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아사히글라스 투쟁 1년, 구미시 ‘노조혐오’를 다시 확인하다

13:00

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를 사랑한다. 구미시는 매년 ‘노동절 경축음악회’를 여는데, 행사 취지가 “근로자가 행복하면 시민이 행복하고, 시민이 행복하면 구미가 행복해진다”이다. 또, 남 시장은 지난달 ‘한국신뢰성 대상’ 수상 소감으로 “함께 노력해온 구미시민, 기업체, 근로자, 시 모든 공무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앞선 4월 ‘대한민국 창조경제대상’ 수상 소감을 밝힐 때도 ‘근로자’의 공을 치하했다. 그뿐만 아니다. 구미시를 알릴 때면 언제나 ‘12만 근로자의 도시’임을 빼놓지 않는다.

▲구미시는 2016년 5월 7일 동락공원 광장에서 노사민정협의체, 한국노총 구미지부 등이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경축음악회를 열었다. [사진=구미시]
▲구미시는 2016년 5월 7일 동락공원 광장에서 노사민정협의체, 한국노총 구미지부 등이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경축음악회를 열었다. [사진=구미시]

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를 사랑한다. 지난해 5월 29일 노조를 결성한 이후 2달 만에 공장에서 쫓겨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청 앞에 천막농성장을 설치하자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남유진 시장은 시청 앞 농성장에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전기난방기 대신 가스난방을 하라는 의중이었으리라. 또, 크리스마스를 맞아 늦은 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시청 진입로 가로수에 성탄조명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오로지 농성 중인 이들을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구미시는 지난 4월 21일 아사히비정규직노조의 농성장을 철거한 후 꽃바구니를 여러개 마련했다.
▲구미시는 지난 4월 21일 아사히비정규직노조의 농성장을 철거한 후 꽃바구니를 여러개 마련했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근로자’를 사랑한다. 지난 4월 21일 구미시청과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 있던 노조의 천막농성장을 철거해주었다. 10개월째 이어진 농성으로 지친 근로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 대신 농성장이 있던 시청 인도에는 꽃바구니를 잔뜩 설치해주었다. 또, 공장 앞 재설치한 농성장 부근 가로등 전기를 모두 껐다. 늦은 밤 가로등 불빛에 눈이 부셔 밤잠을 설칠 근로자를 걱정해서 일 것이다.

이렇게 남 시장과 구미시는 ‘근로자’를 사랑하지만, ‘노동조합’은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혐오의 대상이다. 노조원, 특히 민주노총 노조원은 근로자가 아니다. 헌법이 명시한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기업의 이윤 추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구미시가 베풀어주는 돈, 행사를 거부하는 귀찮은 존재다. 가끔 토닥여주면, 열심히 기계처럼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3일 오후 3시 구미시청 앞에서 집회를 마친 노조원들은 ‘천막농성장 강제철거’ 항의서한 전달을 위해 시청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항의서한만 전달하고 오후 4시 공장 앞에서 예정된 집회장소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십여 명의 노조원이 시청 정문으로 걸어가자, 경찰 200명은 순식간에 진입로를 봉쇄했다.

경찰은 “대표자만 가면 되지, 왜 노조원들이 시청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 안 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한 경찰이 금속노조 대구지부 깃발을 손으로 잡아채려다 깃대를 부러뜨렸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도 근로자는 사랑하지만, 노조원은 혐오하는 남 시장의 시정방침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굳이 노조가 시청 안에 발 디디는 것이 혐오스럽다면, 시장 또는 담당 공무원이 직접 정문 앞까지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6시까지 이어진 집회가 마칠 때까지 남 시장과 공무원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 노조원이기 때문이다.

▲당초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사히 투쟁 1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는 시청 앞에서 열렸다.
▲당초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사히 투쟁 1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는 시청 앞에서 열렸다.

지난해 10월 13일 아사히글라스 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구미시 노사민정실무협의회’가 열렸다. 해고 노동자가 받은 질문 중에는 “노조 안 하면 안 되느냐”가 있었다. 근로자로 만족하고 살면 먹고 살게는 해줄 것인데 왜 노조를 만들었느냐는 이야기다.

2015년 5월 29일 노조를 만들었고, 7월 31일 해고된 170명의 노동자. 현재까지 23명은 ‘근로자’가 아닌 노조원으로 남아 있다. 왜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노조원이 됐을까. ‘근로자’로 살아왔던 이들은 노조원이 되면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사진도 찍고, 박정희 우상화 사업도 알게 됐고, 전국을 순회하기도 했다. ‘근로자’로 살때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 23명은 남 시장과 구미시가 싫어하는 노조원이 됐다.

3일 시청 앞에서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노동조합은 불법집단, 빨갱이집단으로 여기는 게 일상적입니다. 투쟁의 시발점은 노동조합 만들었다는 이유로 170명을 문자 한 통으로 계약 해지하고, 정문에 용역경비를 104명이나 배치한 것부터 시작됐습니다. 파업 한 번 하지 않고, 불법행위 한 번 해보지 못했는데, 문자 한 통 받고 쫓겨나서 가보니, 정문에는 닭장차가 있고, 폭력경비가 있는 것이 말이 됩니까. 이것이 이 땅의 현실이고 구미의 현실입니다.

도대체 아사히글라스가 어떤 기업이길래 구미시가 이렇게 사력을 다해서 기업을 지켜주고 있습니까. 이 정도 했으면 구미시도 노동부도 할만큼 한 것 아닙니까. 해고, 부당노동행위, 불법파견 이 사건들 1년이 되도록 노동부는 아무것도 판결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아사히글라스가 왜 저리 당당하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구미시가 있고, 경찰이 있고 노동부가 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더러운 김앤장이 법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법이 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부당해고로, 불법으로 최소한 억울한 노동자 이야기를 들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사히 비정규직지회 어렵게 어렵게 23명의 동지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1년이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죽어도 그냥 죽지 않겠습니다. 우리 동지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최소한 구미시청은 바꿔놓자. 구미시는 바꿔놓자. 그런데 세상을 바꾸는 게 더 빠르다고 이야기하는 동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