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표 교육 비정규직화 영어전문강사제도, 강요되는 고용불안

시행령 따라 4년마다 퇴직 후 신규채용 반복

10:30

대구 한 학교의 영어회화전문강사 A(48) 씨는 4년마다 신규 직원이 된다. 운 좋게도 작년 신규 채용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4년마다 신규채용이 반복돼 같은 학교에서 4년을 근무했든 8년을 근무했든 원점에서 다시 원서를 내고 평가받아야 한다. 4년 만기를 앞둘 때마다 강사들은 퇴직절차부터 마쳐야 한다. 퇴직금 청구서에 사인하고 계약 만료 통보를 받는다.

2018년, 만 8년을 넘긴 A 씨 월급은 2009년과 같은 215만 원이다. 수당은 없다. 매년 물가인상분만큼 감봉된 셈이다. A 씨를 비롯한 영어회화전문강사가 바라는 것은 하나, ‘고용 안정’이다. 새 학기 전인 지금은 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의 신규 채용 시즌이다. 대구에서는 1월, 벌써 2명이 오래 근무하던 학교에서 ‘신규 채용’되지 못했다. 일자리를 잃었다.

영어회화전문강사 제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9월, 도입됐다. 2008년 초등학교 영어 수업 시수가 확대됐고,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가 ▲추가 수업 담당 ▲원어민 보조교사 관리 ▲현직 영어교사 업무 부담 경감 등을 이유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모집했다.

영어 수업 일부를 강사가 맡으면서 비정규직화가 진행됐다.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1년 이내로 임용하되 4년이 넘지 않는 한에서 임용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이 때문에 영어회화전문강사는 매년 재평가를, 4년마다 신규 채용을 하는 비정규직이다. 2018년, 8년 만기가 되는 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들은 또다시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고, 대구에서는 8년 동안 강사 생활을 했던 2명이 신규 채용되지 못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작은 기대도 걸었다. 2017년 7월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은 금방 찾아왔다. 같은 해 9월,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는 영어회화전문강사를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급여 인상, 계약 연장 시 평가 간소화 등을 권고하는 데에 그쳤다.

“저희는 임금 인상이 없어요. 급식비, 명절휴가비나 상여금도 없어요. 근속수당도 물론 없어요. 물가 인상분도 고려가 안 돼요. 다른 지역에는 인상하는 곳도 있다던데…그래도 저희는 당장 그거 바랄 때가 아니에요. 우리가 바라는 건 고용 안정이에요. 우리를 노동자로 봐 줬으면 좋겠어요. 상시 지속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육노동자로. 그런데 우리는 항상 불안하니까 학교 눈치를 많이 보게 돼요. 시키는 업무를 뭐든 다 하게 돼요. 혹시나 해고되면 당장 가족들 생계도 어려워져요.”(A 씨)

2017년 6월, 4년 이상 근무한 영어회화전문강사는 무기계약직에 해당한다는 2심 법원의 판결도 나왔는데, 고용 안정만을 바란다는 이들의 바람은 과한 것일까.

▲17일 대구교육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사진==교육공무직본부 대구지부)

17일 오전 11시, 대구교육청 앞에서는 교육공무직본부 대구지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 안정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고용 보장을 위한 기존 영전강의 인력풀 활용, 영전강 경력 점수 확대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그런데 대구교육청은 부당해고를 극복하기 위한 법적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절차도 마련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2013년 인권위가 영어회화전문강사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무기계약직 전환 등 대책 마련을 권고했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대구교육청은 정원이 줄어드는 해고에 해당하지 않으며, 서류상 성적이 신규 채용에 원서를 낸 다른 강사보다 낮아서 채용 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감원은 없고, 오는 3월부터 다른 사람이 근무하게 된다”라며 “기존 강사가 채용되지 않은 것은 원서 점수가 낮았기 때문이다. 채용 여부도 교육청이 아니고 학교장에게 권한이 있다. 경력 점수는 반영되지만 같은 학교 지원자에게 추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고 교육경력에 적용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