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검찰, 법을 이용하는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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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검찰청법에 적시된 검사의 직무다.

‘법 수호자’로 인식되는 검사도 ‘법을 수호하는 일’을 할 때, 헌법과 법률을 따라야 한다. 법을 수호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법 위에 있는 양 법을 제멋대로 활용하면 안 된다. 법이 제 것인 양, 마음대로 하려는 검사들을 흔히 ‘법 기술자’ 또는 ‘법꾸라지’라고 부른다. 법꾸라지가 아니라 진정한 법 수호자들이 검사로서 일할 때, 국민은 인권 보호 받고, 적법 절차에 따라 처분받아 ‘개전의 정’이라도 가져볼 수 있다.

▲뉴스민 사무실 한켠에는 대구경북 10개 검찰청에서 수령한 검찰 예산 검증 자료가 쌓여있다.

하지만, 특수활동비 검증 취재를 하면서 ‘법기술자’, ‘법꾸라지’들의 현란한 기술을 목격한다. 그 선두에는 법무부 장관이 있다. 한동훈 장관은 2017년도 특수활동비 증빙 자료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일자 국회에 출석해서 “그 전(2017년 이영렬 돈봉투 사건)까지는 2개월마다 (특수활동비) 자료를 폐기하게 되는 게 오히려 원칙이었거든요”라고 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국가의 예산·회계 자료는 5년 동안 보관해야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한 장관이 말한 ‘그 전’ 이후에, 검찰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제도 개선 방안에도 해당 법률을 적시하면서 관련 자료를 5년은 보관하도록 하라고 했다. 이미 법으로 정해져 있었더라도, 검찰 자체 ‘지침’으로 만들기 전까진 지키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논리와 당당함에 놀랬다.

장관의 당당함을 보고 배운 덕인지 일선 검찰청도 현란한 기술을 선보였다. 광주지검 장흥지청에선 ‘기밀 수사’에 사용하라는 특수활동비를 공기청정기 렌탈 비용으로 쓴 사실이 들통났다. 장흥지청은 취재진의 추궁에 문제를 시인하고 환수 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사흘 만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코로나 시기에 검사실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 지출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게 돌연한 입장 선회의 근거다.

‘기밀 수사’니, 뭐니 다 필요 없고, 수사하는 ‘검사님’의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해 사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당당함이라니. 이런 식이면 회사 공금으로 권력자의 변호사비를 대납하거나 말을 사주고도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출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기업인을 검찰이 단죄할 명분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뒤늦게라도 대검찰청이 해당 지청의 문제를 인정하고 환수 조치하겠다고 밝힌 건 만시지탄이지만, 뒷맛이 개운하진 않다. 대검찰청이 지난 14일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 기자회견 이후 내놓은 설명자료라는 것이 ‘쿨’한 인정보다는 범죄자들이 하던 그 변명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대검은 설명자료를 내고 “극히 일부 소규모 청에서 예산 항목을 오집행한 소액의 지출 사례가 발생할 수 있으나, 이러한 경우 교육, 환수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쉽게 해석하면 ‘소규모 청’의 일탈이고, 우리는 그런 일탈을 교육하고 바로잡고 있다는 말이다. 부하 직원의 잘못이나 범죄 행위를 ‘개인 일탈’로 치부하는 기업 오너나 권력자들의 변명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런 변명을 하는 기업 오너나 권력자들의 옆에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붙어 코치를 해주곤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면 영화 ‘더 킹’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검사 출신 변호사 선배를 만난 ‘대세 검사’ 정우성이 야구 방망이로 마구 그를 때린 후 하는 말이다. “검찰이 로펌에 꼼짝도 못 하면 누가 검찰을 무서워 해, 로펌을 무서워하지. 우리가 무서워야 하는 거야, 우리가”

무서운 검사님들 전성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