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성주도 경찰 물대포에 맞아 317일 만에 목숨을 잃은 농민 백남기(69) 씨를 추모했다.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위원장 김충환, 배윤호, 이강태)가 성주군청 앞 광장에 마련한 분향소에는 농민의 죽음을 추모하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국화꽃을 한 송이씩 건네던 군민들은 “국가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해도해도 너무하다. 시신은 왜 가지고 가려 하느냐”며 가족 반대에도 백 씨를 강제부검하려는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성주군민들은 백남기 씨 분향소에 들러 애도를 표한 후 하나둘 성주문화원 앞 인도에 모였다. 저녁 7시 30분 성주문화원 앞 인도에서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75차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동안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즐겁게 하자고 다짐했던 군민들이지만, 이날은 숙연했다. 물대포에 맞아 목숨을 잃은 농민을 추모하며 ‘농민가’를 불렀다.
사회자 이재동(48) 성주군농민회장은 “사드뿐만 아니다. 세월호 터졌을 때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백남기 농민을 강제부검하려는 정부는 자신의 이익과 권력만 추구하고 있다. 성주가 민주, 평화의 성지가 되는 길은 단 한 가지다. 이웃과 함께 이야기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가는 것이다. 함께할 때만이 이 땅 평화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민들과 함께 “사드배치 철회하고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 “국민이 주인이다, 국가폭력 중단하라”, “국민 무시하는 공권력은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형인균(69, 월항면) 씨는 “비통한 날이다. 40년 전 유신 같다. 초전 소성리 원불교 교당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했다. 더러운 무기가 들어온다면 퇴임교무 400여 분이 순교를 불사하겠다고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걸 내년 대선에 맞춰놓고 있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데 내년에는 꼭 정권을 바꾸자”고 말했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언론에 거론되는 롯데CC가 있는 초전면 소성리 주민도 발언에 나섰다. 임순분(63, 초전면) 씨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하고 싶었던 86세 임길남 할머니 말씀을 대신 전하겠다. 할머니는 ‘군수는 애미, 애비도 없냐. 내가 갈 곳이 어디 있겠냐. 자식이 있다지만 좁은 아파트에 갇혀 살 수도 없고, 마을회관에서 동네 사람들과 오순도순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사드가 들어온다고 하는 날부터 밤마다 잠을 못 자고 있다. 이런 짓을 하는 군수는 애미, 애비 생각도 안 하느냐’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임 씨는 “우리 마을은 80대 이상이 많다. 젊은 사람이 50대다. 인구가 적고 어르신들이 계셔서 반발심이 적다고 제3부지로 군수가 밀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버리겠다고 하냐. 군수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다시 성산포대로 돌아와서 군민들한테 맞아 죽는 꼴을 꼭 보고 싶다. 하지만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은 경북 포항, 안동, 상주에서 시민 10여 명이 촛불집회장을 방문했다. 포항에서 ‘향기네’라는 모임 회원 6명과 성주를 방문한 김경녀(44) 씨는 “오전에는 성주일대를 돌아다니며 사드 반대 현수막도 보고 역사기행을 하고 촛불집회에 왔다. 성주군민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안동에서 온 조한웅(61) 씨는 “사드는 성주군, 경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다. 성주가 앞장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주에서 온 오덕훈(69) 씨는 “상주에서도 매주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25년 전에도 쌀값 문제로 생존권을 요구하던 농민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공권력에 목숨을 잃은 농민 시신마저 강탈하려고 하고 있다. 자기들 손으로 죽게 만든 농민 시신을 빼앗아 어쩌겠다는 것이냐”며 “입만 벌리면 북핵, 안보 이야기를 하는데 핵폭탄보다 경주 고물 원전이 더 걱정이다.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하나 연구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복장이 터진다. 앞으로는 뭐라 그래도 새누리당에 속지 말자”고 말했다.
성주군민 40명과 함께 전남 진도 팽목항에 다녀온 이현동(대가) 씨는 “세월호는 침몰한 양심이다.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미수습 유가족 어머니를 만났다.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호 인양하고 잘못한 사람들이 처벌받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 버려진 이들의 아픔을 우리도 돌아보는 사람이 되자”고 말했다.
저녁 9시 10분께 촛불집회가 끝나자 성주군민들은 백남기 씨 분향소에 들러 조문을 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26일 오후 3시 성주군 초전소방서 앞에서 사드 배치 철회 집회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