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의 김수영-되기] (8) 봄밤

14:05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 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글에서 인용한 ‘봄밤’은 <김수영 전집 1(시)>에 수록됐습니다.

김수영에게 몇 편의 뛰어난 서정시가 있다면, 아마 이 작품도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정시는 사전적 정의 그대로 한 인간의 정서가 가진 무늬를 표현한 시다. 서정시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시인의 현재 정서 상태로 자연이라든가 객관적 사물을 일방적으로 해석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시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른바 미래파 등장 이후 일군의 비평가들이 서정시를 대중음악에서의 ‘발라드’와 같다고 조롱하면서 비판한 것은 자연과 사물을 시인의 주관적 정서에 종속시킨 측면을 가리킨다.

서정의 폭력에 대한 그 비판은 타당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한국 시사(詩史)에서 서정시는 대체로 자연의 인간화에 이바지해왔고, 그 방법적 양식으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한 시인 자신의 내적 평화를 지향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서정이라는 동일성으로 자연이라는 타자 혹은 우리 현실에 파다한 차이를 종속시킨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미패라를 옹호했던 반(비)서정시 흐름은 시의 발생원리를 인위적으로 흩으려 놓음으로써, 자연을 근원적으로 타자화시킨 문명에 대한 대립을 무디게 해온 것도 사실이다.

시인의 정서를 주조한 외부는 삶의 조건에 따라 자연일 수도 있고 문명일 수도 있다. 더 사실적으로는 자연과 근대문명의 대립이야말로 오늘날 시의 정신이 천착해야 할 시급한 화두임을 감안할 때, 자연-서정시 비판이 근대문명에 대한 혁명적 물음으로 전개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물음을 수행한 시인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그게 바로 김수영이다.

김수영은 1954년 부인 김현경과 재회한 후 이듬해인 1955년에 서강, 즉 지금의 마포구 구수동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우리가 아는 김수영 시의 본격적인 개진이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전쟁통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고 다시 그 역할을 할당받아 생활을 꾸려가기 시작하면서 다소간 외면적 안정을 찾아간 듯 보인다. 추측건대, 「여름뜰」에 나오는 “여름뜰”, 「여름 아침」에 등장하는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나 “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이 “차차 시골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는 표현들은 바로 서강 생활에서 얻은 것들이다. 그리고 이 시 다음에 쓴 것으로 보이는 「채소밭 가에서」의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같은 구절도 마찬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시 「봄밤」도 마찬가지이다. ‘봄밤’이 도회적 정서와는 그렇게 썩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도 서울 도심지에 살 때는 영 어색하고 작위적인 무엇이었을 것이다. 또, “땅속의 벌레” 같은 표현은 어떤가. 아무튼, 김수영이 서강으로 이주한 후에, 자연으로부터 얻은 시적 영감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게 내 판단이다.

이를테면, 4·19혁명 직후에 쓴 「가다오 나가다오」의 2~4연에 등장하는 실감나는 표현들은 그의 시골살이 즉, 서강에서의 생활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 구절 중 일부는 이렇다.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어떻게 보면 「봄밤」은 김수영 자신이 직면한 모더니티에 대한 거리를 자연을 통해 확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후기시에서 김수영은 근대 문명의 허위와 직접 겨루기도 하지만, 1950년대의 그는 근대성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근대성은 피할 수도 그렇다고 섣불리 돌파할 수도 없는 난제였던 것이다. 근대와의 대결에서 근대에 먼저 익숙해지는 길은 거의 필패를 보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서강 생활의 시작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보는 것이다.

일단 이 시에서 “서둘지 말라”는 자기다짐을 되풀이한다. 근대성은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요구한다. 그리고 근대적인 삶은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강요하기도 한다. 즉, ‘홈이 패인 공간’만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니 멀리 들리는 기적소리는 (황지우처럼 기차가 끔찍한 모더니티는 아닐지라도) “과연 슬프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뒷배 삼으면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법이다. (여기서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은 근대인의 삶을 매우 압축해 놓은 구절이다.)

또,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숙고하는 시간이 ‘봄밤’이라면, 김수영은 그러한 것들과 얼마간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것이다. “무성하는 채소밭”(「채소밭 가에서」)이 느껴지는 ‘봄밤’이라면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에서 김수영은 자신의 내면을 다지면서 근대성의 소용돌이 안으로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모두?다섯 번 등장하는 “서둘지 말라”는 근대의 보폭에 절대 맞추지 않을 것을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1연에서는 “혁혁한 업적”을 이루지 못한 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뜨는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생활이 주어져도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하고, 2연에서는 그로 인해 슬픔이 찾아들더라도 자신의 걸음걸이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3연은 다시 한 번 그것을 반복해서 변주하는데, 그러한 마음과 자세가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것이라고 해도 “서둘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다짐을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 자신이 실존하는 시간으로서의 “봄”, 자신의 내면의 “빛”, “인생”을 불러내어 마치 주술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3연의 “절제여/나의 귀여운 아들이여/오오 나의 영감이여”는 무엇인 걸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시의 정신인, “반역의 정신”(「구름의 파수병」)이다. 그러니까 이 시에서 김수영은 자신이 가야 할 시 전체를 걸고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으로 표상되는 근대성에 “반역”하는 것이다.

혹자들은 1950년대 김수영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반역의 정신”을 김수영이 처한 시대적 정황과 연결하지 않고 한 개인의 실존적 자아의 형상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 내부적 해석은 ‘김수영 신화’라는 버캐(엉겨서 굳어진 감정 따위)만을 양산할 뿐이다. 그런 접근법은 이 시와 같은 해에 쓰인?「서시」에 등장하는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나무여 영혼이여”가 품고 있는 의미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여기서 “정지의 미”와 “서둘지 말라”는 깊게 연동되어 있다.

서정시가 일반적으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해 시인 자신의 내적 평화를 지향해’ 온 전통에서 김수영의 서정시는 이렇게 비켜 서 있다. 또, 역으로 의미를 의도적으로 사장하는 진실되지 못한 난해시와도 그는 불화했으며, 작품은 되지 않은 채 주의주장만 가득한 참여시와도 거리를 두었다. 우리가 김수영의 시에서 아직도 어떤 힘과 생기를 느낀다면, 그건 “반역의 정신”을 밖으로 발산하는 것만큼, 「봄밤」에서 보듯, 자신의 내면을 구축하는 일도 수행했기 때문이다.

시의 독특성은 이러한 고독한 길 위에서만 생성된다. 그러나 고독한 길은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작품 전문은 저작권자와 협의하에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