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9月호] 대구가 허락한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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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보수의 도시. 가부장적 억압과 여성 차별이 유명세를 떨치는 대구시에 붙은 멸칭이다. 그런 대구에서 지난 9월 1일, 2일 이틀간 대구 엑스코에서 여성up엑스포가 개최되었다. 본 행사는 올해로 8회째 개최되는 ‘전국 유일’ 여성 정책박람회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인 여권통문이 발표된 1898년 9월 1일과, 양성평등 주간인 9월 1일부터 7일까지를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 대구시는 과연 그 의미를 잘 담아냈을까?

대구시가 바라보는 여성은 생리를 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약 한 달 주기마다 생리를 하며 평생 600만 원 가량을 생리용품에 지불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민의 절반인 여성들은 비싼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동시에 발암물질의 공포까지 겪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관련 정책이나 복지는 미비하다.

여성과 떨어질 수 없는 주제이면서 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이야기임에도 생리와 관련된 부스는 부재했다. 생리 이야기는 없으면서 단계를 뛰어넘어 임신, 출산을 장려하는 부스가 자리했다는 점은 기이하게 느껴졌다. 또한 대구시가 바라보는 여성은 육아와 가정에 충실했다. 대구시가 생각하기에 여성은, 여성이 오로지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박람회에서 받은 소책자에는 ‘결혼친화 도시’ ‘아동 친화 도시’ ‘아이 돌봄 지원’ 등의 문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정상 가족의 범위에서 벗어난 1인 가구나 비혼, 성소수자인 여성은 이 박람회에서 배제되었다.

특정 여성들만을 위한 박람회에서 열어 준 부스는 여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약자, 네일아트, 뷰티, 수공예를 다루는 부스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박람회와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인 여성상을 고착화시킬 뿐이다. 또한 꼭 있었어야 할 여성 인권 단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성 인권을 중요하게 다루기보다는 여성에게 다른 약자들에 대한 책임까지 얹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박람회장 안에서는 온갖 사회적 약자성이 여성의 일인 것처럼 펼쳐졌다. 놀랍게도 취지에 부합하는 부분도 있었다. 남성들 위주로 쓰여 왔고, 남성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역사 속에서 여성을 발굴해 내는 과정은 그 필요와 의미가 크다. 반지길 대구 근대여성 전시에서는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지만 100년 넘게 ‘서병규의 처 정 씨’로 불리던 여성의 제대로 된 이름, ‘정경주’를 불러주고 기록하는 등 근대의 대구 여성들에게 조명을 비춰주었다.

그러나 이 박람회에서 조명하는 여성의 역사는 극히 일부일뿐이다. 위대한 여성들은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할 일을 해내고 있다. 여성들의 존재를 못 본 체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굳은 사고방식을 깨트려야 한다. 현재에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많은 여성도 정경주 선생님과 같이 한 세기를 기다려야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성 행복 토론회, 일과 삶’에서 사회학과 이승협 교수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재취업을 하도록 해 주는 것보다, 애초에 경력 단절될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존재하는 여성혐오를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 탓으로 돌리기보다 불합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경력 단절, 유리천장 등의 혐오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가 실행된다면 인식개선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이대로라면 행사를 위한 행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여성을 위한다는 이미지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는 의미 없는 세금 낭비다. 여성의 힘을 말하고 여성들의 가치를 업(up)하고, ‘파워풀’한 여성을 만들고 싶었다면 이 박람회는 실패했다. 대구시는 박람회를 통해 전통적으로 ‘여성적 역할’이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할 뿐, 새롭게 뻗어나가고 있는 여성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구시가 바라보는 여성상, 대구시가 인정하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있어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박람회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대구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더 공고히 해 줄 뿐이다. 진정으로 여성 인권을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이 박람회를 개최하고자 한다면 대구시는 여성을 그들의 얕은 식견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여성 행사가 아니라 페미니즘 행사가 필요하다.

글_표출지대 김지민
그림 김지민, 최령은
pyochu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