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가 가설 건축물에서 사는 이유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드러낸 주거 현실
열악한 농가 상황도 문제···개인이 기숙사 건축 힘들고
가설건축물에 부대시설 만드는 것도 규제에 막혀

13:52

비닐하우스가 물결처럼 펼쳐진 농촌의 들판. 작물이 자라는 비닐하우스 사이사이, 검은색 차양막으로 덮인 비닐하우스가 있다. 차양막으로 덮인 비닐하우스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농기구 창고로 쓰이기도, 농부들의 쉼터나 수확한 작물의 선별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은 이주노동자가 먹고사는 집이기도 하다.

비닐하우스를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는 경우, 통상적으로 비닐하우스 안에 3m×6m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다. 애초부터 주거용이 아닌 물류수송용으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박스에는 단열 기능이 없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방음도 물론 되지 않는다. 하수도도 연결할 수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쓸 수 없다. 용변은 노상이나 밭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물은 외부에서 호수로 끌어올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하수도는 어렵기 때문에 샤워를 할 수는 없다.

▲성주 한 농가 비닐하우스 안에 마련된 이주노동자 숙소
▲성주 농가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

장점은 단 하나. 싸다. 3m×6m짜리 컨테이너는 200~300만 원에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컨테이너는 이주노동자의 숙소가 된다.

무료는 아니다. 농장주마다 차이가 있고 지역마다 시세 차이도 있지만, 한 달 사용에 15~30만 원가량을 내야 한다. 성주 한 농가에서 확인한 결과, 숙소 사용료, 쌀과 김치 제공 비용을 먼저 공제한 뒤의 이주노동자가 손에 쥐는 급여는 150~160만 원이다.

이 또한 상당히 개선된 조건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이주노동자 일손 찾기가 워낙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2020년, 성주 농가에서는 보통 월 급여로 14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변변한 난방장치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사망한 지 한 달여 시간이 흘렀지만, 농촌 근로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똑같은 숙소에서 지낸다. 대구경북의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이주노동자 69.6%가 가설건축물에 산다고 응답했다. 가설건축물은 조립식 패널(34%), 컨테이너(25%), 비닐하우스 내 시설(10.6%)로 조사됐다.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해 9~11월 농·어촌사업장 3,500곳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이주노동자 3,850명이 답했다.

■이주노동자가 가설 건축물에서 사는 이유

<뉴스민>은 1월 26일,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와 함께 성주군 농가를 방문했다. 농장주 협조를 받기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연락된 한 농장주로부터 농가와 이주노동자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1명을 고용해 컨테이너 숙소를 제공한 농장주 A 씨에 따르면 농장주가 이주노동자에게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주거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농촌 특성상 수확 철 등 일부 시기에 새벽이나 해진 후 야간 노동이 불가피하며, 대중교통도 없기 때문에 농장 근처에 숙소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농장주 개인이 숙소 제공을 위해 원룸이나 공동숙사 같은 건축물을 지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가설 건축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가 땅에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만들려고 해도, 정화조 설치나 콘크리트 타설은 불가능하거나 일부 지자체에서 허가하더라도 조건이 까다롭다고 한다. 비용도 1,000만 원대 이상이 들기 때문에, 농민들도 간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정이다. 농가 자체가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규제 개선과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는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3일 오후 3시, 연대회의는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가 이주노동자 숙소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농어촌 지역 전반적인 문제로, 지역에서도 먼저 전수조사를 통해 이주노동자 숙소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연대회의는 “실태조사 결과 70%의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가설 건축물에서 생활한다. 사생활 보호나 화재 위험에도 취약하며 이런 시설에서 기숙사비도 공제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가 아니면 우리의 식탁을 채울 수도 없는 상황인데 화재, 전기사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민다 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은 “비닐하우스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다. 화장실은 바깥에 있고, 하우스 안에 쥐가 다닌다. 춥고 무섭다”며 “우리도 안전하게 일하고 고향에 가서 가족과 살고 싶다. 사람 살 수 있는 곳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전수조사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합동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지역협력과 관계자는 “작년도 조사 이후 (고용노동부가) 대책을 내놨는데, 노동청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장주 전화도 많이 왔다”며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필요가 있다. 4~5월 합동점검을 통해서 개선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주 한 농가 비닐하우스 안에 마련된 이주노동자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