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혁의 야매독서노트] (3) 더 이상 이 세계는 계속되지 않는다

그래픽노블 “파리코뮌:민중의함성”

18:59

영국은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이후 직면한 현실 앞에 우왕좌왕한 가운데 이민자에 대한 폭력이 증가한다고 한다. 프랑스는 청년실업이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당 정부의 노동법 개정 날치기 통과로 유로2016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공화당이 자신의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상황을 만든 도널드 트럼프라는 괴이한 인물이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혼돈스럽다. 그리고 한국은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관용어로 자리 잡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고통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 3월, 매우 선동적인 표지로 디자인된 그래픽노블 “파리코뮌:민중의함성”을 서해문집에서 번역, 출간했다. 진보적인 신문과 시사주간지에 자주 소개되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궁금해졌다. 이미 150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한국에서 프랑스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역사를 다시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래픽노블 민중의함성:파리 코뮌. 자크 타르디 지음/장 보트랭 원작/홍세화 옮김 [사진=서해문집]
▲그래픽노블 민중의함성:파리 코뮌. 자크 타르디 지음/장 보트랭 원작/홍세화 옮김 [사진=서해문집]

주관적인 의미가 아니라 객관적인 의미로 최악의 날들이 한국사회에 펼쳐지고 있는 지금, 책을 살펴보다 책 뒤쪽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최악의 날들은 끝날 것이다.”

그래픽 노블의 원작은 읽어보지 못해서 원작의 재현과 재해석에 관해서 별다른 할 말은 없다. 다만, 1871년 3월 파리를 묘사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낭만적인 파리가 아니다. 음침하며, 불안하고, 무엇인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서려 있는 파리이다. 이 불안감은 빠른 리듬으로 군대와 파리 시민과의 갈등을 통해 폭발하고 만다. 이렇게 파리는 코뮌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책에 나오는 경찰, 군인, 창녀, 넝마주이 등 다양한 인물군상들이 파리코뮌에 참여하고 반대하고, 이용하고 배신하는 가운데 파리코뮌은 점점 더 막바지로 몰려간다. 후반부는 5월 21일부터 시작된 피의 일주일을, 결정적으로 후에 코뮌전사들의 벽이라고 불리는 학살까지 리드미컬하게 연출하며 파리코뮌의 종식과 함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역사적으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정부는 전쟁 중 파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용병을 강제로 해산하려 했다. 전쟁패배와 경제악화, 이에 따른 빈곤의 확산 속에서 무능한 정부를 신뢰하지 못한 민중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의용병 해산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로 인해 갈등은 폭발해 전투가 발생하고, 곧 파리를 장악한 시민들은 파리코뮌을 선언한다. 코뮌은 여성 참정권 보장, 노동시간 제한 등 당시로서는 아주 급진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이 책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그려냈다는 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책은 그 뜨거웠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구질구질한 세계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또, 자신의 삶이, 직업이, 비밀이, 자신의 신념이 과거와 같이 계속되어 질수도 없고, 돌아갈 수 없기에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벌하기 위해, 용서를 빌기 위해, 윤리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코뮌에 함께한다는 것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새로운 삶과 세상은 책속 유토피아는 아니고 각자가 처한 삶의 위치, 삐뚤어진 욕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파리코뮌은 지긋지긋한 옛것이 가고 새것이 오기를 바라는 수많은 대중의 거대한 에너지로 탄생했고, 추동됐다는 것을 다채로운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승리는 그 지긋지긋한 세계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와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이 가져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계는 파리코뮌의 패배자들로부터 수많은 역사적 상상력, 경험, 이해를 찾았고 파리코뮌은 많은 것을 물려주었다.1) 역사 이해를 증대하는 요인은 패배한 자들로부터 나온다는 코젤렉의 문장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오늘날 세계가 더는 계속될 수도 없고,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분노는 파리코뮌처럼 위가 아니라 아래로, 더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인, 아동 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지금, 체제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불안정한 체제 속에서 파리코뮌에 관한 책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답하기 쉽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은 너무나 뜨거운 데 반해, 나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 한 가지 더. 파리코뮌은 3만 명의 희생자를 내며 5월 28일에 종료됐다. 광주는 200명의 사상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내며 5월 27일 종료됐다. 뜨거움의 계절이 오기 전, 빨리 마무리하려는 공통된 의도였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는 끝나겠지, 내가 끝나던가 이 체제가 끝나던가.


1)우리가 잘 아는 “인터내셔널가”도 파리 코뮌에서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