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변에 노란리본을 묻고 온 세월호 세대, ‘책임’을 말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10) 이유정, 정혜리, 임나희

16:01
Voiced by Amazon Polly

이번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은 이전과는 다른 설렘이 있었다. 9번 인터뷰하면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인터뷰. 세월호 세대라고 불리는 고등학생을 직접 만난다는 기대,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긴장감이 섞인.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인터뷰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또 미리 생각한 질문이 청소년에게 맞을지, 어떨지 여전히 고민하기도 한다.

▲ 왼쪽부터 이유정, 정혜리, 임나희 학생 2016.12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지하철을 내려 아파트를 통과해 학교 앞에 있는 빵과 음료를 파는 가게에 미리 도착했다. ‘우분트’라는 이름의 가게는 소소한 인테리어에, 수업을 마친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 정겨운 곳이었다.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은 메뉴판도 보고,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청소년들을 기다리는 사이에 이유정(성산고 3년/19세), 정혜리(성산고 3년/19세) 학생이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준 강성규 교사(호산고/41세). 그리고 미리 와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했던 임나희(호산고 2년/18세) 학생을 만났다.

아, 이런 반가움이라니!

세월호 참사가 났던 2014년에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유정, 혜리 학생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2015년 2월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연극을 했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 한참 만에 만났는데도 익숙한 반가움이 있었다.

2014년 여름,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던 유정 학생과 혜리 학생은 고등학생 10여 명이 SNS를 통해 모였다. 모인 청소년들은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연극을 하기로 했다.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대본을 쓰고, 여기저기 연습실을 찾아다니며 연습했다. 선불 관람료를 모아 소극장을 대관하고, 처음 해보는 음향과 조명 기술도 배워서 2015년 2월에 세월호 참사 상황을 주제로 한 뮤지컬 <다녀오겠습니다>를 공연했다.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이어 3월에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와 함께 대구에서 1번, 여름에는 ‘꿈이룸학교’와 함께 서울에서 한 번 더 공연했다. 두 번의 공연에는 세월호참사로 자녀를 잃은 단원고 2학년 학생 부모님이 공연을 관람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 만난 나희 학생은 자리를 마련해 준 강성규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을 계기로 인터뷰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올해 2016년 4월 대구시교육청은 세월호 계기수업을 진행한 호산고 강성규 교사의 수업을 문제 삼아 장학사 11명을 학교로 보내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강성규 교사에게 경고 처분했다. 교육청이 내세운 징계 이유는 강성규 교사가 전교조에서 만든 계기수업 교재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육청은 영문을 모르는 학생들을 자습시간부터 찾아가 상황 설명이나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없이 설문조사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대구시교육청의 부당함을 알리고 선생님의 정당함을 호소한 이들은 호산고 학생들이었다. 교육청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선생님에게 힘내시라는 눈빛을 보내며 학생들은 강성규 선생님을 응원했다. 이때 나희 학생은 보다 적극적으로 언론과 인터뷰하고, 소신을 밝힌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강성규 선생님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던 중에 만난 고등학생의 글은 솔직하고 정의로웠다. 그 글을 쓴 용감한 학생을 직접 만나보니 ‘아, 이 학생이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들었다. 나희 학생은 침착하고 반듯함. 신중함이 느껴지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서 나왔다는 나희 학생에게 당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다.

“어느 날 아침 자습시간에 교육청에서 감사를 나와서 연극 수행평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 시험도 한 과목 있었는데, 그 설문 때문에 시험도 밀리게 됐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그냥 설문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수업이 편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사실을 저희에게 전달하면, 판단은 저희가 해서 그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갖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만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그런데 설문은 마치 선생님이 잘못된 것을 가르쳤다는 듯이 되어 있었고, 저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희 학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하, 저런 마음이었구나, 그리고 학생들이 정말 어른들한테 화가 많이 났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과정에서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세요.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이 이해도 되고, 제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님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가족들 제재에 따르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저도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나도 내 생각이 있고. 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제 생각과 같지는 않으시지만, 평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는 편이고, 대신에 항상 책임을 지라고 하십니다. 부모님의 생각을 제게 강요하지는 않으세요. 제가 선택하게 하고, 대신 책임도 져 주시지 않지요.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라는 입장이세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함께 인터뷰에 참여한 혜리 학생 부모님도 그랬고, 유정 학생 부모님도 그런 면에서 닮아 있었다. 딸과 생각이 같든, 같지 않든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존중해 주고 있었다. 이것도 우리 사회 발전의 한 측면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시 혜리, 유정 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 오게 된 이유도,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일도 함께한 세월호 연극이었다.

연극에서도 조용한 역할을 맡았던 혜리 학생은 실제 성격도 그렇다고 한다. 그날도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해서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혜리 학생 이야기를 옮겨 본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그냥 언론에 비친 세월호와는 확실히 다른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본을 쓰면서 한겨레에 실렸던 ‘천국에 보내는 편지’를 비롯한 여러 기사를 다 읽었는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슬픈 거 보고 잘 우는 편이 아닌데, 동영상 등 자료들을 보면서는 정말 감정이 북받쳤어요. 오늘 인터뷰도 그래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연습실을 정말 많이 옮겨 다녔어요. 연습 장소 구하고, 대본 쓰고 등등 완전 우리끼리 한다는 어려움, 처음이었고 우리 모두 아마추어였으니까요. 그때 학교 선생님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먼저 공연료를 받았는데, 대부분 선생님이 받아 주시고, 우호적이셨어요. 약간 걱정하는 분들은 계셨지만 대놓고 말리거나 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공연에 오지 못하면서도 선뜻 돈을 주시는 모습에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어 연극을 제일 먼저 제안하고 대본을 쓰는 등 역할을 많이 했던 유정 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 세월호를 주제로 한 고등학생 공연 장면. 2015. 3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과 분노에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분명히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제 삶의 목표이기도 하고요. 공연을 본 사람들이 제게 했던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뉴스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안타깝다는 정도였고, 시간이 흐르면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무덤덤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공연을 보고 그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고 보니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알겠다. 배에서 무서워서 우는 모습, 엄마를 부르며 노래하는 모습들을 보니 세월호 안에 있었던 아이들도 다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와 닿아서 세월호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삶의 방향성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다 말하고 사는데, 실제로 우리가 귀를 기울여서 공감하고 응원해주어야 할 사람들 목소리는 자꾸 묻히고 잊혀가고 있어서 늘 안타까웠어요. 그랬는데 세월호 공연을 하면서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공연이었어요.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저만을 위한 꿈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우리 사회가 여전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는 유정 학생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요즘 시국을 이야기하게 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밝혀지지 않고 있는 대통령의 7시간은 오늘 인터뷰를 위해 모인 모든 사람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번 시국에 보이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이야기, 친구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들이 알고 보니 일베에서 유래했더라는 이야기, 생각보다 일베인 친구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중 나희 학생의 이야기는 함께 한 어른인 나도 부끄러움이 들도록 했다.

“세월호 참사나 강성규 선생님 수업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일부 친구들이 없지는 않은데 저로서는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다 다양하고 자기 생각이 있으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또 솔직히 이 모든 일은, 세월호도 그렇고 이번 시국도 그렇고 제일 필요한 것은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인 저도 자유가 있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은 더욱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고,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까지도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 키워드는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도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책임을 다 지려고 하지만 다 못 지는 경우도 있어요.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100퍼센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그것도 이해해요. 그렇지만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희 학생은 이야기하면서 ‘책임’이라는 단어에 힘을 꼭꼭 주어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나희 학생은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단원고 학생들이 가려고 했지만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 호산고 학생들은 월정리 해변과 협재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노란 리본을 묻어주고 왔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가 정확하게 거기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다시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리본이 금방 떠내려갈까 봐 파도를 피해서 깊이 파묻느라 힘이 들었어요. 그렇게 리본을 해변에 묻을 때 기분이 참 오묘했어요. 어쩌면 어른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당연한 도덕적 상식이 지켜졌다면, 우리가 리본을 바닷가에 묻을 일도 없었고,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 일도 없었잖아요. 나도 우연히 세월호를 안 탄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어른들이 책임지지 않은 일로 학생들이 피해를 봤잖아요. 거기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고, 아직 어떻게 할지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제 마음이 가고 이끄는 대로 행동하려고 해요. 제가 공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인간적이고 사회에 맞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활동을 하는 분들이나 가족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은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함께 추모하고 함께 돕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 그리고 제가 다 하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용기를 크게 내지 못하는 것이 좀 부끄럽구요.”

흠~~부끄럽게 해 놓고는 스스로 더 용기를 내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하니, 거듭 부끄럽고 따뜻하고 아팠다. 함께한 강성규 선생님은 “비도덕적인 사회와 맞서는 건 정말 힘든 일, 매 순간순간 결심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지만 또 자꾸 하다보면 질이 난다”고 했고, 유정 학생도 옆에서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이야기를 보태 우리는 함께 웃기도 했다.

유정, 혜리 학생은 다시 세월호 연극을 함께 할 친구들을 모집하고 있다. 오디션도 보고 대본도 다시 쓰고 연습해서 되도록 빨리 공연을 올리려고 한다. 처음과 다른 점은 그때는 공연을 위해 먼저 모이고 세월호 참사라는 주제를 잡았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에 아파하고 공감하며 이후에도 꾸준히 세월호 활동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마침 세월호 참사 1,000일이 되어가고, 해가 바뀌고 4월이면 또 세월호 참사 3주기 될 터라, 유정, 혜리 학생이 준비하는 공연이 더 소중한 역할을 하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유정, 혜리 학생에게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들었다.

“1000일이 다 되어 가는데 인양도 안 되고, 바뀐 건 아무것도 없고, 사람들 태도만 달라졌을 뿐 밝혀진 것도 없는 상황에 자꾸 화가 납니다. 그런 마음이 나라도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하고 밝혀져야 하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노래하고 연극을 하고 그렇게 친구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요.”-이유정

“처음에 이 공연을 하자고 한 이유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세월호참사가 잊혀질 것이라는 사실이 뻔했고, 그걸 바로 잡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공연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도 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세월호참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아지고, 희생자들에 대한 비난이 생겨났습니다.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지금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정혜리

마지막으로 세 학생이 바라는 나라,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유정 학생은 “하루라도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유가족 부모님들이 마음 편히 주무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이 일은 100년이 지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희 학생은 “진실이 색안경 씌워지지 않고 사실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서 책임지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일관되게 책임 문제를 강조했다.

혜리 학생은 “착한 게 죄가 되지 않는,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짧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찡해져서 혜리 학생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혜리 학생은 “제가 대학면접 봤을 때 ‘우리 사회가 착한 사람이 피해 보는 나라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현재까지는 우리나라가 착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는, 이용당할 수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착한 게 상을 받는 게 아니라 당연하고 악이 처벌받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날 내가 만난 세 명의 고등학생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인터뷰 의도에 따라 초대된 학생이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청소년 모두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이고 많이 공감하고, 활동도 성심껏 해온 학생들이라 인터뷰하는 내내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하지만 세 학생 이야기의 바탕에는 공통적으로 세월호 참사 당사자 세대라는 인식,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억울함에 내몰리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따뜻한 마음과 정의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대가 어른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최호선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민한 학생 중에는 교실에 앉아있는데 복도 유리창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환영을 본다고 했다. 그럴 정도로 기성세대가 느끼는 세월호 참사의 실감과 청소년 당사자 실감이 다르다던 이야기.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낳은 이 사회 어른들이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응당한 해결을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어쩌면 우리 어른들에게 복수할지도 모른다던, 그래서 그만큼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던 이야기.

자식을 잃고 1,000일이 되어가도록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워 오신 부모들, 함께 해 온 국민이 있었기에 그래도 대통령의 책임(7시간)이 다시 물어지고, 세월호를 인양하고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유정 학생 말처럼 아직도 우리의 과제는 산적해있다. 세월호는 바다에 잠겨있고, 세월호와 함께 국민 9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특조위는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채 강제종료 당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 1명을 탄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사회 온갖 적폐들을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야 한다며 나아갈 길을 밝히고 있다. 이 길에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누구보다 아팠고, 정의롭고 용감했던 청소년이 나서고 있다. 이에 화답하고, 이로부터 배우고 함께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약속을 우리는 2017년에도 잊지 않고 지켜갈 것이다.

[사진=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 제공]

이번 10번째 인터뷰를 끝으로 세월호을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이야기는 마무리를합니다. 그동안 긴 글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