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길을 막고 물어보자 / 김수상

11:33

길을 막고 물어보자

김수상

길을 막고 물어보자
누가 우리의 평화를 빼앗아갔는가

길을 막고 물어보자
누가 우리의 손을 맞잡게 했는가

길을 막고 팔을 벌려 물어보자
이 싸움은 이제 우리가 이긴 것 같지 않은가

너희들이 도둑 같이 숨어들어
전쟁의 무기를 들여놓겠다던
별의 산 성산에서부터 샘물은 흘렀다
곧게 뻗은 성주로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인간의 띠를 만들었다
얼굴에는 강물 같은 평화의 웃음이 넘쳐흘렀고
목이 터져라 “사드가고 평화오라”를 외쳤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쉬지 않았고 종처럼 맑았다
소리 없이 소문도 없이 착하게 살던 성주의 별들이 모여
평화의 강물을 만들었다
4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룩한 평화의 인간띠는
기적의 강물이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벅차서
눈물만 흐르는 강물이었다

평화, 공존, 기적, 희망
이런 착한 말씀들을 모신 현수막과 깃발과 만장을 든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쏟아져 나왔는지
길목 곳곳에 손에 손을 잡고 별들이 되어 반짝였다

마을 풍물패가 북을 치며 앞장을 서고
대형 태극기와 평화나비 펼침막이 그 뒤를 따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우리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우리를 보고 평화를 뼛속 깊이 새겼다

아, 우리가 언제 이렇게 살아있다는 기쁨을 맛보았던가
아, 우리가 언제 이렇게 하나가 되어보았던가
아, 우리가 언제 손에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보았던가

어린 아이가 아빠의 목에 올라타서
“사. 드. 가. 고. 평. 화. 오. 라.” 고
또박또박하게 외쳤다
그 말들을 성주의 하늘은 빠트리지 않고 받아 적었다
생명의 마을에서 평화를 찬탈해간 자들을
이제는 하늘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선남면의 할머니도 초전면의 어린이도
사드는 안 되는 것을 아는데 너희들만 모르니
이제는 너희들이 불쌍해 보인다

아, 사랑은 이렇게 오는가
성주 땅은 분열책동을 일삼는 너희들이 넘보기에는
평화의 힘이 너무 커진 땅이 되어버렸다
이제 너희는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쇠붙이로 짓밟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부드러운 흙가슴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단결로, 평화로, 우리는 이겨내었다
우리는 승리이고 평화이며 서로의 자랑들이다

눈물이 난다
뜨거운 눈물이 난다
이 사랑의 기억을 죽음까지 데리고 가자
이 평화의 항쟁을 역사(歷史) 끝까지 데리고 가자
성주의 성산포대에서 퍼올린 사랑과 평화의 샘물을
뜨거운 연대의 바다로 데리고 가자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평화다
모두가 성주다

▲인간 띠잇기를 마친 사람들이 행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