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빈곤층, 쪽방 거주민에게 필요한 주거난방 대책은?

대구 쪽방 거주민, "권 시장 다녀가도 바뀌는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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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남짓(4.78㎡)한 쪽방, 두 뼘 크기의 창문으로는 햇볕 대신 한기가 들어온다. 방은 하수구 냄새와 담배 냄새로 찌들어있다. A씨(68, 북구 칠성동)의 삶에도 가난의 냄새가 깊게 뱄다.

건축물대장에도 없는 목구조 집. 1949년 지어진 모습 그대로인 이 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쳤다. 토굴이다. 찾아오는 이 없는 토굴에 나지막한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온다. 1인용 전기장판 주변은 가스버너, 주방 식기와 옷가지, 냉장고가 차지하고 있다. 한 몸 누이면 발 디딜 곳이 없다. 전등을 끄고 텔레비전으로 방을 밝힐 수 있다.

A씨는 다가올 겨울이 걱정이다. 석면 슬레이트 천장은 한기를 막는 데는 소용없다. 두 뼘 크기의 단창은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단열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난방장치인 아궁이는 전기장판으로 대신했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 세면이나 세탁을 하는 공동 주방은 수도꼭지 하나가 전부다. 세찬 바람과 찬물을 생각하면 벌써 몸이 으슬으슬 움츠러든다. 마음으론 열두 번도 집을 옮겼다. 그렇지만 주거급여, 생활급여 전부 다 합쳐 월수입이 40만 원인 A씨는 지금 10만 원짜리 쪽방 이상은 생각할 수 없다. 공동주택은커녕, 인스턴트 식품과 냄새나는 수돗물조차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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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겨울, 여름만 오면 걱정이지요. 바람도 안 통하고 외풍도 심하고. 급여는 깎이고. 담뱃값은 두 배로 오르고. 당장 먹는 게 담뱃값 오른 것만큼 힘들어졌지요. 대구시장이 쪽방에 관심 둔다면서요? 바뀌는 건 없어요···”

북구 노원동의 △△여관. 비슷한 처지의 쪽방 거주인 10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곳. 이곳의 특실이라는 301호는 쪽방치고는 큰 편이다. 화장실 포함 11㎡.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이지만 76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단열 등급은 모두 기준치 이하다. 벽이 바람막이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여관의 특징은 조도가 낮고 난방 스위치가 복도에 있다는 것.

월세는 20만 원, 세입자 B(70) 씨의 노령연금 16만 원으로 충당하기 어렵다. △△여관 주인은 B씨가 조명 밝은 것으로 써달라고 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전등은 70lux. △△여관 역시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모두 열 관류율(W/(㎡·K))이 등급외다. 여름엔 찜통, 겨울엔 냉동실로 변한다.

대구시 쪽방 거주인은 겨울을 앞두고 몸을 움츠리는 삶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시의 여관 등을 포함한 쪽방 수는 1000여 개이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사람이 살지 않는 방을 제하고 888명이 쪽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 50%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고 나머지는 차상위계층이다.

대구시는 폭염·혹한기 대책으로 전열기, 보일러 유지 보수, 웃풍 방지 비닐 등으로 응급처치에 나서고 있다. 단열 시공 등 근본적인 방지책이 필요하지만, 대구시로서는 월세 인상 등의 우려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8월 쪽방을 방문해 쪽방 거주인들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당장 다가오는 겨울에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는 못한 것.

하지만 여러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쪽방 거주인의 인권을 위해 주거환경이 나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울건설협동조합은 10월, 대구시 쪽방상담소의 추천을 받아 4개 구 13개 가구의 주거 실태를 조사했다. 벽체, 창문, 지붕 등의 온도저하율(TDR, 0~1 사이 값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결로방지가 우수하다)과 열관류율(재료의 단열 성능. 수치가 낮을수록 성능이 좋다) 등 난방·단열 관련 현황을 측정했다. 13개 가구 중 대조군으로 측정한 희망하우스를 제외한 12개 가구가 온도저하율(TDR), 열관류율 모두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예를 들어 권영진 시장이 올여름 방문했던 ㅅ여관의 경우 바닥면적이 4.88㎡인데, 벽체의 열관류율은 동서남북 모두 1.54W/(㎡·K)였다. 국토교통부령인 건축물의설비기준등에관한규칙에 따라 거실 외벽의 열관류율은 0.64W/(㎡·K) 이하가 되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대조군인 희망하우스는 0.76W/(㎡·K)이었다. 서춘희 주택에너지진단사는 “열관류율이 1.54W/(㎡·K)라는 건 단열 능력이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ㅅ여관의 창문은 단창인데, 창문의 열관류율은 6.6W/(㎡·K)이었다. 대조군은 2.9W/(㎡·K), 국토교통부령은 2.7W/(㎡·K) 이하를 충족토록 하고 있다. 난방 에너지를 분석한 결과 ㅅ여관의 단위면적당 난방에너지 소요량(1134.05)이 표준주택(346.73)의 3배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춘희 주택에너지진단사가 벽채 단열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춘희 주택에너지진단사가 벽채 단열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춘희 주택에너지진단사는 “벽체에 단열재를 설치하고 창호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이 크게 개선된다. 칠성동의 목조건물처럼 아궁이가 설치된 경우에는 방바닥을 들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입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데다가 월세 인상도 우려스럽지만, 사람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주거 복지 차원에서 개선 작업이 꼭 필요하다”며 “집수리에 월세 동결하는 각서를 받는 방법 등도 고민해야 한다. 연탄 나눔 등은 의미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주거 내 에너지 자립 등도 함께 고민해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근 방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쪽방상담소를 통해서 폭염대책과 혹한기 대책을 세우고 있다. 단열 시공보다도 예산을 고려해 비닐 등을 통해 웃풍 방지 등의 조치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며 “단열 시공 같은 공사의 경우 월세 인상 등의 우려가 있어 고민스럽다. 대신?쪽방상담소 역할할 수 있는 민간 사업을 하는 시설을 한 개소 더 늘이고 공동 화장실, 샤워장 등의 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