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적 여정] (7) 또 하나 다른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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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13:44 | 최종 업데이트 2017-09-05 13:45

[주=황규관 시인이 연재하는 ‘김수영의 시적 여정’은 매달 5일, 20일 뉴스민에 연재한다. 인용된 작품의 전문 수록은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마쳤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나왔지만 김수영에게 주어진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중공군이 참전한 1951년에 김수영의 가족은 경기도 화성군 조암리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에서 부인 김현경은 첫 아들을 낳았다. 그로부터 1년여 뒤 어머니와 가족은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을 조암리에 두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김수영은 영등포에 살고 있던 가족과 재회한 후 동생 수성이 있는 부산으로 다시 갔다. 부산에는 ‘후반기’ 동인들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인 김현경이 친구 이종구와 광복동에서 동거 중인 소식도 그 때쯤 들었다. 김수영은 김현경을 찾아갔으나 별 소득 없이 돌아와야만 했고 김수영은 휴전이 된 다음인 1953년 10월에 서울로 돌아갔다. 김수영에게 전쟁은 혹독한 개인적 상처를 심어줬지만, 이미 그 상처는 김수영 자신만의 상처도 아니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학도의용군으로 끌려 간 동생 수강과 수경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애정지둔愛情遲遁」은 그 때쯤 써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1연에는 어떤 처연함이 배어 있다.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_「애정지둔愛情遲遁」 1연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후 전쟁은 끝났으나 그에게 “조용한 시절”은 허락되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쟁 전 이뤘던 가정은 깨졌으며, 학도의용군으로 끌려간 동생 수강과 수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강과 수경에 대해서는 1961년에 쓴 「누이야 장하고나!-신귀거래7」에 잠깐 언급되는데, 그 작품에서도 김수영은 놀라운 절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심경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동생의 사진>을 보고도/ 나는 몇 번이고 그의 진혼가를 피해 왔다.” 이런 절제력이 도리어 자신의 안을 향해 갱도를 뚫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수영의 시에는 확실히 기존의 상식을 뒤집어엎으려는 인내가 보인다.

니체는 『아침놀』(책세상)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사람들은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다. 그렇게 깊은 곳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지만 가차 없이 전진하는지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빛과 공기를 맛보지 못하면서도 한마디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어두운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신념에 의해 인도되고 있고, 그의 노고가 어떤 위로를 통해 보상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가? 그는 자신이 [결국] 무엇에 도달하게 될지는 알고 있기 때문에, 즉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긴 암흑과 이해하기 어렵고 은폐되어 있으며 수수께끼 같은 일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면에서 보면 김수영은 니체주의자에 가깝다. 꼭 니체를 읽어야 니체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는 「유목적 사유」라는 짧은 논문에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무비판적으로 종합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니체를 그들과 완전히 다른 “저항 문화의 여명”이라 부른 적이 있었다. 니체의 말대로 김수영에게서는 “한마디 고통도 호소하지 않는” 면이 있으면서 그 힘을 어떤 ‘여명의 계발’에 쏟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 김수영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지만 김수영은 “사랑이 생기”게 하는 힘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비록 그런 자신의 모습이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가 될지언정 말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지만 말이다. 「애정지둔愛情遲遁」은 그러한 작품이다. “생활의 백골” 가운데에서 찾는 사랑이기에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가듯이 사랑은 자꾸 지연되고(遲) 그만큼 굼뜨다(鈍). ‘지둔遲鈍’은 그러나 탄식이 아니다. 지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재긍정”하는 것이다.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들어갈 것”은 1연의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의 변주다.

하지만 1953년부터 1954년에 쓴 작품들에는 어쩔 수 없이 설움의 정조가 나타나고 실제로 ‘설움’이라는 어휘를 자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김수영의 내면은 전쟁의 경험과 전쟁이 남긴 폐허 위에서도 섣불리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현실이 주는 고통을 도약대 삼아 시적으로 현실을 뒤집어엎는 역량을 죽을 때까지 보여주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점을 눈여겨보지 않은 김수영 독해는 창백한 연구논문을 낳을 뿐이다.)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려면 언제나 김수영이 처한 현실의 지평에 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김수영이 구축한 시적 양식이 모더니즘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그 성과는 결국 김수영이 리얼리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풍뎅이」와 「너를 잃고」에서도 마찬가지로 설움은 등장하는데 이 시기 김수영에게 나타는 설움은 일종의 상실감 때문으로 보인다. 전쟁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가 버렸다. 아내를 잃은 것도 매우 뼈아팠을 것이다. 김수영이 광복동에서 함께 사는 이종구와 김현경을 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으나 그 열패감까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김현경의 증언에서도 그렇지만 『평전』에서 두 부부가 조우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김수영의 의연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의연함의 바탕에는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있었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풍뎅이」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늬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젊은 김수영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음을 김수영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아내의 일탈을 이해하는 너그러움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 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라고 말할 때, 전쟁도 전쟁이지만 그 다음의 폐허를 살아가려는 의지와 허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엉켜버린 삶이 쉬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허무주의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소금 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라는 예감은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김수영은 “의지”와 “노래”와 “사랑”에 어떻게든 기대려 한다. 비록 의지는 “미끄러져 가는 의지”이지만 그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가 있고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이 있는 한 “소금 같은 이 세계”는 긍정되어야 한다. 물론 「풍뎅이」를 김현경과의 관계로 좁혀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 작품은 그러나 그 당시 김수영이 처한 실존적 조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너를 잃고」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이다.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너”에게 받은 “억만 개의 모욕”을 곱씹으며 자신의 ‘되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독이고 있다.

나의 생활의 원주(圓周)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과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히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億萬無慮)의 모욕인 까닭에

-「너를 잃고」 4-5연

이 부분에서 인상적인 것은 “나의 생활에 원주(圓周) 위에 어느 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지만 그 “애정의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복수가 아니다. 김수영의 시에서는 복수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긍정의 시인이지 원한과 부정의 시인이 아니다.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라고 1연 1행부터 말하는 것은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자신이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늬가” “나의 애정의 원주” 위에 서기를 바라는 것은 잃어버린 너와 함께 가야 할 어떤 여정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또 하나 다른 유성”은 그저 하나의 도피처일 뿐이다. “또 하나 다른 유성”은 그 “애정의 원주가” “위대하여”지는 것을 넘어 “가장 찬란하여지”기까지 해야 현현한다. 또 그랬을 때만 “또 하나 다른 유성”은 가능하다. 지난 시간과 나쁜 경험을 서둘러 소거하고 길을 떠나는 것은 김수영에게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4·19혁명 이후에 나타난다.

혁명 이후에 김수영이 강하게 부정하고 비난한 구체제는 그러나 김수영의 ‘긍정’을 부정했던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되어야 했다. 긍정은 긍정을 부정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을 부정하는 부정은 부정되어야 하는 게 긍정이다. 그러나 “늬가” “애정의 원주 위에” 서는 것은 결국 ‘너’의 몫이다. 만일 “늬가” 끝내 그것을 거부한다면, “영원히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김수영에게 삶은 “영원한 숨바꼭질 속”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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