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스카이캐슬’과는 다른 “스앵님”, ‘땐뽀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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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앵님.”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의 지원 아래 사교육 시장에서 공부하는 상위 1%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유행어다. 최고시청률 23.8%을 기록한 <스카이 캐슬>은 명문고와 명문대 진학이라는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구로 착각한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방황을 다뤘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방영 후 학부모 교육열에 불이 지펴졌고, 학원가는 <스카이 캐슬> 마케팅을 펼쳤다. 경쟁 위주 교육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도, 입시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불안감이 큰 것이다.

2017년 개봉한 <땐뽀걸즈>는 <스카이 캐슬>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댄스 스포츠를 배우기 위해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스카이 캐슬>이 부모의 욕망에 희생되는 아이들을 다룬다면, <땐뽀걸즈>는 조선업 불황으로 부모의 해고(解雇)를 지켜보고, 성적까지 바닥이던 아이들이 춤을 통해 작은 성공을 체계적으로 경험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땐뽀걸즈>는 경남 거제여상 댄스스포츠 동아리 ‘땐뽀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KBS가 8개월 동안 땐뽀반을 취재했다. 2017년 4월 KBS 스페셜을 통해 방영된 후 영화판으로 재가공됐다. 누적 관람객 수는 7,089명에 불과하지만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KBS는 이듬해 동명의 드라마를 제작했다. 인물 간 갈등 같은 극적효과를 위해 원작에 없던 남성 주인공이 추가됐다.

<땐뽀걸즈>의 배경에는 제조업의 간판이던 조선산업 불황이 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는 <스카이 캐슬>의 상류층 사고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노동자 중산층’의 공간으로 거제가 묘사된다. 조선업은 2010년 초반까지 호황을 누렸다. 생산직 정규직 평균 연소득은 7,000만 원에 달하고, 반장급으로 승진하면 연 1억 원에 이르는 임금을 받았다.

이들에게 작업복은 지위의 상징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결혼식, 상갓집에도 작업복을 입고 나갔다. 노동자의 아내들은 문화센터 등에서 네트워크를 쌓고 지역 내 투자정보와 조선업의 사내정보를 모았다. 그러던 조선업 노동자들이 위기를 맞았다. <땐뽀걸즈>의 배경인 거제는 위기가 직접적으로 닥친 곳이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땐뽀걸즈>의 주인공들에게도 불황의 영향이 미친다. 거제여상의 교훈은 ‘일취월장’이다. ‘일찍 취업해서 월급 받아 장가·시집가자’는 거다. 거제여상을 졸업하면 주로 조선소 사무 보조 일을 하게 된다. 이들의 미래도 거의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다. 부모님 세대와 다른 게 있다면 취업한다 해도 구조조정 1순위라는 점이다.

졸업 후 조선소 취직만 바라보는 학생들의 일상은 고달프다. 현빈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느라 늦은 저녁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은정은 바쁜 부모 대신 다섯 동생을 돌본다. 미래의 산업 일꾼으로 자라나는 조선소 노동자의 딸들이 삶의 재미를 찾는 것은 댄스스포츠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땐뽀’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탈출구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가열차게 댄스 스텝을 밟는 모습을 보면, 교육은, 소녀의 성장은, 삶의 무게를 어떻게 들어 올리는 것인가를 되새기게 된다.

<땐뽀걸즈>의 ’땐뽀‘는 댄스스포츠를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한 ’땐스스뽀츠‘의 줄임말이다. 제목을 보면 일본 영화 <훌라걸스>나 <스윙걸즈>가 연상된다. 쇠락하는 도시의 춤이라는 설정은 <풀 몬티>나 <빌리 엘리어트>를 닮았다.

<땐뽀걸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극적이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18살 소녀들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의 무게도 실감 나고 교육 방향과 땐뽀반의 수장인 교사 이규호라는 좋은 어른의 존재감이, 그 커다란 의미들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감독인 이승문 KBS PD는 불황에 빠진 조선소를 촬영하러 거제도를 방문했다가 댄스스포츠 연습이 끝나고 학생들 버스비를 꼼꼼히 챙겨주는 이 교사를 만나 촬영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이 감독은 “인생에서 가장 반짝거렸을 시간을 찬란하게 살아간 8명의 소녀들과 그 시간을 안내하고 기억해줄 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