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갈림길] ⑥-1. “사면심사위원회, 법조계 중심 탈피해야”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1. 사면권
[인터뷰] 김혜순 전 사면심사위원(계명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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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까지 이뤄진 대통령 특별사면 횟수다. 74년 동안 103회, 한 해에 1.4회꼴로 아무런 견제 없이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형사처벌 받은 범죄자들이 그 책임을 벗었다. <뉴스민>은 견제 없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우리 사회를 더 민주적 사회로 가느냐 아니냐의 ‘갈림길’ 위에 서게 한다고 판단했다. 갈림길 위에서, 더 나은 사면권, 더 민주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사면, 갈림길] ① “대통령 사면권한이요? 글쎄요···어렵네요”
[사면, 갈림길] ② 74년 동안 103회, 특사의 역사
[사면, 갈림길] ③ 김우중은 세 번 했지만 이건희는 두 번만
[사면, 갈림길] ④ 기준 없이 ‘관행’ 따르는 특사? 사면회의록 분석해보니···.
[사면, 갈림길] ⑤ 법조계 중심 사면심사위원회 다양성 확보 관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사면심사위원을 지낸 김혜순 교수는 사면제도 전반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면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불명확하고, 사면위원회는 법조계 중심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짚는다. 특히 그는 사면제도 개선을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와 인터뷰는 전화 통화로 두 차례 진행됐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김혜순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사면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진=김혜순 교수)

= 2012년부터 2년간 사면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소회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정부위원회는 민주적 절차 과정의 하나겠죠. 위원회는 정부의 당연직 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민간위원에 누가 들어가느냐가 운영 방향에 영향을 준다고 봐요. 그러다 보니 민간위원 선택부터 정치·정책적 관심이 작동할 겁니다. 제가 사면심사위원에 들어간 건 주변에서도 좀 의외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컸어요. 저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다 보니 이민 분야 전문가로 추천을 받아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마침 제가 여자이기도 하고, 지방 출신이고,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했다 보니 일석사조라 했을 수도 있지요.”

= 당시 회의록을 보면 교수님의 의견이 다른 위원들과 차이를 보이던데요.

“민간위원이 네 분이었는데 순수하게 법조계와 관련 없는 사람은 3명 정도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다른 두 분도 관계에 오래 계셨고, 그러니 제가 굉장히 ‘예외적’인 편이에요. 저는 제가 꼭 개인적으로 이러저러하게 말해야겠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제 의견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엔 내가 어떤 직능 대표로 들어왔는지, 그것에 맞춘 발언을 해야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어요. 제 기본적인 성향이라는 게 사회학 전공, 시민단체 활동처럼 이른바 마이너리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관점에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드렸어요. <뉴스민>이 시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면권에 대한 시민 인식도 함께 알아봤는데요. 시민들이 특정한 대상의 사면 찬반 의견은 분명하게 형성되어 있지만 사면제도에 대한 인식은 많이 약했어요. 개인적으론 시민의 사면제도에 대한 인식 향상에서부터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대통령 사면권이라는 걸 교수들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아는 분이 많지 않을 거예요. 보통의 시민은 일상생활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해요. 사면권보다 훨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행령들, 우리나라가 시행령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데, 시행령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사면권의 내용을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한 거죠. 사면권은 일반 시민들 삶과는 정말 멀어요. 사면 대상 리스트가 앞뒷면 8, 9포인트 글자로 인쇄된 자료가 거의 10cm 가까운 두께로 제공돼요. 앞장엔 ‘주요 인물’들이 있고, 뒷장에 ‘일상적인’ 범죄별로 분류된 리스트가 있는데, 뒷부분은 거의 볼 시간도 없어요. 위원회가 정부에서 민주적 절차를 위해 만들어놓은 형식적 절차이지만, 특정 정치인이나 재벌 외에 시민들 일상생활에 관련된 사면은 시간상 논의가 불가능해요. 특히 사학 비리나 언론 비리는 재벌 못지않게, 어쩌면 그 파급력이 더 클 수 있고, 이들의 영향력 때문에 기소되기도 어려운데, 형량이 부여되어 복역 중인 사람들이 사면 대상 후보로 올라오고, 사면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특정 정치인과 재벌의 사면에 대해서만 집중 보도하니 시민들이 이들 외의 사안에 대해 알 길이 없고, 따라서 여론은커녕 의견조차 만들어지기 어렵지요.”

= 그렇다면, 시민들에게 멀고, 실질적인 논의도 어려운 사면권이란 게 필요는 한 걸까요?

“필요하다고 봐요. 범위와 기준에서 의견 차이가 나겠지요. 제도적으로 어떻게 운영할 거냐의 문제입니다. 일단 그 사면 대상을 걸러내는 기준을 봐야 할 것이고, 그다음에 사면심사위원 구성을 봐야 해요. 단순히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줄 거냐 여부의 문제는 아니라 봅니다.”

=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풀어서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 정당의 정치적 성향에 경도되어선 안 되겠죠.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관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고 국민, 대중의 일반적 기대 수준을 반영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기도 하구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 이렇게만 말하면 ‘교조적’ 또는 ‘이론적’이라고 비판할 여지가 있지만 예를 들어 헌법에서 이들이 좀 더 구체화되어 있죠. 공익과 국민의 안녕, 질서 유지 등이 정부, 대통령의 책임이고, 그러면 이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면이 이뤄지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거죠.”

=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면권 행사가 그렇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잖아요. 특권층 사면이 많기도 했구요.

“수적으로만 보면 특권층이 아닌 경우가 수만 배가 될걸요? 특권층은 언론에서 집중 조명해서 많아 보일 뿐이지요. 다만, 특권층의 범법은 그 파급력이 질적, 양적으로 막강하기 때문에 기준을 더 엄밀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말은 법질서 유지나 일반 시민, 사회적 약자 및 취약층의 이해관계 차원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 복잡한 문제지요. 예를 들어 재벌이 흔들리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부터 어려워진다는 의견도 많아요. 사회취약층을 위해 재벌 총수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요. 이러한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반영해서 기준을 점검하고 논의할 수 있는 절차의 제도화, 위원회 구성이 정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현재도 사면심사위원회가 있지만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지금은 사면위원회가 너무 법조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법질서를 중시하는 법무부에서 주관하니까 그런 거라 하겠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란 법질서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국민의 일상 복리 증진과 사회질서 유지, 외교·안보 등 대통령의 권한에 부응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이 과연 법질서만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위원회 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 법조계 중심에서 탈피해서 인문 사회계에 보다 개방해야 합니다. 여긴 특권층의 범죄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층의 어떤 범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하느냐의 문제, 즉 동시대의 해외사례, 역사 인식, 한국 사회·정치·경제에 대한 이해 등이 요구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 정비와 운영 후에도 특정 정치인, 재벌 총수, 사학 및 언론 비리자를 사면 대상자로 추천한다면 사면심사위원들의 책임이고, 사면심사위원들이 거부한 대상자를 대통령이 사면한다면 대통령의 책임이구요. 사면심사위원회가 대통령의 책임을 덜어주거나 대통령에게 책임을 넘기는 역할에 끝나서는 안 되지요.”

= 반복되는 질문인데요. 사면심사위원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도,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 국민이 위임한 것인 만큼 시민사회라고 표현해도 좋은데요. 시민의 주체적 개입이 더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시민사회의 개입? 여론은커녕, 의견 형성도 어려운 지형이라는 것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시민사회를 대표해서 시민단체가 대신할까요? 활동 주제 중 하나로 대통령의 사면권을 천명한 시민단체가 있나요? 있어서 활동한다 한들 언론에 보도되나요? 모든 사회, 정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귀결되는 건 사실 언론과 교육이에요. 그런데 언론이나 교육 절대다수 모두 정치적 이해관계나 영향력, 자본주의적 상품과 이윤의 이해관계에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시민들에게 일부러 정보를 찾아가며 관심 가지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봅니다. 시민의 주체적 개입, ‘시민의 힘’을 북돋고 응원하는 역할은 교육도 교육이지만 영향력을 볼 때 언론의 주도와 자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 그건 지식인이나 언론인의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요?

“언론사에서 기사를 생산하고 보도하기까지의 내부 관행 또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언론사의 이윤 창출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면 대상이 대통령이나 그 친인척, 재벌이라면 흔히 말하는 ‘뉴스가치’,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다른 매체도 다 하는데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요. 대다수 매체에서 이들 특정대상’만‘을 다루니 달리 내용을 알 길 없는 일반 시민 또한 이들에 대해서는 의견이 형성되겠지요. 반면, 사면권의 필요 여부, 적정성 등 사면권의 본질은 심도 있는 기획 기사로 여러 번에 걸쳐 보도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의식과 필요성을 공유하는 언론인이나 매체가 얼마나 있어 실제 기사화되고 보도되나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차이, 사면심사위원회가 필요한 특별사면에서도 특권층은 물론 이들 외 대상으로 선정되는 범죄의 종류와 사면대상 선정기준, 위원회 구성 등등에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건 교육과정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지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서 일반 시민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쪽이 시민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문제인식을 공유해야지요. 이것 또한 언론사 내부 관행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 이해해요. 하지만 시민들에게 문제 인식이나 의견이 없다고 지적하는 식자나 언론이야말로 엘리트주의의 전형 아닐까요.”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