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1987] (마지막회) 교도소 안에서 농사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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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15:44 | 최종 업데이트 2018-03-08 15:47

에피소드 8. 점거한 땅에 농사를 짓다

전국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부지런한 오○○이 사동 운동장 담과 병사(病舍) 사이 땅에 야채를 심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좋아했다. 교도관들에게 상추, 쑥갓, 그리고 수박씨 등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한 2m 남짓한 담이었다. 담을 넘어가 무단으로 땅을 점거하고 원예반 재소자들을 통해 구해온 삽과 괭이로 밭을 일구었다. 교도소 측에서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은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만든 후 옮겨 심었다.

처음에는 담 너머로 물동이를 운반해서 물을 주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교도소 내에서 귀한 호스를 구해다가 물을 주기 시작했다. 작물은 잘 자랐다. 스무 명이라는 숫자가 달라붙어서 제거했기에 벌레들도 우리 채소를 넘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점심이면 상추에 밥을 싸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우리와 친했던 재소자들이 탐을 내기 시작했다. 제법 수확량이 많아 우리가 다 소비하기에는 많았다. 그들에게 한 바가지씩 나눠줬다. 그렇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가장 높은 외벽 담장 밑에 두 줄로 결명자를 심었다. 열매가 열리고 알이 차갔다. 향긋한 결명자차가 생각이 날 무렵 87년 6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피소드 9. 아버지의 무산된 기획

6월 항쟁이 터지자 목회자로서 재야운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감금 상태에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같은 교회 선배인 오○○ 등이 뒷문으로 빼돌려 시위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 선배의 행적을 보자면 이렇다.

내가 석방된 후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갔는데 그사이 오○○ 선배는 술에 취해 시내에 있던 내 집으로 찾아왔다. 나를 부르다가 나오지 않자 월담을 시도했는데 그만 옆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진 곳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커다란 간장독을 그만 그 큰 코로 깨버렸다.

“도둑이야” 하는 집주인의 외침과 경찰의 출동으로 사건이 커졌다. 어머니가 나와 아들 친구라고 밝히고 간장과 독 값을 물려주기로 하고 무마됐다.

얼마 전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에 갔더니 본인은 아버지 묘를 잘 써서 관운이 따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지금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그의 관운에 타격이 될 수 있으니 그의 모든 비리(?)에 대해 침묵하도록 하겠다.

대구에서 재야운동을 하시던 아버님은 6월 항쟁 조직인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되셨다고 한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앞에서 연설하시다가 최루탄을 쏘면서 경찰이 덮치자 뒤로 도망가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시더라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아버지가 시위에 참여한 사람인 줄 생각도 못하고 아버지를 지나쳐 앞으로 가더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아 저게 지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아버지는 고통에 무척이나 민감하신 편이시다. 솔직히 말하면 엄살이 심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시위에서 쏘아대는 최루탄에 버티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대구 교동시장에 가서 방독면을 사셨다고 한다. 이제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다음 날 6.29선언이 발표됐다.

아마도 우리가 탈옥을 모의하던 그 날 아버지는 방독면을 사러 가셨던 것 같다.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의 각기 다른 회심의 기획이 6월 항쟁 속에서 무산되어 버린 것이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주시고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끝으로 ‘또 하나의 1987’ 연재를 마칩니다.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것이 커다란 사명감이나 숭고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운동의 매력 속으로 끌려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 있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미 우리들은 모든 보상을 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었는데?”와 같은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삶 속에서 투쟁 속에서 그런 매력을 발견하는 능력, 이것이 지금 여기서 민주주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교도소에서 나온 후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야기, 지하조직 활동, 혁명의 좌절, 그리고 일상적인 삶, 철학자들과의 만남, 예술활동, 사드 투쟁에 뛰어든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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