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끊이지 않는 재난, 행운을 빌어야 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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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2 12:26 | 최종 업데이트 2018-02-02 12:27

가족 행사가 있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 소방차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간다. 신이 나서 아들에게 말했다. “우영이 좋아하는 소방차 지나가네~”, “빨간 자동차가 삐뽀삐뽀 내가 먼저 가야 해요 삐뽀삐뽀” 아들은 노래까지 부르며 신나한다. 그런데 또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한 대, 또 한 대. 이제는 엠블런스까지 지나간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난다. 이거 정말 큰불 난 거 아니야? 솔직히 좀 무섭다.

집에 와서 뉴스를 검색해보니 진짜 집 근처 병원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 수십 대가 출동하고 도로는 통제됐다. 신속한 출동과 대처로 다행히 불길도 빨리 잡히고 인명 피해도 없었지만,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다. 잇단 화재와 참사로 불안함은 점점 더 커진다. 안전하다고 안심되지 않는다. 불이 난 우리 동네 그 병원도 밀양의 요양병원처럼 스프링쿨러도 없고 화재에 취약한 건물이다. 현장 소방관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다행히 희생자가 없었던 것은 사실은 단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특히 올겨울에는 유독 화재사고가 잦게 느껴진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라서 그럴까? 건조해서 그럴까? 실내 사고는 그런 것과 크게 상관이 없다는데 하루가 멀다고 화재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늘 있을 수 있는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기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참담한 소식이 전해진다.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한순간에 잃었다. 운동 다녀오겠다고 씩씩하게 나간 엄마를 잃었고, 요양병원에 모신 할머니를 잃었다. 자책하고 원망하고, 애달픈 사연 하나하나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그리고 늘 그랬듯 원인은 ‘인재(人災)’라는 뻔한 결과다. 기준과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돈벌이에만 급급한 이기심과 탐욕이 부른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든 재난이다. 인재라면 분명 잘못한 사람이 있을 텐데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 참 분통이 터진다.

그런데 원인도 대책도 살펴보지 않고 ‘네 탓’만 하고 있으니 울화통마저 치민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현 정부와 전 정부, 정부와 국회, 누구 탓이 어디 있나? 당신 모두의 탓이다. 교묘한 말싸움과 떠넘기기만 급급한 틈에 진실규명과 대책보다는 말장난 같은 공방만 오간다. 그래서 지금은,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국에 말이다. 그러니 수많은 참사의 아픔을 겪고도 제대로 된 대책을 못 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와중에 제1야당 대표라는 홍준표는 “구정을 앞두고 또 화재 사고가 날 것이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이다. 아니면 신나는 불구경일 수도 있겠다. 쓸데없이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꼴을 보자니 성이 난다. 지금 어느 시절인데 구정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그 입을 구정물에 꽉 처박고 싶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들 녀석의 양말이 새까맣다. 대피훈련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재연에 따르면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고, ‘불이야’ 외치면서 안내에 따라 뛰쳐나간다. 기특하고 귀엽다. 하지만 과연 우리 아이들은 정말 안전할까? 아직도 대부분 병원과 학교는 구조와 설비가 화재에 무방비다. 가장 보호해야할, 지켜야할 사람들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셈이다. 로보카 구조대 폴리처럼 의인이 언제나 짠하고 나타나서 구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긴급출동이 동요처럼 흥겹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국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환경과 시스템 속에서 나만, 우리 가족만 아니기를 기대하며 요행을 바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닌가. 안 터지길 바라며 넘기는 폭탄 돌리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

언젠가 아파트 정전으로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다. 마침 마트 갔다 오는 길이라 갇혀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너스레를 떨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조치가 늦어질수록 커지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귀 못 알아듣는 인터폰 너머의 사람에게 짜증이 나고, 괜히 예민해져서 아이들 발 세게 구른다고 야단을 치기도 했다. 그렇게 삼십 분을 보내고 구출(?)되니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얼마나 감격스럽고 극적이던지 눈물이 찔끔 났다. 그 후유증일까. 그 후로 딸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한다. 혼자 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9층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온다. 이 단순한 해프닝에도 아이는 공포를 느꼈고 영향을 받았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제는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벌써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렀다. 또 어디선가 사이렌이 운다. 요즘엔 이 소리가 제일 무섭다. 새카만 아이 양말처럼 내 속도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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