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호 칼럼] 고객 앞에 꿇어앉은 여성노동자, 그것은 살려달라는 몸짓이었다

이 시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10:42

삐삐->핸드폰->스마트폰->새로운사회!

봉건사회는 자기의 삶을 하루도 남기지 않고 다 살아냈지만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한창 중년의 나이에 암에 걸려버렸다.

이글은 플라톤(이데아), 헤겔(절대이성), 마르크스(사회주의)의 전통과 슘패터의 내용적 흐름을 필자의 내용과 조금 보태서 짧고, 쉽게 부분적인 예를 들어가며 썼습니다. 또한, 이 글은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관찰이라고 알려드립니다.

기차, 비행기, 자동차, 냉장고, 컴퓨터, 텔레비젼, 아파트 등등 많은 상품들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에서 산업의 원동력이었고, 거기에 따르는 파생상품과 더욱 편리하게 개선된 신제품이 이 제도가 번영을 누리고 유지되는 버팀목이었다.

특히, 지난 2~30여년 간 통신혁명이라고 부를정도로 또한 지구촌을 하나로 만든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게 한 획기적인 상품인 삐비, 핸드폰, 스마트폰은 그 자체의 기능이 인간의 욕구를 가장 적절히 만족시킴으로서 세계 경제의 동력이 되었다. 그 이윤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한국사회 역시 삼성을 비롯한 여타 재벌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초등학생부터 90세 노인까지 대다수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며 한국 경제를 그나마 이끌어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고, 지금 한국정부는 지식, 기술, 예술을 산업화하겠다며 창조경제를 구호로 외치고 있지만, 선거에 급급한 나머지 계획성 없이 내세운 공약성 정책이라 지금은 그 흉내도 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자면 최소한 3%의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그 이하 성장률이 떨어지면 앞으로 두발자전거가 제자리에 서 버리는 효과로서 언제라도 앞으로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하여야 하는가? 슘페터의 주장과 우리의 관찰을 통해서보면 자본주의 경제를 유지하고 특히, 불황을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은 거두절미하고 인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신상품 개발이다.

그 신상품 개발이 자본주의체제의 엔진이다. 그렇게 되었을때 구상품도 신상품에 의해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는 스마트폰을 능가할만한 신상품을 개발해낼 수 있을까? 또 다시 스마트폰만큼 욕망을 부채질할만한 소재가 나타날까? 이것이 세계 경제회복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한 부분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획기적인 신상품 개발에 대한 시도를 했다. 그중 대형프로젝트는 우주여행과 생명공학에서 이윤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바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주여행은 대중적 상품으로는 불가능함이 확인됐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와 더 역심부려서 인간의 생명연장(3년, 5년, 10년)프로그램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최고 욕망을 이끌어낼 이러한 상품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저 우주 어느 곳에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지금 자본주의는 우리 인간을 그곳에 데려다주겠다는 상품이라도 개발해야 할 처지다.

이 정도면 그만 됐다!
2015년 현재, 인류는 (산업국가 중심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편리함을 갖추었다고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각종 상품에 대한 파생상품과 신제품이 개발되겠지만, 이 정도면 인간생활에 만족할 수준에 이르면서 새로운 욕망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인간욕망의 한계는 자본주의의 한계라고 나는 주장한다.

또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제도는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혐의를 끊임없이 자행했다. 구멍가게, 동네슈퍼, 빵집, 떡집, 통닭집, 장의사, 재래시장, 지식인 모두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렸다.

현장 노동자들 역시 청년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될지도 모르는 노동자, 이미 해고된 노동자 등 모두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여기에서 어떠한 세력이 자본주의를 옹호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은 결국 체제 자체를 약화시키는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데도 한국 정부는 이상한 군주까지 나서서 민초들에게 밥 축내고 있다고 적대감까지 드러내며 눈을 흘겨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그림자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역사를 보면 봉건사회도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을 거쳤다. 프랑스 황실은 농민에 대한 정체에 한계를 느끼고 공장을 육성했다. 그 세금에 의존해서 황실을 운영하였고, 자본가들의 성장에 의해서 봉건체제가 약화되는 단초가 됐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초기 주식회사가 이미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주기업은 이미 기업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의 인식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삼성 이건희는 삼성의 주인이 아니라 이윤 창출의 역할자인 것 아닌가? 이러한 구조적 통념이 사유재산의 개념을 해체한다. 이것이 주식회사는 이미 사회주의적 개념이라고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사회의 모든 질서는 경제체제에서 기인한다. 생산체제 중심에서 사적소유가 약화 내지 해체되면 그 질서는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집 대신 자동차를 산다. 또, 전세금 떼서 여행가고, 도시 집을 팔고 시골로 들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적 장치이고 사적소유 성격인 결혼을 거부하고, 이혼을 다반사로 한다. 출산율 저조와 가족 관계의 무거운 짐을 거부하는 등 사회 기본질서에서도 사적소유의 붕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봉건사회에서 기업 육성이 체제 붕괴를 앞당기는 단초가 되었듯이, 자본주의 생산체제 내에서 사적소유의 약화 역시 그와 같다.

다 기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몇 가지 예에서도 자본주의 경제는 사면초가에 처해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역사적, 현실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돌발적 붕괴를 전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윤획득이라는 자본주의 최고의 목표는 장기간 지속하면서 인간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며 장기적 경제불황과 착취, 이 혼돈의 시기는 오랫동안 지속할 것이다.

[출처=KBS뉴스 갈무리]
[출처=KBS뉴스 갈무리]

얼마 전 고객 앞에 꿇어앉은 두 여성노동자! 그것은 살려달라는 몸짓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었고,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우리 기성세대를 향해 꾸짖는 것이었다.

이 시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