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우둔하고 부지런한 간부보다 총명하고 게으른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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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십년 전 군 복무 시절, 일에 미쳐있었다. 일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휴일도 없이 근무하며 없는 일도 만들어서 했다. 후배들에게 따르기를 은근히 강요도 했다. 이러한 상태가 일중독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우리나라는 6·25전쟁 폐허에서 세계 10위권에 우뚝 서기까지 피와 땀을 많이 흘려왔다. 이 과정에서 OECD국가 중 과로사가 가장 많고, 일에 몰입도는 가장 낮다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일중독의 부작용은 다양하다. 고혈압, 당뇨 등 대사증후군처럼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자신과 같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우둔하고 부지런한 간부보다 총명하고 게으른 간부가 더 좋다”는 유머도 이런 상황을 빗대어 나왔다. 부지런한 간부는 일만 하다가 피곤에 지쳐 핵심을 놓치는 반면 게으른 간부는 여유가 있어 핵심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불철주야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지속하면 안 된다.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처럼 사람도 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필자는 일만 하다 보니 여유가 없었다. 매사 발등에 불 끄기여서 가진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상관의 충고가 질책으로 들렸고 동료들의 조언을 간섭으로 여겼다. 후배들의 건전한 의견에도 짜증을 냈다. 늘 피곤하여 집중력이 떨어졌고, 관련 부서와 소통이 부족하여 협력을 잘하지 못했다. 이처럼 일중독의 부작용으로 허우적거리던 필자를 직속상관이 잡아 주었다. 그는 점심때마다 일에 파묻힌 필자를 불러내어 함께 걸었다. 이때 대화를 통해 일을 다 처리해 주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일중독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대구수성파밀리아합창단. 2023춘천온세대합창페스티벌에서. 2023년 9월 2일 다같이 입을모아 ‘에델바이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군에서 전역한 지 삼 년이 지났다. 그간 군에서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자 여기저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가 선배의 권유로 대구의 파밀리아 가족합창단을 만나면서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가족합창단 이름대로 조부모를 포함해 3대가 합창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한때 필자처럼 일에 빠진 사람들에게 합창단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거기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단원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악보를 해석하고 함께 노래하는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합창에 몰입하는 것을 본다.

현재 세계 최고 교육선진국인 핀란드는 초·중·고등학교에서 합창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도 핀란드를 따라 가고 있다. 그 이유는 합창을 통해 소통과 공감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합창단의 지휘자는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데 음정과 박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이다”라고 하면서 “악보의 쉼표는 연주의 한부분이다. 쉼표에서는 꼭 쉬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마디에서 동시에 화음을 동시에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삶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곧 재충전이다. 요즘 법적으로 한주에 일을 몇 시간 하느냐에 논란이 많다. 분명한 것은 일하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같은 일이라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리더는 먼저 자신을 성찰하고 구성원들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 보라. 합창단의 지휘자가 단원들과 같이 연주하듯이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쉬면 즐거움은 저절로 따라 나온다. 쉼표에서 쉬어야 하듯이 삶에서도 여유를 가져야 더 뜨거운 열정이 쏟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