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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4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일하다가 사고로 죽지 않도록 하라는 국가의 신호는 지난 2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삼표산업 산재 사망 사고로 깨졌다. 하루 2명 꼴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한국 사회는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

“ ‘사고 사망 노동자’ A 씨, 우리 아버지 전수권입니다”
대구경북 지역 산재 사망 판결, 실형 선고는 단 3.5%
중대재해처벌법 탄생 약사···반복된 참사의 기록
퇴직까지 산재 숨긴 포스코 노동자의 후회
잘나가던 불로반점 사장님, 가게 문 닫은 사연
⑥’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산재 부상, “통합 체계 필요”

“짜장 둘 짬뽕 둘이요~”

주문과 함께 화려한 웍질이 시작된다. 화구에서는 웍을 뚫을 기세로 강력한 불이 올라온다. 불로반점 이성한(55) 사장 왼손으로는 기름 먹은 웍을, 오른손으로는 국자를 들고 솜씨 좋게 짜장면과 짬뽕을 뚝딱 만든다. 짜장, 짬뽕이야말로 중국집 ‘핵심 관계자’다. 면판(주방보조)은 거들 뿐. 프라이팬(주방장)은 짜장, 짬뽕 빼고 다른 요리를 처리한다.

중국집은 짜장 맛이라는 성한 씨 신조는 불로반점을 동네 맛집으로 만들었다. 별점도 필요 없는 입소문 난 맛집. 하루 매출액이 면판 한 달 급여만큼 나오던 호시절. 성한 씨의 앞날도 ‘불로장생’할 듯했다.

“불로반점~불로반점~짬뽕은 뿅가게 자장면은 짱 잘해~다꽝 공짜, 양파 공짜, 젓가락까지 공짜~”

배달 앱도 필요 없었다. 전속 철가방이 있긴 하지만, 배달 앱에서 잘나가는 반점과 입소문 난 맛집은 생리가 다르다. 급여 체계, 배달 방식도 다르지만, 배달 앱에서 잘나가는 핵심은 기본은 지키는 음식 맛과 빵빵한 서비스다. 배달 앱에서 살아남으려면 주방장과 면판까지 여럿 쓰는 ‘기업형’으로 가야 할 거라 생각했고, 성한 씨는 그보다는 음식 맛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불로반점을 성공시킨 이성한 씨는 자신감이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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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불로반점. 짜장 맛 하나로 동네 유지들과 친분도 생기던 차, 성한 씨 오른팔에서 전에 없던 생소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국자를 들 때마다 팔꿈치 바깥쪽에 희미한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는 팔꿈치는 국자만 들면 아려왔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꼈지만, 성한 씨는 국자를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짜장, 짬뽕은 같은 맛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가 휴가를 쓸 수도 없는 노릇.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영천까지 틈틈이 다녔지만, 국자만 잡으면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음식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려 했지만, 오른팔에 찾아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성 질병, 골병이었다.

점점 악화되는 오른팔.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택했다. 불로반점을 그만두면서 ‘환장할 노릇’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반점을 잘 키워냈다는 경력에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당장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아 둔 자산도 있었다.

일을 쉬면서 몸 관리를 했지만, 다시 국자를 잡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1년 이상 일을 쉬다 보니 슬슬 좀이 쑤시던 찰나, 성한 씨는 라이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색이 사장이라고 배달 라이더가 되자니 눈을 낮추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배달 앱 붐으로 워낙 배달 일이 흥하고 있었다. 불로동 지리는 빠삭하겠다, 2막이 펼쳐지는 듯했다.

성한 씨는 배달 앱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중국집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니 알음알음 연락이 들어왔다. 성한 씨는 배달은 물론 가끔 주방 일도 봐줄 수 있는 고급 철가방이었다. 유연한 일자리다 보니, 다른 중국집에서 대타를 뛰어 달라는 요청도 마다치 않았다.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수입을 보며 성한 씨는 다시 불로장생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성한 씨가 산재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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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반점이 마감하는 저녁 8시 25분께 짜장면 주문이 들어왔다. 마감 시간인 데다가 비도 오기 시작해 받지 않고 싶었지만, 다른 라이더가 가느니 본인이 맡겠다는 생각으로 오토바이에 올랐다. 오토바이는 타이어 마모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제동을 하는데 뒷바퀴가 흔들리며 오토바이가 미끄러졌고, 뒤로 넘어진 성한 씨 발등을 오토바이 핸들이 찍었다.

심각한 부상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당장 오토바이를 몰 수는 없을듯했고 대타 라이더를 불러 짜장면부터 인계했다. 집에 가 하루 이틀 일을 쉬고 있는데 발등 상태가 더 악화됐다. 병원 진단을 받아보니 발등이 골절된 상태였다. 전치 8주 진단을 받았다.

병가도 없는 라이더였다. 당장 수입이 끊기긴 할 테지만 모아둔 것으로 버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번거롭게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것보단 후배인 반점 사장에게 산재 신청 대신 위로금만 조금 받으려고 했는데 사장은 모른 채 했다. 홧김에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 신청은 절차가 번거롭고, 근무 일수에 따라 휴업급여 요율 적용도 달라서 살펴볼 게 많았다. 통상 평균임금의 70%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성한 씨는 실제 지급받는 휴업급여가 70%에서 다시 70%를 적용한 금액을 받는 걸 보고 근로복지공단에 따졌다. 알고 보니 일용직 근로자로 분류돼, 일당에 통상근로계수(73%)를 적용한 금액을 평균임금으로 산정하고 다시 거기서 70%를 휴업수당으로 적용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몸 상태였다. 병원에서 요양을 이어가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은 둑이 무너진 듯 더 악화일로였다. 사고 당시부터 아프던 허리와 목이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는데, 성한 씨는 단순 스트레스 때문으로 생각해 사고 당시 발등 외에는 엑스레이조차 찍어보지 않았다.

최초 부상 후 5개월이 지난 시점, 통증이 심해져 진단을 다시 받았더니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발병한 상태였다. 족하수(풋드롭) 증상이 나타나자 병원에서는 성한 씨가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한다는 걸 고려해 한 번에 목과 허리 동시 수술할 것을 권했다.

수술을 받은 뒤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수술한 3~4번 경추 말고 5~6번 디스크가 다시 튀어나왔다. 악화하는 몸 상태도 문제였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디스크 수술과 관련해서는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 성한 씨는 패닉상태에 빠질 지경이 됐다. 산업재해로 인한 질환이 아닌,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디스크가 재해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며 추가 상병과 재요양을 불승인했다.

수술이 끝나고 퇴원했을 때, 성한 씨는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로반점을 성공시켰다는 자신감도 이제는 없었다. 앞날이 까마득해 지면서 공황장애에 빠져들었다. 치료비 부담은 점점 커져가는데, 앞으로 밥벌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성한 씨는 요양병원에 다시 자비를 들여 입원했다. 큰 질병을 겪는다는 일이 이토록 까마득한 일일 줄 생각도 못 했다.

▲2022년 2월, 일한 씨는 직업을 잃은 뒤 시간이 생겨, 불로동 정착 30년째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고분군을 이제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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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일한 씨는 대구시 동구 불로동 고분군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사업에 빠져 살며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몸을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사고 후 건강을 잃고 나서야 몸을 되 살펴보게 됐다.

요양병원에서 느꼈던 공황장애는 약물치료와 꾸준한 명상을 통해 어느 정도 다잡을 수 있게 됐다. 직업을 잃은 뒤 시간이 생겨, 불로동 정착 30년째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고분군을 이제야 걷는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는 일이, 느리지만 건강에도 도움 될 거라 생각하면 안정감도 든다.

2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뜻하지 않은 기회가 생겼다. 경북 구미에 한 규모 있는 공장에서 현장 안전관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작업 현장을 수시로 돌면서 안전사고 우려가 있는 상황을 살피면 되는 일이었다. 몸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고, 기왕에도 많이 걸으려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시작했다.

1년 이상 노동하지 못하고 지낸 성한 씨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부터 예전의 활력을 회복했다. 자영업이라는 것은 본디 야생에서의 진검승부다. 여러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겠다는 기대도 딱히 하지 않고 살아왔다. 뜻하지 않게 다치고 보니 평정심을 잠깐 잃었지만, 앞으로는 지금껏 해오던 것과 같이, 스스로를 알아서 살피며 가야 했다.

“보통 사람이 다치고 보면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에서 산업재해 보호 체계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다치고 보면 무엇이든 내가 다 입증해야 하고 법리적인 것도 알아서 다 살펴봐야 하거든요. 이게 아주 불합리한 거 같아요. 산재를 당했을 때 의료기관에서 적극적으로 환자 상태를 살펴서 산재에 적용되도록 하는지도 의문이에요. 공단이 의료기관을 평가하기 때문 아닐까요? 산업재해 적용 과정을 좀 간편하게 하고, 노동자 보호 조치를 강화해야 해요.

사람이 사는 목표가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건데, 다치고 나면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다 피폐해지는 거예요. 2년 가까이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니까 알겠어요. 일을 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걸 알았고 그 마음 때문에 지금 힘들어도 버틸 수가 있는 거예요.”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