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동 416약속지킴이, 이명희 박기일 부부를 만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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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11:19 | 최종 업데이트 2015-10-27 11:20

image00001대구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상인역, 아침 8시가 좀 넘으면 어김없이 노란색 우드락 피켓 두 장을 든 40대 부부가 나타난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4월 13일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발걸음이다. 달서구 월성동 거주자 박기일(49세), 이명희(46세) 씨 부부다.

남편인 박기일 씨가 자리 잡고 피켓을 들고 서면 아내인 이명희 씨는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온다. 명희 씨는 찍은 사진을 함께 활동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달서구 사람들’ 단체 카톡 방, 페이스북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시민 모임’그룹에 올린다. 부부는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인시위를 한 지 지난 9월 3일로 100일을 넘겼고 곧 150일이다.

부부는 87년 6월항쟁이 있었던 시절을 전후하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시대적 상황의 영향으로 부부는 우리 사회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했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후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고, 생활을 꾸리면서 직접 실천 활동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알음알음 뜻있는 단체에 후원활동도 하고, 진보정당과 단체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

빚 갚는 마음에서 시작했죠. 나부터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상인역 일인시위를 100일 넘게 진행한 박기일 씨도 박기일 씨지만 나는 아내인 이명희 씨를 먼저 알았다. 이명희 씨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대구 시내와 달서구에서 벌어진 온갖 서명전과 실천 활동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가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침몰된 배 안에 수장되는 장면을 온 국민이 생생히 지켜보아야 했던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함께 아이들을 기다리고 함께 울며, 무엇이든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닿는 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섰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좀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위해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 나가는 세상이 될지 몰랐다는 마음,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1년이 지나도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서명대를 지키는 사람들, 100일 넘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우리의 귀한 이웃 중 한 사람이었다.

제 나름대로 피켓을 드는 원칙이 있어요.
세월호 피켓은 절대로 땅에 두지 않고요, 항상 오른쪽 발등에 둡니다.

박 씨는 항상 두 개의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인양을 촉구하는 피켓(이하 세월호 피켓)이고, 하나는 해당 시기 주요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피켓이다. 보통 사회적 문제를 담은 피켓은 정면에 들고, 세월호 피켓은 오른쪽에 두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본인 말대로 세월호 피켓은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항상 박 씨의 발 등에 놓여있다.

사소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 씨에게는 ‘국가를 상대로 아이들이 숨져간 엄청난 비극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피켓을 바닥에 두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행위이다. 피켓의 방향도 그냥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롯데백화점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비율로 보면 약 40%이고, 상인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그보다 많은 50%이지만, 움직이는 속도를 볼 때 내용을 찬찬히 잘 볼 수 있는 곳은 롯데백화점 쪽이므로 세월호 피켓은 항상 롯데백화점 쪽인 본인의 오른편에 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모순의 집약이고, 세월호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가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image00002그런데 얼마 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상인역에서 올라오던 3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먼저 사회적 문제를 담은 피켓은 스쳐보는 듯 걷더니, 세월호 피켓을 보고는 갑자기 편의점에 들려 우유와 초코바를 사서 주고 갔다고 한다.

일인시위를 100일 넘게 진행하면서 상인역을 지나는 주민들 대부분이 두 부부를 알아보는 것은 물론 수고한다고 음료수나 우유를 사주고 가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박기일 씨가 여러 일화 중 이 일을 특별히 얘기한 것은 그만큼 시민들 마음속에 우리 사회 어떤 문제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아픔과 진상규명을 바라는 마음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김선우 공동상황실장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선배님들 말씀대로 세월호가 우리한테 알려준 게 그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과 똑같은데, 우리 사회가 어느 한 부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방 이후에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시스템, 문화, 의식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앞으로 나아갈 길,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총체적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 게 세월호 참사라고 보는 거지요.

이렇게 규정한다면 세월호 사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NL이든 PD든 어떤 운동권이든, 또는 시민이냐 운동권이냐 이런 걸로 가를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또 세월호가 진상규명이 된다고 해서 과연 우리 사회가 금방 나아질 거냐, 책임자가 처벌된다고 해서 바로 달라질 거냐 이렇게 근시안으로 바라보면 답이 없거든요. 그런데 큰 그림으로 보면 지금 시기 왜 진상규명이 필요한지, 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한지, 그다음 단계에는 어디로 나아갈 건지에 대해 가늠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 사회적인 의식변화 운동, 이런 것까지로 계속 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모두 고개를 끄덕인 대목이었다.

나부터도 잘 모르는 게 더 많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박기일 씨가 불쑥 “나부터도 잘 모르는 게 더 많아요”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누구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아파하고, 애쓰고 있는 분이 스스로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니 인터뷰를 청한 나도 속으로는 다소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박기일 씨는 “416연대를 책갈피 해서 휴대폰에서 보고, 페이스북에서 416연대 소식도 다 받아보고 있는데, 몰두해서 시간을 들여서 보지는 못합니다. 처음 피켓은 ‘304명이나 죽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뭐 했나’ 이런 내용으로 시작했고요. 이제는 ‘세월호 속에 9명이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1인 시위를 100일 넘게 했지만, 나도 현재 세월호에 대한 첨예한 문제는 잘 모르고 있어요. 사람들이 현재 세월호 상황과 쟁점에 대해 물으면 뭐든지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모르면 연구하고 공부해서 알아야 하는데, 나도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작 박기일 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져 나왔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모르면서 공부도 안 해, 연구도 안 해, 시위하고 데모하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게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입니다. 알아야 한다, 알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부터도 생활에 찌 들리고 이러다 보니 100일 동안 피켓을 들면서도 크게 고민을 안 하고 지낸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운동권이 나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에 요즘은 고민이 많아지는 겁니다”

아내 이명희 씨의 고민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나는 ‘부모님들이 어떻게 싸울 것인가, 끝까지 하겠나?’ 이런 의심 전혀 안 해요. 내일이라도 그만두시겠다고 하면 박수 쳐 드리고 싶어요. 진짜 고생하셨다고 마음으로 깊이 박수를 쳐 드릴 거예요. 그렇지만 같이 열심히 하겠다, 끝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던 활동가들이 이제는 정말로 세월호 싸움을 그냥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로만 받아들이는구나. 수많은 싸움 중에 하나, 또 다른 일이 생기면 그 일 했다가 묻히는 그런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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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이분들은 사람을 찔리게 하는 재주가 있으신 분들이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사실 이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동기의 하나는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함께 해주고 있는 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남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쩌면 별 이슈거리 없이, 애는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앞으로 세월호 활동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야기 속에 딱 해답이 나왔다기보다 어쩌면 처음의 마음, 진상규명을 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근본적인 의의에 대한 확인, 그리고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입장을 한 번 더 잘 세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모범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 서서, 국민들 마음을 받아 안고, 믿고 만나고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옮겨본다

박기일씨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돌고래호 사건이 났을 때 ‘동네방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제주도 사람 5명을 인터뷰 했는데 하나같이 다 세월호를 연상하면서 이야기 하는걸 들었어요. ‘시체라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국가가 제대로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세월호는 모두가 가슴 아파하며 같이 겪는 하나의 트라우마잖아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국민들 마음에 다 자리 잡고 있거든요. 이런 국민의 마음을 우리가 잘 안아서 책임지는 단위에 있는 사람들이 중심을 잘 잡고 꾸준히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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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씨의 이야기는

“416연대 가입원서를 들고 생협 회원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자세히는 몰라도 세월호에 대해 계속 관심이 많아요. 내가 서명하고 있고, 남편이 상인역에서 일인시위 하는 것도 다 알아요. 그래서 볼 때마다 음료수 사다 주고 하는데, 말 한마디라도 고생하셨다고 얘기하는 게 나는 정말 큰 것으로 생각해요. 자기가 행동이 안 되면 옆 사람 열심히 할 때 격려라도 하는 게 맞고, 고생하셨다 말 한마디라도 하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아직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 극소수잖아요, 정말 귀한 사람들이고요. 우리가 갉아먹지 않고 잘 지켜야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얼굴 보고 이야기 하고 호소하면 다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게 원래 우리가 하는 방식이잖아요. 생협 회원을 봐도, 지난번 생존학생 치유 공간 마련 행사 때 오신 분들을 봐도 뭐라도 보태실 수 있는 분들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우리가 안 만나고, 얘기도 안 하고 그랬구나. 나도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무심결에 속단했구나 하는 반성도 했구요.”

최근 본 영화 중에 ‘암살’이 제일 좋았다는 김선우 공동상황실장은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이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왜 이렇게 혼자만 독립운동하고 있냐’라는 질문에 ‘지금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라고. 그 말이 지금 세월호하고 딱 맞다고 생각해요.”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제가 60살까지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너무 좌절할 것 같아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까지 일인시위를 계속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아내인 이명희 씨는 크게 웃으며 위와 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박기일 씨는 일인시위를 시작하던 4월 13일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어가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라도 열심히, 뭐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 언제까지라고 정해놓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는데 고등학생 딸이 “아빠, 며칠 한다고 해서 효과 있겠어요?”라고, 또 아내가 맞장구를 치며 “며칠하고 말 것 같으면 아예 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기도 하고, 밤새 글씨 쓰고 풀칠하고 한 게 아까워서라도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달서구 416지킴이들의 응원과 격려가 날마다 이어지다 보니 오늘까지도 신나게 하고 있다고. 그래서 지금은 1년이라도 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1년도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그의 마음과 노고가 고마울 따름이다.

4시 16분에 멈춘 시계

나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겪으며 어쩌면 인간이 이럴 수 있을까 순간순간 좌절했다. 나라니 대통령이니 하는 것들은 도대체 왜 존재하며, 내가 어른이고 진보운동 연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이 차마 부끄러웠고, 유가족들과 희생자에 가해지는 망발과 정치적 압력을 저지르는 자들이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image00005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고 희망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이를 알려준 것은 가장 아픈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진상규명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주고 있는 부모님들이었고,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전국 곳곳의 세월호 이웃들이었다.?우리는 인터뷰 내내 웃다가 울고, 더러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의 흉도 보고 칭찬도 하고, 수다도 한참 떨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한 장의 사진. 인터뷰 장소였던 약전골목 ‘한옥국시’ 식당의 문간방 시계는 4시 16분에 멈춰있다. 생업으로 활동에 직접 참가는 못 하고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갈 때면 꼭 ‘수고가 많다’고, ‘애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고 해 주시는 주인장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우리는 멈춘 시곗 바늘에 노란 리본을 걸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곳곳에 세월호 참사를 아파하며, 밤하늘에 별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4월의 바람과 바다가 예전 같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다.

2015년 10월,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회의 상황실 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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