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경주에 정착한 권영국 변호사, “피해 입은 누구나 찾아와 달라”

약속 지키고자 경주에 정착한 권영국 변호사
법률사무소 열고, 경북노동인권센터장 맡아
“경주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첫 번째”
“사회운동과 제도 정치의 연결고리 역할 하겠다”

20:06

대구경북을 보수적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수냐고 물으면 ‘자유한국당-새누리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당을 지지해서 ‘보수’라고 대답할 것인가? 1973년에 편찬한 <대구시사>를 보면 대구시민의 정치의식과 관련해 “10.1사건, 오랜 야당도시로서의 항쟁, 2.28 학생의거 등이 그러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대구시는 가장 참정의식이 높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전근대적인 폐쇄주의, 권위주의, 보수주의가 남아있고, 혈연, 지연, 동창 등 연고적집단으로 하는 폐쇄, 배탁적인 파벌을 조성하고…”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유신시절이었음을 고려하면 대구경북시민들이 가진 보수성은 정당에 대한 선택 문제로 설명할 수 없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당선 이유를 ‘약속’으로 꼽는 이들이 많았다. 경기도지사를 하다가 김 장관과 대구에서 맞붙어서 낙선한 김문수 전 지사, 2008년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했다가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그랬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우리 지역에 간 보러 온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어떤 면에서 보수란 그런 것이다.

15.9%, 2016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경주에 출마한 권영국(54) 변호사의 득표율이다. 낙선 후 권 변호사는 “앞으로도 경주시민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2017년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짐을 싸들고 경주로 내려왔다. 7월 21일 경주 출신 김동창(35) 변호사와 함께 해우 법률사무소를 열었고, 9월 22일 창립한 경북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을 맡았다.

약속 지키고자 경주에 정착한 권영국 변호사
법률사무소 열고, 경북노동인권센터장 맡아
“경주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이 첫 번째”
“중앙은 정권 교체…지역 역할이 중요”

▲경주에 정착한 경북노동인권센터장을 맡은 권영국 변호사. [사진=정용태 기자]
27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오동 경북노동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만났다. (경북노동인권센터는 해우 법률사무소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

“정치를 하게 되면 경주에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 전입신고까지 마쳤다”는 권영국 변호사는 부인과 함께 황성동 한 아파트에 집을 얻고, 모조리 짐을 싸서 경주에 정착했다. 약속은 했지만, 경북지역은 사실 개혁·진보 정치인이 마음먹기 어려운 지역이다.

“16년 촛불집회, 촛불항쟁의 힘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패악질하던 정권을 끌어내렸잖아요. 정권교체가 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잘못된 걸 청산하겠다고 하고, 개혁 추진도 약속했고, 일부는 추진되고 있죠. 그런데 상층만 교체된다고 국민들이나 지역에 있는 시민들까지 변화를 느끼지 못 하죠. 지역, 현장에서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정부 노력도 필요하지만, 구성원들이 스스로 변화해야죠. 중앙 정권이 교체되니까 중앙에서 역할보다 지역 역할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공권력이나 경찰하고 싸움이나 갈등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역할이 이제는 정부가 바뀌면서 심각한 갈등이 완화되거나 없어질 거라 생각했었죠.”

앞서 언급했지만, 대구경북지역의 보수성은 지지 정당보다는 연고주의와 낯선 이들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 법률사무소를 연 지 석 달이 지났고, 인권센터를 창립한 지 1달이 지났지만, 경주에 스며들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석 달 동안 권 변호사의 주된 활동은 경주지역 노동조합 간부들과 조합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교육하는 일이었다.

“거리를 다니다가 가끔 알아보는 분들을 만나요. ‘진짜 내려왔나’ 이런 분들이 있어요. 안 내려올 줄 알았는데, 정치하게 되면 경주에서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것도 믿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법률사무소 개업하고 주소도 이전했다니까 좀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경주시민으로 인정받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경주시장 선거 출마는 아직…
임대아파트 증축공사 소음 문제 주민 만나
시민들의 다양한 문제 해결하며 소통
“사회운동과 제도 정치의 연결고리 역할 하겠다”

권 변호사 약속 가운데 ‘정치’가 빠질 수 없다. 대놓고 정치를 하려고 경주에 내려왔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년 지방선거에 경주시장으로 출마하려는 것일까. 에둘러서 “정치를 하려면 행정 경험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권영국 변호사는 “지자체에 들어가야 할 텐데 그런 행정 경험은 어렵죠”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신 그는 그동안 첨예하게 싸워왔던 노동, 인권 문제를 확장해 경주에서 살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기로 했다.

“지역의 문제가 뭔지, 바라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알아가는 게 정치겠죠. 최근에 주공임대아파트 구역 내에 증축공사가 이뤄지는데 소음 문제로 힘들어하는 주민들을 만났어요. 저도 직접 가서 소음도 측정했고, 법률적인 조력을 하면서 지역민들과 계속 소통할 생각이에요.”

권 변호사는 시민들이 일상을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관공서를 상대로 혼자 제기하기 어려운 민원,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운동과 정치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다.

“사회운동과 제도 정치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보면 제도 정치를 터부시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시민운동과 제도정치를 분리하는 경향들이 있어요.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운동이 제도정치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해요. 내년 선거에서는 지방의회에 상당히 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단체장도 고려해야 하는데 일정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시도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죠. 인권활동이던 지역 분쟁에 대해서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참여 활동, 지원 활동이 중요한 정치 활동입니다. 시민운동이 제대로 인정받고 활성화되는 게 제도정치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잘 연결할 것이냐가 저의 과제이자, 함께하는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죠.”

시민혁명당 창당 추진 실패 경험
“민주당, 개혁적 성향 있지만 여전히 보수정당”
“민주당을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진보정당 필요”

권 변호사도 시민운동과 제도 정치를 연결하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시민이 국회로 가자”며 2015년 12월 시민혁명당 창당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전국을 다니며 당원들을 모으러 다니나가 총선에 경주에 온 권영국 변호사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후 시민혁명당은 조용히 사라졌다. 제도 정당으로 진입 실패한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016년 3월,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권영국 후보 시절. [사진=권영국 예비후보]

“아쉽죠. 촛불 정국하고 만났을 때 시도했으면…당시에는 혁명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도 있었고요. 아쉽지만, 정당을 만드는 데 여러 어려움을 체험한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죠. 개혁, 진보정치 영역이 통합되지 못하고 분화되고 있던 측면도 있었어요. 자꾸만 정당을 늘려나가는 게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정당을 더 밀어붙이지 않았어요. 분열이 수렴되고 통합되어가야만 이 혼란을 추려 나갈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해요. 그래서 여전히 정당에 가입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있죠.”

박주민, 이재정 의원을 포함해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송기호 변호사까지, 권 변호사가 활동했고, 지금도 몸담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정치인 대다수가 민주당을 선택하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민주당이 상당 부분 개혁적 성향을 갖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수정당의 한축으로 봐요. 민주개혁 쪽에 국민의 열망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소수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봐요. 핵심인 노동 문제죠. 좋은 인상으로서 민주를 넘어서려면 분배의 문제에 접근해야죠. 분배의 문제는 계급적인 성격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민주당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어요. 민주당을 훨씬 더 민중지향적인 정책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민중적인 기반을 가진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 문제부터 영역 가리지 않고 상담
“피해를 입은 그 누구라도 찾아오면 좋겠다”

정치인 권영국이 아닌 경북노동인권센터장 권영국은 한 달 동안 경주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물었다. 노동인권센터 문을 두드리는 시민들이 실제로 있는지도 궁금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소음 문제, 시청과 발생한 갈등 문제로 찾아오는 분들을 만났어요. 하루에 보통 2~3통 전화가 걸려 와요. 한수원 불법파견 소송의뢰도 들어왔고요”라고 말했다. 서울 시절과 비교하면 아직까지는 한산한 편이다. 노동 문제만 다루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요. 경주는 닫혀 있는 사회기 때문에 말을 하고 싶어도 금방 누군지 드러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아요”라는 말을 마치자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마치고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역은 구분하지 않아요. 노동은 당연하고, 교육, 환경, 복지 문제도 좋고, 갈등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면 누구든 찾아오면 좋겠다. 위계화된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누구나 눈치 보지 않는 분위기를 지역 내에 만들고 싶다.”

의문이 생겼다. ‘경주’노동인권센터가 아닌 ‘경북’노동인권센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경북은 대한민국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고, 생활권도 제각각이다. 가까운 경주와 포항만 해도 생활권이 다르다. 더 멀리 가면 구미, 김천, 안동, 울진, 봉화, 영양까지 센터가 경북의 노동인권을 모두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면적이다.

“제가 센터장을 맡고 있지만, 저 혼자 노동인권센터를 만든 건 아니었죠. 100여 명이 함께 참여했고, 의논을 했어요. 경북의 변화가 쉬운 곳이 아니라는 게 대선 결과로 나타났잖아요. 경북에서 변화는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또, 지금은 경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지만, 센터가 발전하길 바라고 있어요. 경주, 포항, 영천 같은 인근 말고도 다른 지역에서도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지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센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어요.”

▲[사진=정용태 기자]
노동조합과 지역이 만나야
“노동과 지역의 매개 역할 하겠다”
“간부뿐만 아니라 조합원이 함께해야”

경주를 넘어 경북 전역으로 확산된다면 좋은 일이다. 지난 총선에서 15.9%라는 의미 있는 득표율로 가능성을 봤지만, 변호사 ‘권영국’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에서 명망가이지 이들과 거리가 있는 시민들과는 거리가 있다. 경주는 울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1차 밴드 공장이 몰려 있어 금속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많은 곳이지만, 노조원이 아닌 시민들도 많다. ‘천년의 고도’ 답게 관광산업이 발달했지만, 관광 관련 서비스업 노조 조직율은 미미하다. 또, 21명인 시의원 가운데 19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인 기울어진 동네다. 결국, 민주노총 조합원만 믿고 경주에서 정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센터를 추진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노동과 지역이 어떻게 소통할까, 이 매개 역할을 하겠다는 게 센터가 가진 지향입니다. 작년 선거를 치르면서 노조와 지역민들 소통이 쉽지 않다는 걸 확인했어요. 경주에는 읍·면들이 많은데 여기에는 책임자도 못 세웠어요. 조합원도 지역 주민이지만, (노조원이 아닌) 지역 주민들하고 가깝지 않다는 거죠. 노조가 내부 문제에만 닫혀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어요. 지역에 있는 주민들의 운동, 여기에 조합원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는 분들은 노조를 두고 ‘자기들 임금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조가 지역 활동을 안 해온 것도 아니죠. 방폐장, 원전 문제까지 활동했어요. 그런데 이게 간부 중심이었죠. 조합원이 지역의 생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참여할 것이냐에 대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해요.”

지역주민들과 소통, 야근과 잔업까지 마치고 돌아온 제조업 노동자가 주변 문제에 관심 가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걸 바꾸는 일은 노조 내부에서 출발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조에 민주주의와 소통을 경험하고, 옆에서 교육과 지원하는 일은 노동인권센터 임무이기도 하다. 경주에 정착한 석 달, 권영국 변호사는 지역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묻자 쑥스러운 웃음을 내보였다.

“중이 제 머리 잘 못 깎는 게 있죠. 아파트 대표자회의 공고가 붙어 있는 걸 봤어요. 아직 참여를 못했는데, 아파트 주민회의가 있으면 참여할 계획이에요. 모임들에 가보면 이질적으로 느끼는 분들도 있지만, 작년에 출마했던 게 구면인 것처럼 느끼게 하나봐요. 서로 인사를 잘 나누고 있어요.”

경북노동인권센터는 경주, 포항, 영천 지역을 시작으로 청소년노동인권 실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또, 시민강좌와 시민인권교실, 노동인권교실 등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주제넘게 기자가 시민강좌를 닫힌 공간에서 하는 것보다 첨성대, 오릉 등 문화유산 앞에서 공개 시민강좌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영국 변호사에게 아이디어를 건넸다. 공권력과 싸우던 ‘거리의 변호사’이기에 거리에서 시민, 관광객과 인권을 나누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다.

조금은 생뚱맞은 제안에 권영국 변호사는 “그것도 좋겠네요. 일단 제 체력을 먼저 키우고, 적극 검토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경주 구석구석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민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경북노동인권센터,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권영국 변호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