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와룡고, “가치관 미성숙하다”며 박근혜 하야 학생 대자보 게시 불허

학교장, "당장 다음주가 수능...아직 가치 판단 미성숙"
"4.19, 5.18, 6월항쟁 모두 미성숙한 가치관의 운동인가"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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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서구 와룡고등학교가 학생들이 쓴 ‘박근혜 하야’ 대자보 게시를 불허했다. 학교장은 불허 이유로 수능을 앞두고 면학 분위기 저해와 학생들의 가치관이 미성숙하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8일, 와룡고등학교 학생회는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시국선언문 대자보 게시를 학교 당국이 불허했다”고 밝히며, 붙이지 못한 대자보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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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고 학생회 시국선언 대자보(출처-와룡고 학생회 페이스북)

‘당신의 고향, 대구의 학생들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한국사를 필수로 배우는 우리는 지금이 세도정치 시기인지 고대 제정일치 사회인지 모르겠습니다”며 “끝난 줄 알았던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 듯합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순실 씨, 참 고맙습니다. 덕분에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며 “순실의 정상(頂上)화, 대한민국의 비정상(非正常)#화,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최순실의 인형’께서는 당신의 국민의 선택을 따르십시오. 당신의 주인이 명합니다. 하야하라”고 요구했다.

와룡고 학생회는 “1, 2학년 대의원과 시국선언문 대자보 게시를 만장일치로 의결하여 교문과 교내 계단, 식당 등에 게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며 “그 후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학교 당국은 대자보 게시를 불허했습니다. 시국선언문 대자보 게시는 철회하고, 이미 써 놓은 대자보를 촬영해 올립니다”고 밝혔다.

이들은 “3학년 수능과 1·2학년 기말고사가 곧 있으므로 대자보가 면학 분위기를 해치므로 게시할 수 없다. 아직 ‘미성숙한 가치관’을 지닌 미성년자의 글이므로 게시할 수 없다”며 “그러므로 교내에 게시되는 모든 것에 대한 허가 권한은 학교장에게 있고, 불허하므로 게시할 수 없다”고 학교 측의 불허 사유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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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고 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피창수 와룡고등학교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학교 안 게시물은 학교장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자는 것도 아니고, 당장 다음 주가 수능인데 이미 뉴스에서 나온 얘기를 굳이 대자보로 쓰며 언급할 필요가 있겠냐고 이야기했다”며 “아직 중고등학교는 가치 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도 있고, 저도 교사의 입장에서 이런 사회에 대해 주관을 가지고 의견을 표현하는 건 좋지만 대학 가서도 얼마든지 이런 기회는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에 얼마든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며 “1, 2학년들도 3주 후면 학기말고사다.  학교장으로서 안정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할 책임도 있어서 불허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와룡고 한 학생은 자신의 SNS에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도 보장 안 되는 이게 현실입니다. 어른분들”, “그러면 4.19, 5.18, 6월항쟁은 모두 미성숙한 가치관의 운동인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김진환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 활동가는 “대부분 청소년이 학교에 오래 머문다. 민주주의 시대에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반영하는 건 당연한데, 학교의 구성원이지만 구성원으로서 의견 반영은 잘 안 된다”며 “대부분 학교 교칙이 정치적 이야기는 금지하고 있고, 학교 게시물은 누군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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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게시된 ‘대구 한 고등학교 교실’ 갈무리

또,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는 “교실 박근 위험혜”, “문 닫아 순시려”, “순시려 제발 하…야” 등 대구 한 고등학교 교실 안내문이 화제다. 이 게시물은 하루 사이 조회수 2만을 넘기며, 여러 SNS에 공유되고 있다.

오는 11일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2.28기념중앙공원 앞에서는 ‘대구 청소년 시국선언’이 열린다. 청소년 개인 시국선언과 전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이날 오후 7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리는 ‘2차 대구 시국대회’에 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