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예방 책임지는 보건교사, 석면·물탱크 관리까지?

감염병 예방 책임지는 보건교사, 업무 학교별로 달라···'독박'도 가능
시설 환경위생업무 몰리는 경우도···보건교사가 교장과 협의해야

13:13

▲[사진=전교조 보건위원회 제공]
신종플루, 메르스, 조류독감···보건교사는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이 있다. 보건교사다. 학생들의 건강관리에 보건교육까지 담당하는 보건교사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몰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로 정수기·물탱크 등 학교 시설 관련 환경위생 업무다.

대구에서 28년째 근무한 보건교사 A씨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걱정됐다. 보건교사의 업무분장은 학교장에게 전권이 있기 때문에, 학교마다 업무 종류부터 업무량이 제각각이다. 공기질·미세먼지·수질 관리에 더해 방역이나 여러 시설 관리까지 맡게 되면 업무량도 늘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생소한 분야를 책임지는 것도 부담이었다. 관리자와 이야기가 잘 풀리면 공기질 측정, 정수기 관리 정도만 맡았다. 관리자와 이야기가 안 되면 안전공제회 업무 처리, 석면 관리나 매월 학교 물탱크 관리까지 도맡는 경우도 있었다. 교장이 물탱크를 열고 탁도와 색도를 측정하라고 했고, A씨는 교장과 다퉈야 했다.

A씨는 운이 좋았다. 연차가 쌓여가자 바뀌는 교장과 다투는 일이 잘 없었다. 공기질 측정 업체선정·관리 등 업무과 정수기 관리 업무 정도만 맡았다.

B씨는 운이 나빴다. 최근 발령받은 대구 한 학교에서 교장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전 학교에서는 공기질 측정 관련 업무만 맡았는데, 새 학교에서 B씨는 정수기 수질검사·공기질 측정·상하수도·물탱크 관리도 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B씨는 교장에게 업무 조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응급조치, 건강상담 구강관리, 감염병 관리, 결핵 검진, 소변검사, 정신건강 관리 같은 기본적 업무 외에도 흡연 예방, 아토피 예방 등 사업에 최근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심폐소생술 교육 등 업무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행정업무까지 증가하는 상황이다. B씨는 새로 맡을 업무가 많고 여러 부서에서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교장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B씨는 업무를 거부했고, 학교장은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주의’ 조치했다. 같은 이유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대구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A, B씨 사례처럼, 보건교사는 학교 배정에 따라  업무가 바뀔 수 있는 소위 ‘복불복’이다. 이 같은 문제는 환경위생 관리 담당자를 직원이 아닌 교직원 중 지정하도록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이 2007년 개정되며 발생했다. 시행령도 보건교사의 업무로 ‘학교 환경위생의 유지·관리 및 개선에 관한 사항’을 지정했다. 교장이 B씨에게 환경위생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처리하도록 지시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게 됐다.

대구교육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환경위생 관리 담당자로 보건교사가 지정된 학교는 325개교, 일반교사 40개교, 교직원 65개교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마다 규모가 다르고 구성원이 다르다. 업무분장은 학교장의 권한이다”라며 “(담당자의) 기준을 만들 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이 하기는 힘들다. 보건교사가 환경 관리 업무를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이 업무를 해야 한다. 교육청이 누가 하라고 정해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위법을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관한 교육을 포함한 보건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 보건교육과 학생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교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보건교사의 주된 업무가 보건 교육과 학생 건강관리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종림 전교조 보건위원장은 “상위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이 상충하는데 방치하고 있는 교육부에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김종림 위원장은 “보건교사는 저수조 청소나 공기질 측정 같은 행정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데도 업무 조정을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교육이 본래 업무라면 그런 행정 업무에는 교육의 여지도 없다. 관리 업체 선정 등 업무를 학교별로 보건교사가 따로 하는 것보다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계약하면 현실적으로 업무도 줄고 비용도 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충청남도의 경우 전교조와 단체협상 후 공기질 측정 업무가 도청으로 넘어갔다. 전라북도와 강원도는 업무 대부분이 넘어갔고 경기도는 저수조 관리 업무가 넘어갔다. 대구는 단체협상조차 열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에서는 최근 보건교사의 역할과 처우개선 필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9월 14일 대구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메르스 같은 감염병이 집단 발생하고, 성폭력, 정신건강 관련 문제도 불거지면서 보건교육 필요성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건교사의 처우개선 필요성도 알리기 위한 취지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건교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행정업무 경감이 필요하며, 보건교사 승진제도 개선, 보건교육 관련 조례 제정 필요성 등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