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남긴 선물, 민주주의 찾는 계명대 학생들 ‘시계모’

[인터뷰] 시계모 ‘열활’ 회원 박지은, 손정호 씨

10:14

이른 폭염 속에 곧 방학을 앞둔 대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시국해결을 위한 계명인 모임(시계모)’ 회원을 만나러 대구시 달서구 계명대학교 동문 앞을 찾았다.

박지은(가명, 24, 경찰행정학과), 손정호(25, 사회학과) 씨는 자칭, 타칭 시계모 ‘열활’ 회원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사건으로 모인 ‘시국선언을 위한 계명인 모임’이 시국선언을 끝낸 뒤,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는 데 두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왼쪽부터 손정호, 박지은 씨

시계모, 3일 만에 1천 명 연서명
시국선언 목표 달성 후… “없애기 아쉬워”

지난해 10월 말,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대구에서도 10월 28일 경북대학교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시국선언이 시작됐다. 이후 한동대, 안동대, 대구대 총학생회 등으로 퍼졌고, 영남대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시국선언단을 꾸렸다.

계명대 학생들 역시 시국선언 준비에 나섰다. 페이스북, 밴드 등 SNS로 시국선언 연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와 박근혜 심판이 그 내용이었다. 시국선언은 성공적이었다. 3일 만에 1,008명이 서명에 참여해 ‘시국선언을 위한 계명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11월 3일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구바우어관(학생회관)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총학생회장도 자유발언을 신청해 학우들 뜻을 미처 읽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30분 남짓한 시국선언 기자회견으로 시계모의 임무는 끝났다.

▲지난해 11월 2일, 시계모 시국선언(뉴스민 자료사진)

“시계모 준비 기간이 3일이었어요. 저는 둘째 날부터 참여했는데, 3일 만에 천 명 이상 모여서 시국선언을 했어요. 시국선언 끝난 다음에 사실 이게 끝인데, 아쉽잖아요. 이름도 시국선언을 위한 모임이었으니까. 이렇게 시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기가 쉽지 않으니까 계속 모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된 거예요.” -박지은

완슬 씨는 평소 세월호 참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인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시국선언을 계기로 모인 사람들과 헤어지기 아쉬웠다.

시국선언이 끝난 후 시계모는 ‘시국해결을 위한 계명인 모임’으로 이름을 바꿨다. 주말마다 열리는 동성로 촛불집회에 시계모 깃발을 들고 참석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개강 직후인 3월 9일 박근혜가 탄핵됐다. 또 한 번 모임을 지속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겨울방학 동안은 촛불 집회도 있었고, 다들 개인적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모일 건지 이야기를 했어요. 교외 목적으로 계속 나갈지, 교내로 관심을 돌려 볼지. 3월 들어서면서 이제 교내 민주주의 문제도 신경 써보자고 의견을 모았죠.” -박지은

‘응답하라 총학’ 프로젝트
총학 장부, 회의록 등 공개 요구
기숙사 인권 침해 1인 시위

학내 민주주의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계모는 익명으로 학우들에게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총학생회 장부 공개, 회의록 온라인 공개, 학교 식당 인상 문제, 게시판 사용 허가 문제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시계모는 이 질문을 들고 총학생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학우들 질문을 받고, 총학생회 페이스북 메시지로 총학생회장을 꼭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계속 읽고 씹는 거예요. 결국 3월 27일에 만났는데, 그때는 웃으면서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인터뷰 답변이 ‘노력해보겠다’, ‘생각해보겠다’, ‘알아보겠다’ 이런 식인 거에요” -박지은

▲박지은 씨

총학생회장 인터뷰 후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총학생회 장부는 총대의원회와 상의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기 회의록은 노란 서류파일에 정리된 것만 볼 수 있었다. 시계모는 다시 한번 서면으로 질문을 보냈고, 총학생회는 상의 후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응답하라 총학’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이때부터다. 3월 27일 총학생회 인터뷰 후, 서면 질문을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총학생회는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페이스북으로 한 차례 사실을 알린 후, 중간고사가 지나고, 5월 조기 대선도 지났다.

“어쩌다 보니 총학에 집중하게 됐어요. 처음에 총학이랑 이야기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총학이 너무 철벽을 치는 거예요. 저희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어야 하니까, 그 대비책을 만들다 보니 1인 시위까지 하게 된 거죠. 1인 시위 하는데 단대 회장들이 와서 응원한다고 스티커 붙여 주고 가더라구요” -박지은

5월 18일 시계모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게시판 사전 검열 ▲군기 ▲학식 인상 ▲투명한 선거 ▲장부 공개 등 5가지 항목 스티커 설문 조사도 동시에 시작했다.

▲시계모 ‘응답하라 총학’ 프로젝트(사진=시계모)

이 무렵 정호 씨는 기숙사 인권 침해 문제로 혼자 1인 시위에 나섰다. 정호 씨가 시계모를 알게 된 것도 이때다. 기숙사 층장 경력도 있는 정호 씨는 평일 외박 불가, 12시 통금, 중앙 점호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기숙사 문제로 1인 시위를 먼저 시작했어요. 총학생회는 이것도 시계모에서 한 거라고 알고 있더라고요. 지인들 통해 연결되다 보니 시계모를 알게 됐어요. 글 하나를 쓰더라도 피드백 받을 곳이 없으니까 혼자서는 힘들더라구요. 아마 시계모가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혼자 못 했을 수도 있어요. 응원해주는 곳도 없었을 거고” -손정호

1인 시위는 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평소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기숙사 사생자치회와 행정팀은 공식 답변도 냈다. 하지만 답변을 기다렸던 총학생회는 오히려 황당한 소식을 전해왔다. 총학생회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과 회장, 단대 회장을 거치라는 것이었다.

“총학생회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데, 과대가 단톡방에 앞으로 총학에 직접 얘기하지 말고 우선 자기한테 먼저 말해 달래요. 총학이 요즘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 많아서 당황스럽다고 절차를 지키라는 거에요. 저희도 당황스러웠죠” -박지은

“저도 그 카톡 받았어요. 학회장한테. 총학에 할 말 있으면 학회장, 단대 회장 이런 식으로 거치라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대면 보고를 싫어했다고 하잖아요. 뭔가 데자뷔처럼 떠오르더라고요” -손정호

총학생회의 황당한 요구는 계속됐다. 5월 26일 시계모는 다시 총학생회장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시계모는 이날 총학생회와 인터뷰 내용에 대해 포스팅을 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시계모가 비인가단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계모는 비인가 단체답게 총학생회 요구를 무시하기로 했다.

1인 시위하자 징계 협박도
정보공개청구로 감시자 역할 나서
시계모 꾸준히 이어나가는 게 목표

계명대에서 1인 시위가 벌어진 것은 2002년 등록금 시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직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 관심은 반 회유, 반 협박이었다. 정호 씨는 1인 시위를 하면서 부총장도 처음 만나봤다.

“모든 직원이 회유를 해요. 이러지 말고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해보자. 담당 교수가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절차를 지켜서 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세요. 다 거절했죠. 저는 더 많은 학생이 학교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손정호

▲손정호 씨 기숙사 인권 침해 1인 시위(사진=손정호 씨)

정호 씨는 기숙사 1인 시위 후 시계모 1인 시위에도 동참했다. 5월 18일 시계모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선 때였다. 앞서 1인 시위를 할 때 한 번 만난 적 있던 학생지원처 교직원을 다시 만났다. 교직원은 피켓 문구를 트집 잡으며 징계 협박까지 했다.

“학생지원처 직원분이신데, ‘고소하겠다’, ‘학교 징계위원회에 올리겠다’ 협박을 하는 거에요. 징계 올리면 퇴학당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겁을 주더라고요. 자기 말로는 개인적으로 왔다고 하는데, 본관 직원이 학생한테 오면서 개인적으로 오는 게 어디 있어요. 그때가 5월 18일이어서 기억이 나요. 지금 저는 고소당한 것도 없고, 징계위원회 올라가지도 않았어요” -손정호

교직원의 회유와 협박은 시계모가 계속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됐다. 활동을 할수록 비민주적인 학내 모습과 마주쳐야 했다.

시계모는 행정정보를 감시하는 정보공개 청구에도 나섰다. 대부분 대학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예·결산 내역과 총장 업무추진비 등을 계명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예·결산 내역은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어디에 돈을 썼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서였다.

“국립대 말고 사립대도 정보공개청구 신청 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학교는 총장 업무추진비가 다 올라와 있는데, 우리는 없으니까 궁금하잖아요. 우리가 낸 등록금을 총장님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신청했는데, 거부당했어요. 근거도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 비공개했더라구요” -손정호

▲손정호 씨

정호 씨가 한 첫 정보공개청구는 모두 비공개됐다. 최근 5년 간 총장 업무추진비 내역을 청구했지만, 학교는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비공개한다고 했다. 또, 이 내용이 공개될 경우 학교의 명예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이어 시계모는 학교 예·결산 내역, 학생지원비 세부 항목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이번에는 부분공개였다. 예·결산 내역은 학교 홈페이지에 있으니 홈페이지를 참고하라는 내용이 공개된 내용 전부였다. 비공개된 항목은 역시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고 한다.

시계모는 방학을 맞아 앞으로 활동 방향을 위한 모임을 갖기로 했다. 진행 중인 ‘응답하라 총학’ 프로젝트, 정보공개청구는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완슬 씨는 무엇보다 졸업을 앞둔 회원들이 많아 신규 회원 모집이 시급하다고 했다. 모임 동력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학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끊이지 않고 이어나가는 게 목표다. 정보공개청구로 베일에 쌓인 등록금 사용처도 밝히고, 총장 직선제 요구도 고민 중이다.

“시국선언 때문에 한 번 뭉쳤다가 이러고 있어요”  -박지은
“사실 박근혜 탄핵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그게 없었다면 시계모도 없었을 거에요” -손정호
“그죠.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박지은
“그게 계기가 된 게 확실해요. 학내 민주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손정호
“계대는 아마 이 조직이 사라지면, 향후에 박근혜 국정농단 버금가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이런 모임이 없을 거에요” -박지은
“이 좋은 게 사라지면 안 되잖아요” -손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