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쪽방신춘문예] 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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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구쪽방상담소는 지난 11월부터 12월 12일까지 제1회 쪽방신춘문예를 열었습니다. 쪽방신춘문예에 당선된 글은 12월 22일 대구 2.28공원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작은 책으로 묶여 발표됐습니다. 뉴스민은 대구쪽방상담소와 글쓴이 동의를 얻어 29일부터 1월 2일까지 당선작을 싣습니다.

이설복(가명)

얼마 있지 않으면, 설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또, 기다려도 설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지구가 어쩔 수 없이 공전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설을 보내야 한다.

어린 시절 손꼽아 하루하루 세어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요즈음 세대는 옛날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어린 시절 집은 상당히 벽촌이었다. 거기다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과일 살 엄두도 못 내었다.

배와 사과는 부잣집에서나 먹는 과일로 생각했다. 더욱이 사과는 배보다 더 귀한 과일이었다. 얼마 전 경북 북부 지방으로 사과 따기 봉사활동하러 간 적이 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사과나무가 엄청나게 많았다. 사과 크기도 컸다. 원장님 설명을 간단하게 듣고 처음 따보니 신기했다.

지금까지 사과나 과일을 돌려서 따보았지, 꼭지를 남겨두고서 따보기는 처음이었다. 잘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도 다소 해보았는데, 1시간 즈음 따보니까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사실 속으로 혼자 왜 다른 속보다 꼭지를 남겨두고 반대쪽으로 올려서 딸 때가 잘 따지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조물주의 조화를 생각해보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라이프찌이”(대표적인 낭만주의 독일의 수학자겸 철학자)질서라는 글귀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점심을 먹고 사과 따기를 계속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얼마 있지 않아서 일은 금방 끝났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품앗이’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그 기원으로 ‘두레’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사과밭에서 풍경은 과거 품앗이를 생각나게 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의 두레로 서로 협동하는 모습과 상부상조 정신, 덕업상권(좋은 일을 서로 권함) 등의 전통을 엿보는 것 같았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내려와 사과 상자를 대구로 가져가기 위해 실을 때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나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거기에 있었다. ‘힘들게 일을 해서(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형편이 어렵다는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사과를 무료로 나누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원장님이 더욱 존경스럽다는 말이 모자랄 것 같았다. 대구에서 원장님이 주신 사과 보따리를 덥석 들고 온 나 자신이 한없이 못 나고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끝으로 설에 대한 이야기도 몇 자 적고 끝내겠습니다. 고려 중엽, 작자가 잘 생각나질 않지만, 해동동국통감(海東東國通監)이라는 책에서 섦다->섬다->설다->낯설다->설이 되었다는 게 학자들의 다수설이라고 합니다. 섣달 그믐날과 정월 초하루 날, 한해가 바뀌니 다르다는 뜻이 되겠지요. 아무쪼록 어려운 이웃들이 몸 건강하시고 뜻한 바 일들이 잘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