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전체 특성화고 대상 청소년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나서다

일하는 청소년 인권을 찾아서 ⑤

15:49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 같은 기대로 대구지역 특성화고등학교 전체를 조사해보자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국가는 법외노조라며 전교조 괴롭히기에 착수했다. 상황은 전교조에 유리하지 않았지만, 27년 역사를 지닌 전교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직 전교조가 할 일이 많으므로 쉽게 무너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교조는 아직 염원한 노동교과서를 만들고 공교육 정규 수업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노동인권교육이 외주화된 방식으로 강사에 의존하지만, 노동인권수업을 할 수 있는 교사가 생겨날 것이고, 교실 안 수업을 위해서 교안과 교재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구지역 특성화고등학교 전체를 조사하고 싶다는 열망은 바로 청소년이 처한 위치와 조건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기초로 청소년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대구청노넷은 설문문항을 설계하면서 청소년 당사자가 직접 조사에 응한 후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실전에서 막상 해보니 허점이 눈에 보이더라. 신기할 노릇이다. 그래도 다행히 전교조 선생님들이 계시는 건 큰 자산이었다.

손호만 전교조 대구지부장님을 따라 학교 현장 선생님들을 만났다. 대구특성화고 실태조사의 목적과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드리자 선생님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른 곳에서 나서 주니 감사하다며 협조해주겠다고 했다. 어느 교사 한 분이 온라인 설문을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의견을 주었다.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전교조 교사가 없는 학교에도 소통하고 참여를 유도할 방법이라고 했다. 제안하신 분께서 적극 온라인 설문을 성사시켜주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서면조사지는 완성돼 있어서 온라인설문을 똑같은 질문지로 만들게 됐다. 간절한 만큼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설문조사 한다는 것을 안팎으로 소문내니까, 아들이 특성화고 재학 중이라는 부모가 아들을 꼬여 온라인 설문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는 분이 특성화고 교사로 있다며 소개해주는 이도 있어서 몇 개 학교는 손 안 대고 코 풀었다. 또, 희년공부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학생이 스스로 조사원이 돼 학교 친구를 조사하고 설문지를 받아준 것도 있었다.

대구 청소년노동인권

그러고도 방법을 찾지 못한 학교는 대구청노넷이 직접 학교로 방문해 조사했다. 넓고 큰 탁자와 의자, 설문지와 볼펜, 그리고 조사에 응답하는 학생 선물로 사탕과 물티슈를 준비했다. 보따리, 보따리 짐 보따리를 풀고 자리를 잡으니, 내리쬐는 뙤약볕이 뜨겁다.

여학교 앞에서 전을 펴고, 수업 마치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남학생이 다가와 의자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그 남학생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다. 대학을 다닌다는 남학생도 알바를 해왔고, 지금도 알바를 하고 있단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일자리가 많고, 오토바이 배달은 수수료 방식이라서 장시간 하지 않으면 돈이 안 된다는 얘기, 그래도 자신은 경력이 있어서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에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며 자긍심을 슬쩍 비춘다. 여자친구에게 꼭 설문조사에 참여하라고 권하겠단다.

그는 마칠 시간이 되자 반대쪽 문으로 간다면 바퀴가 엄청 굵고 “부릉부르릉” 우렁찬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의 우울한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저런 오빠 한 명 없이 주마등처럼 지나간 버린 세월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가까이 오지 않았지만, 길 건너에도, 계단 위쪽에도 간간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역력한 남자들이 눈에 띈다. 여자친구가 학교 마치고 나오길 눈 빠지게 기다리는 듯하다.

하루는 대구청노넷 훈남께서 참여한 어느 여학교 앞. 나는 늘 그렇듯이 선전물을 돌리며 “대구지역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나왔어요. 특성화고 청소년 인권조사를 하고 있어요. 5분만 시간 내서 설문조사 해주세요”라고 목청을 올렸지만, 학생들은 “시간이 없어요” 라거나, “다음에 할게요”라면서 거절할 때가 많았다. 분명 내게는 거절했던 그 여학생들이 어느새 설문조사 좌판에 서 있는 훈남 곁에 우르르 모여 있었다.

학교 앞 방문조사를 계획할 때만 해도 한 학교에 3일씩은 나가야 설문량을 채울 거라고 예상했다. 날도 덥고, 한시라도 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학생들이 설문에 쉽게 응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학교 앞에서 실전에 들어가니 “이런 거 우리가 해줘야 한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학생이 있으면 그 무리는 함께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에 참여하면 물티슈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도 설문에 응해준다. 사탕을 먹으려고 손을 뻗을 때, 설문조사 하는 분께 드린다고 하면 응해준다. 꼬시는 방법이 다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 그중에는 알바를 경험한 학생들이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었을 이야기가 있고, 개인마다 사연이 있었으리라 보인다.

대구 청소년노동인권때로는 이런 거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찬바람 쌩 불며 지나가는 학생을 만날 때도 있다. 바쁘다는 이유를 대지만 우리를 귀찮은 영업사원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가 청소년노동인권을 떠들어대도,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고 믿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바쁘게 알바 하러 가는 학생은 관심조차 가질 여유가 없을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시험공부 하는 학생들은 저녁밥 먹고 학교로 돌아가 보충수업에 자율학습까지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한단다.

지금 알바하는 학생 중에서 미심쩍은 점을 물어보고 싶어 다가온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노동상담소 소장님이 계실 때가 있어서 상담이 이루어졌다. 특성화고 청소년 조사는 대구지역 20개 학교 중 19개 학교 조사를 끝냈다.

대구청노넷이 가장 수고 많았고, 전교조 실업위원회 교사들과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이었다. 목표를 소심하게 잡았던 걸 뒤늦게 후회했다. 수거한 설문지는 790부 정도이니 애초 목표에 비하면 150% 달성했다.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인데, 나는 기분이 좋아서 자화자찬하며 엄청 높은 산 정상에 오른 것처럼 기뻐 “야—호”하며 메아리를 기다린다.

그렇게 기뻐하던 순간은 잠시였다. 며칠 후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는 한 청년이 달려오는 지하철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언론으로 접했다. 그는 현장실습생으로 조기취업한 열아홉의 청소년노동자였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가슴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