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랭이’가 죽었다(상)] 그는 돌보던 길고양이를 물어 죽인 견주를 고소했다

마을공동체 꾸려 마을고양이들 책임지던 '점터냥이'
서명운동 3,000명 참여, 변호사 선임해 고소
"견주 처벌과 재발 방지돼야"

10:59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인근 편의점 앞에서 중형견 벨지안 말리누아 2마리가 길고양이를 물어 죽였다. 해당 견종은 군견이나 구조견으로 주로 쓰이는데, 동물보호법이 정한 입마개 대상은 아니었다. 견주는 개 목줄을 하지 않은 채 개를 뒤따르다가, 편의점주가 소리치자 개를 데리고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 고양이는 김현우(29) 씨가 돌보던 ‘노랭이’ 였다. 김 씨는 지난 4일 견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성서경찰서에 고소했다.

▲당시 CCTV 모습. 견주는 벨지안 말리누아 2마리의 목줄을 잡고 있지않았고(좌), 그 결과 개들은 노랭이를 물어 죽였다. 노랭이에겐 늑골부위에 선명한 이빨자국이 확인됐고, 이로인한 폐출혈이 사인으로 확인됐다. (사진=김현우 제공)

동물 공존 사업 펼치던 ‘점터냥이’
군집TNR로 25마리 중성화도

김현우 씨는 달서구 마을공동체 ‘점터냥이’ 대표로, 계명대 성서캠퍼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한다. 점터냥이는 2020년부터 2년째 달서구청 마을공동체로 지정돼 동물보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변 상인 10여 명을 중심으로 그 직원과 가족들도 함께 뜻을 같이 한다.

김 씨는 2019년 재개발 지역에 살다가 구조된 고양이 덕분에 ‘길 위의 삶’에 주목하게 됐다. 그 무렵 가게를 열면서 주변 고양이 한 두 마리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고양이를 챙기는 주변 상인들을 알게 됐고, 연락처를 받고 매일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레 의기투합하게 됐다. 함께 힘을 모아서 마을고양이를 확실히 책임져 보기로 한 것이다.

‘점터냥이’ 마을공동체는 지난해 군집 TNR(동시에 길고양이 중성화를 하는 것)로 길고양이 25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완료했고, 유기묘와 어린 고양이 20마리를 입양 보냈다.

밥 주면 고양이가 늘어난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잖아요.
중성화 수술로 개체 수를 조절하고, 주변 위생도 철저하게 관리해요.
대소변 때문에 피해 본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저희가 나서서 화장실도 설치하고요. 

김 씨는 점터냥이가 마을공동체로 지정돼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활동이 가진 공공성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하는 동물보호가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닌, 싫어하는 사람까지 배려하고 지역주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네이버 메인 화면에 저희 활동이 소개되기도 하고,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 촬영도 했어요.
동물 보호의 좋은 선례를 만들고, 올바른 공존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동물권이 더 진전된 사회에 일조하고 싶어요.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지정되면 구청으로부터 활동비를 일부 보조받는다. 그렇지만 보조금보다 사비를 더 많이 쓴다. 김 씨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으면 수시로 집에 데려가 케어를 하기도 하고, 병원도 데려간다”며 “가게 한켠에는 고양이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창고나 테라스도 늘 열려있다”고 말했다. 각자 가게 모습을 본뜬 고양이 급식소에는 신선한 물과 건사료가 늘 마련되어 있다.

▲달서구 마을공동체 점터냥이는 성서계대 인근 소상공인들의 동물보호단체다. 각 가게의 개성을 살린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한 모습. (사진=김현우 제공)

“가해견주 처벌과 재발방지” 서명운동, 3천 명 참여
사건이 흐지부지되지 않길 바라

‘노랭이 사건’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노랭이가 주로 밥을 먹던 편의점의 사장님은 여전히 노랭이가 먹던 영양제를 치우지 못했다. ‘점터냥이’ 공동체는 다른 고양이도 비슷한 일을 당할까 걱정했다. 김 씨는 지난 몇 년간 노랭이 보호자로 동물병원에 다니는 등 정성껏 보살펴 왔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노랭이가 동네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잘 살 것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대로 사건이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온·오프라인으로 가해 견주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운동은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접근금지 처분 ▲반려견 조사 ▲유사사고에 대한 행정적인 대책 ▲가해자의 사과 및 손해배상 4가지 내용을 주요하게 담았다.

서명운동에는 낯 모르는 3,000명이 동참해 주었다. 후원금도 모였다. 김 씨는 이를 토대로 지난 4일 성서경찰서에 가해 견주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현재 담당수사관이 배정된 상태다. 그는 “동물권에 이해가 높은 변호사도 선임했다. 이 문제를 제대로 대응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고소를 하는데는 사람들의 제보가 도움이 많이 됐다. 김 씨의 SNS나 개인 휴대폰으로 실시간으로 연락이 왔다. ‘지금 어디에 가해 견주가 있는데, 목줄을 안 하고 있어요’와 같은 내용이었다. 김 씨는 일시적인 사고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CCTV 증거도 있고, 가해견주가 누군지도 알지만 상황은 그대로였어요.
가해견주가 목줄을 여전히 안하고 다닌다는 목격담과 사진, 영상들도 수없이 쏟아졌는데도요.
재차 경찰 측에 연락을 취했지만 수사는 미온적으로 느껴졌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건으로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개와 견주는 사람에게도 위험합니다.

▲노랭이가 죽은 뒤 누군가가 추모의 의미로 고양이 간식과 꽃 등을 놔두었다.

김 씨는 확실한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동물병원에서 노랭이 검안도 진행했다. 사체는 혹시 조사에 필요할까 싶어 반려동물 장례식장 안치실에 보관하고 있다. 김 씨는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노랭이를 화장할 계획이다. 

김 씨는 이러 일이 재발되지 않길 바란다. 그는 “지난 4월 월곡역사공원에서도 개가 고양이를 물었던 비슷한 사건은 과태료 처분으로 결국 끝났다”며 “지난달에는 사람이 물리는 사고도 있었는데, 관련 대안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관련기사=[‘노랭이’가 죽었다(하)] 반려동물 ‘기질평가’ 준비하는 정부(‘21.6.18))

▲노랭이 모습. (사진=김현우 제공)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