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첫째의 박탈감, 둘째의 눈칫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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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번에는 큰 아이가 애정하는 겨울왕국 베개가 문제다. 그걸 끌어안고 자야 하는 큰딸과 누나가 뭘 가지고 있는 걸 가만두고 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은 서로 “내꺼야”를 외치며 입씨름과 몸싸움을 반복한다. “싸우면 안 돼”, “때리면 안 돼”를 외치며 혈투를 중재하던 나는 결국 딸아이를 나무라며 다그친다. “그냥 양보 좀 해. 어차피 니 꺼야. 넌 누나잖아.” 때마침 둘째 아들은 속도 모르고 누나 염장을 지른다. “그래, 누나 양보 좀 해.” 결국 설움이 북받친 딸은 오열한다. “왜 나만 양보해야 하는데? 왜 나만 맨날 혼나야 되냐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사실 그 말이 맞다. 동생이 생긴 후부터 첫째 딸은 매일 양보를 강요당하고, 혼나지 않는 날이 없다. 미안함에 토닥토닥 달래보지만 이미 늦었다. 기분은 상했고 아빠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눈물범벅인 채로 딸은 잠이 들고, 아들은 전리품을 쟁취한 기분에 신이 나서 쉬이 잠들지 못한다. 첫째 아이를 낳고 두돌이 지났을 무렵일까? 걱정이 생겼다. 동네에 또래 친구도 잘 없고 엄마가 전업주부가 아닌 상황에서 아이가 점점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앞으로 부모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혼자는 많이 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친구’ 동생을 선물하기로 했다.

▲[사진=pixabay, 저작권 없음]

우리 딸도 처음에는 엄마 뱃속의 동생을 무척 사랑하고 아꼈다. 하지만 동생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 마주한 ‘현실누나’의 인생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엄마를 동생에게 뺏겼다. 동생이 밥을 먹어야 해서, 잠을 재워야 해서, 놀아줘야 해서 항상 뒷전으로 밀렸다.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엄마아빠의 손길이 더 필요하니까 항상 먼저였고 그전까지 뭐든지 가장 우선이었던 딸은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우리집 ‘센터’를 독차지했던 딸은 그 자리도 동생에게 내줘야만 했다.

부모의 눈에 첫째 키울 때는 너무 힘들어서 보이지 않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이 둘째에게서는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순해서라기보다는 부모가 익숙해진 탓일 거다. 찡끗 한번 웃기만 해도, 재잘재잘 한마디만 해도, 종알종알 노래만 해도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크는 것이 너무 아깝고, 훨씬 힘도 덜 들었다. 그렇게 둘째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이 집중될수록 첫째 아이는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반면, 부모는 아이에게 점점 엄해지고 맏이의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싸워도, 장난을 심하게 쳐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물건을 쏟아도 다 누나의 책임이 돼버렸다. 때려도 맞고만 있어야 하고, 누나가 먼저 해서 따라했다고 혼나고, 누나가 못 돌봐서 그렇게 됐고. 온통 누나니까 양보하고 이해해야 할 것투성이다. 이제 불과 일곱 살에 불과한 아이에게 ‘넌 애가 아니야.’라며 지나치게 이해하고 양보하길 바랐다. 원래는 모두 자기 것이었던 모든 걸 그렇게 다 뺏긴 셈이다. 그 박탈감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을 독차지한 둘째도 나름 사정이 있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나가 쓰던 속싸개와 겉싸개, 누나가 입던 옷과 양말, 누나가 갖고 놀던 장난감과 책. 온통 다 누나 것이다. 물려줬다고 하지만 현실은 눈치를 보며 빌려 쓰는 꼴이다. 누나가 원래 자기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생색을 내는 통에 항상 눈치를 보며 책이며 장난감을 만진다. 누나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잘못 손을 댔다가는 누나의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진다.

그렇게 혼나고 도망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도 수차례. 누나 친구라도 오는 날에는 출입금지를 당해가며 따돌림을 당한다. 같이 놀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고 내돌리는 신세가 되는 날에는 심술이 나서 짜증을 내며 펑펑 울기도 한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방해꾼이 돼버린 둘째는 물건도, 사람도 자기 것은 없다는 서러움을 항상 느낀다.

부모도 첫째 아이를 키울 때와 둘째 아이를 키울 때 마음이 좀 다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고 좋다는 것이면 다 사주고 싶었는데, 둘째를 키울 때는 지갑을 열기가 영 쉽지 않다. 금방 크는데 싶어 첫째 아이 것을 물려주거나 남의 것을 얻기로 한다. 첫째를 키울 때 전혀 아깝지 않던 물건들이 둘째를 키울 때는 그렇게 모두 아까울 수가 없다. 가끔 마음먹고 둘째 아들의 옷가지와 물건을 사러 갔다가 결국 첫째 딸아이의 물건을 사오며 머쓱해진 일도 종종 있다.

둘째 아들은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입만 열면 “내꺼야”를 남발한다. 강한 긍정은 부정이라고 자기 것이 없는 것을 아는가 보다. 그렇다고 누나처럼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르거나 아양을 떨거나, 항상 경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고 귀여운 짓을 많이 한다. 둘째의 인생은 아마도 그렇게 평생을 이겨내야 할 눈칫밥 인생이다.

언제부턴가 첫째 녀석이 동생 하나 더 낳아달라는 뜬금없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둘도 키우기 버겁고 매일 싸우는데 무슨 소리냐며 찬찬히 들어봤다. 결국 속내는 동생이 사랑받는 것이 심술이 나서 차라리 또 다른 동생에게로 그 사랑을 줘버리겠다는 심산이다. 참 대단한 라이벌이다. 이런 무한 경쟁이 좋은 점도 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틈에서 온갖 애정표현을 다 받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이 또한 행복이다. 그리고 옥신각신 치고받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를 감싸고도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엄마아빠 원하는 ‘평생친구’로 살아갈 수 있을까? 첫째의 박탈감도 둘째의 눈칫밥도 부모의 책임이 크다. 첫째에게는 사랑을, 둘째에게는 새옷을 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밑 보이지 말고 정말 잘해야겠다.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딸을 남친에게 뺏겨 박탈감을 느끼고, 사춘기 아들 심기 거스를까 노심초사하는 눈칫밥을 먹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