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출지대 10月호] RECEIPT, 약자를 죽이는 건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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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뉴스민은 ‘대구 아트 시사저널 표출지대’와 전재 계약을 맺고, 온라인으로 글을 게재합니다. 원본은 표출지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정부가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을 두고 ‘건전한 결단’을 했다. 전년 대비 2.8% 증가한 총지출 앞에 자랑하듯 ‘역대 최저 수준’, ‘건전 재정’ 타이틀이 붙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역대급 세수 펑크가 있다. 올해 예상보다 덜 걷힌 세수 규모는 약 59조 원. 그 영향으로 지방교부세의 15.9%(약 2,304억 원)를 교부받지 못한 대구시도 재정 감축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대구시는 기존 예산액보다 6,200억 원 이상 세수 규모 감소가 예상되어 연말까지 재정 운용 방향을 비상 재정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8월 대구시청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내년도 재정 여건 상황은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예상되고, 마른 수건을 짜내는 단계를 넘어서 극한의 재정 다이어트 기조로 예산 편성에 임해야 한다”며, “관행적으로 이어온 보조사업, 행사성·선심성·현금성 지원 예산은 전면 재검토하고, 시정 성과를 가시화할 수 있는 사업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라”고 지시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필수 복지예산은 현행대로 지원한다고 하지만, 지역 공동체를 위한 예산들이 줄줄이 삭감행에 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그 결단에는 삭감으로 인해 영향받을 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실로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결정이다.

대구시의 작은도서관, 문화파출소, 청소년보호근로센터, 외국인 노동자 지원 센터가 대표적인 삭감의 대상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예산이 전액 삭감되거나 사업 자체가 사라졌다. 접근성이 용이한 소규모 도서관인 작은도서관, 지역 유휴 파출소를 문화·예술거점으로 재단장해 관련 프로그램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문화파출소 같은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은 풀뿌리 보육과 교육, 무료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 전액 삭감과 사업 종료로 문을 닫거나 운영이 힘든 상황에 놓였다. 청소년 보호근로센터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근로 청소년, 외국인 근로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고충을 해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 역시 운영예산 전액 삭감으로 시설 폐쇄가 불가피해졌다. 이외에도 가정폭력 피해자 상담과 보호, 지원을 하는 가정폭력 피해쉼터 내년도 지원 예산이 절반가량 삭감되는 등 취약계층을 위한 공적 돌봄 예산이 사라지고 있다.

지자체와 정부는 재정 건전화와 중복 예산 삭감, 빚 탕감을 예산 대거 삭감의 대의명분으로 들이민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재정 건전화가 시민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동체 관련 예산을 삭감해야 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지자체와 정부 모두 긴축 재정으로 돌입하더라도 취약계층 필수 복지예산을 현행대로 지원한다고 내세우는데, 이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존립 이유로서 당연한 것이지 자랑할만한 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현재 예산이 전액 삭감되거나 종료를 통보받은 사업들도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취약계층을 돕는 등의 순기능을 하고 있었다. 중복된다던 사업 분야들 또한 그동안 일자리 창출이나 교육, 돌봄과 같은 통폐합할 수 없는 각각의 임무를 수행했다. 예컨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공공기관이 휴무인 일요일에 노동자들의 고충 업무를 담당해왔다. 이처럼 공적 영역에서 다루지 못하는 부분들을 담당해온 기관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된다면 그로 인한 불편은 오롯이 사회 구성원들이 받게 된다.

대구시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위한다며 저소득층·장애인·독거노인 지원, 복지시설 및 공공서비스 종사자 인건비 지급 등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생계급여 등 약자 복지를 위한 전체 예산을 늘렸다는 정부의 기조와 같은 흐름인데, ‘최약자’에게 복지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점이 공통된다. 이러한 기조가 바로 도움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이른바 ‘선별 복지’다.

보수 정부가 주로 내세우는 선별적 약자 복지는 사회적 약자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뿐더러, 약자의 확대 재생산을 불러온다. 영국을 예로 들면, 2014년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세금을 올리는 것보다 낫다며 빈곤층에 대한 예산을 약 5조 원 삭감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지난 한 해 동안 위기 가정에서 받은 비상식량 패키지는 보수당이 집권하기 전보다 3배 이상 폭증한 300만 개를 넘어섰다.

복지예산을 감축하고 선별된 빈곤층에게 예산을 집중한 결과가 전체 빈곤층 확대로 나타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산 부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더 빈곤’한 이들에게 복지를 집중하게 되면,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곤궁함을 입증해야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결국 취약계층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취약한 삶에 적응하도록 국가가 떠미는 셈이 될 뿐이다.

합리성과 건전성을 내세운 공동체를 위한 예산 삭감. 선별 복지 확대. 이는 과연 누굴 위한 건전화인가. 왜 예산 삭감과 통폐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가. 현재와 같은 역대급 세수 결손을 야기해 마른 수건을 짜낼 상황을 만든 주체는 정부다. 정부의 잘못이 왜 시민들과 지역 공동체의 피해로 이어져야 하는가. 정부와 지자체의 채무를 갚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작은 예산부터 점점 깎아 들어가는 현재 행태가 도의적으로 옳은가. 시민을 짜내 공공의 잘못을 수습하려는 지금의 작태는 재정을 앞세운 국가폭력일 뿐이다.

모순되게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구시는 반도체 팹 구축 사업,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 등에 수백억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한다. 개발, 구축 사업, 성장을 위한 지표에만 예산이 쏠리는 현상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이념 아래 굴러가는지를 보여준다. 보편 복지가 아닌 시장경쟁을 기본값으로 여기는 국가는 민간과 시장이 복지를 비롯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며, 그러도록 떠민다.

공론장을 형성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등 사회 구성원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활동의 중요성은 망각한 모습이다. 물가는 천정부지에 가계 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는데, 일반 서민들의 삶을 살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택한 길은 ‘나 몰라라 몸집 줄이기’다. 이다음에는 어떤 분야의 예산이 삭감될까. 누가 약자라는 범주 바깥으로 밀려나 잊힐까. 공공의 책무를 잊은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_표출지대_김지효
pyochu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