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검찰·법원의 문턱, 100억과 9년

2015년 이후 법원 들락거린 해고노동자
법적다툼 중인 사건만 26건
법정의 저울질 가운데 흘러간 시간 9년
“회사에 유리한 사건은 금방, 우리 고소 사건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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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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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해고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했나

경북 구미 국가4산업단지에 있는 일본계 기업 아사히글라스 정문 앞에는 9년째 천막농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9년이면 지도 어플에도 잡힐 법도 하지만, 어플 위에서는 투명하다. 해고노동자 22명도 농성장이 영원하길 바라지 않는다. 천막을 스스로 철거하고, 직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더디지만, 법원은 해고노동자 손을 계속 들어줬다. 최종 판결이 나오면 아사히글라스는 원치 않겠지만 해고노동자 22명을 복직시켜야 한다. 그동안의 임금도 모두 지급해야 한다. 임금, 법률 비용 등을 더하며 100억 원을 훌쩍 넘긴다. 물론, 법원이 회사 손을 들어준다면 법률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

▲법원 앞에 선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

노사 대화 대신 법원으로 넘어간 시간 9년
노동자 손 들어준다면 회사는 100억 원 이상 써야

2015년 5월 29일 노동자 140여 명은 노조(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를 결성했다. 하청업체 3곳 중 GTS(지티에스)에 속한 노동자가 다수였고, 하청업체와 6월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자 아사히글라스는 2015년 6월 30일 하청업체 지티에스(GTS)에 7월 31일부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첫 번째 순간이었다. 아사히글라스가 하청업체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지 않고, 노동조합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사히글라스는 대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재근 아사히글라스 본부장은 “지티에스와 저희가 맺은 계약서에는 부득이한 경우가 있으면 한 달 전 (계약 해지) 통보할 수 있다”며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때부터 법적 다툼이 시작됐다. 노조는 아사히글라스가 사실상 직접 업무지시를 했고, 지티에스는 도급을 위장하기 위한 업체에 불과했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동시에 아사히글라스가 제조업의 파견근로를 금지하는 법을 위반했다며 고소했다. 최종 판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법원은 노동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아사히글라스가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에 따라 그동안 주지 않았던 미지급 임금까지 모두 더하면 약 86억 원(2022년 10월 기준)이다. 회사가 1심을 따르지 않고 항소에 상고를 거듭했고, 그동안 지급하지 않은 임금의 이자 10개월 치만 5억 7,000만 원에 달한다. 법적 대응이 길어질수록 이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임금과 이자만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게 아니다. 아사히글라스는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과 근로자 지위 확인 민사재판을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태평양에 맡겼다. 두 로펌은 국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사건 수임료가 비싼 곳이다.

아사히글라스가 쓴 법률 비용은 얼마나 될까? 법률대리 비용을 공개하진 않기에 여러 변호사에게 문의해봤다. 한 변호사는 “아사히글라스 사건을 보면 1~2명의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게다가 공판도 오랫동안 진행된 만큼 성공 보수를 제하더라도 억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파견법 위반 형사 재판은 1심에서 유죄가 나왔지만,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다. 대법원(3심)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사건은 하나라도 1심, 2심, 3심 이렇게 심급마다 소송계약을 따로 해서 비용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설명을 종합해보면 보수적으로 판단하더라도 회사의 법률비용은 1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2019년 6월 19일 구미시 산동면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

회사가 먼저 제기한 소송도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해고노동자를 상대로 2016년 부지 내 현수막을 철거하라며 불법시설물 설치 가처분 신청을 냈고, 회사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2019년에는 해고노동자들이 공장 정문 진입로에서 선전하는 행위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그해 6월 ‘해고 투쟁 4년 승리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공장 앞 도로 위에 라카칠을 한 것에 대해서도 회사는 도로 포장비용 5,200만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2015년 이후 법원 들락거린 해고노동자
법적다툼 중인 사건만 26건
법정의 저울질 가운데 흘러간 시간 9년
“회사에 유리한 사건은 금방, 우리 고소 사건은 4년”

아사히글라스 해고노동자 22명은 2015년 이후 법원 문턱을 자주 넘었다. 회사가 직접 고용 당사자라고 제기한 소송, 회사가 노동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때문만이 아니다.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구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다니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송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원고, 피고인 사건만 모두 26건이다. 집회시위법 위반, 업무방해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전국 곳곳의 검찰과 법원에 다니면서 쓴 경비만 1,000만 원이 넘는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쓴 인지송달료는 4,000만 원에 달한다. 벌금도 4,100만 원이나 냈고, 법률대리비용까지 모두 더하면 약 1억 1,000만 원이다.

검찰, 법원을 다니며 노동자들은 검찰의 판단에 울고 웃었다. 임종섭 조합원은 “회사에 유리한 사건은 득달같이 처리하는데 우리가 고소한 사건은 한참을 기다렸다. 수사를 기다리며 1년, 2년 지나니까 그다음부터는 날짜 가는 걸 생각 안 하게 되더라. 이렇게 길게 싸울 거라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민우 조합원도 “우리나라 법의 현실을 느꼈다. 뭘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데, 약자에게는 돈도 없고 시간도 체력도 없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거라, 부당한 일이 있어도 경찰서 가는 거조차 빡빡하다. 그래서 불합리한 것에 억울해도 그냥 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7년 8월 29일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017년 노조는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파견법 위반으로 회사를 고소한 지 3년이 되도록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째 되던 2019년 아사히글라스는 파견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시 2년이 흐른 2021년 8월 11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파견법 위반죄로 하라노 다케시 전 아사히글라스 대표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재윤 전 지티에스(GTS) 대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회사는 항소했고, 2023년 2월 17일 항소심에서 대구지방법원은 아사히글라스와 하청업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근로자 지위 확인 민사재판과 파견법 위반 형사재판 모두 2심이 마무리됐다.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만 남았다. 올해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조금 더 유예됐다. 9년 동안 법원의 저울질을 바라보는 해고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2023년 2월 17일 아사히글라스 파견법 위반 항소심 선고 후 해고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수일 조합원은 “검찰이 왜 수사에 3년이나 끌었나. 혐의가 없으면 몇 달 만에 끝내도 되지 않았겠나. 여기까지 오면서 느낀 건 정말 우리나라 검찰이 형편없는 조직이라는 거다. 결국 나중에는 기소했다”며 “흘러간 시간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건가. 법정에서 원하청 관리자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인간적인 분노를 느낀다기보다는 그들이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느껴졌다. 있는 자리에 맞춰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기웅 조합원은 “법적 공방 때문에 아사히글라스가 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구미시로부터 특혜를 받고 입주한 기업인데, 여러 특혜를 받은 것이 결국 불법을 저지르는 데에 사용된 거 아닌가”라며 “노조를 인정하고 해고하지 않았다면, 나도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결혼도 하고 안정되게 살았을 거다. 해고 생활을 하면서 시간이 너무 많이 가 버렸다. 30대에 해고됐는데 이제 40대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 주말마다 농성장을 지키러 나오는 권재덕 조합원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동안 버틸 수가 없어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비닐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환경이 좋지 않고 일이 너무 힘들다”며 “사람들이 오래 못 버티는 곳이다. 아사히글라스가 불법 사내하도급인데, 거기서 해고되고 나와서 일을 구해도 똑같이 사내하도급이다”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올해로 9년째다. 2015년 7월 아사히글라스 하청노동자들 178명이 전원 해고됐다. 22명의 노동자들은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9년째 공장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1, 2심 법원도 아사히글라스가 해고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자 직접 고용을 거부하면서 노동자에게 배상해야 할 임금, 이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약 90억 원이다. 노동자들과 아사히글라스가 서로 제기했던 민사소송은 6건이고, 파견법 위반으로 진행 중인 재판도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에 사건을 맡겼다.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 대리 비용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글라스는 노동자들의 해고 이후 정문 앞 경비 강화에도 비용을 더 투입했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법률 대응으로 아사히글라스가 9년 동안 쓴 돈은 100억을 훌쩍 넘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 해고를 겪으며 다방면으로 투쟁에 나섰다. 법원을 출입하는 일도 잦아졌다. 9년 동안 26건의 다양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고, 소송비용으로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질문을 수없이 했다. 30대 초반의 노동자는 40대가 됐고, 40대 중반 노동자는 50대가 됐다. 만약,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조합을 인정했더라면 9년째 거리에서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뉴스민>은 노동조합을 만나 삶이 바뀐 해고노동자들의 현재 모습을 통해 노동자에게 취약한 법과 제도까지 짚어 본다.

취재=박중엽, 김보현, 천용길 기자
기사=천용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