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영의 모든 것] ② 박근혜가 간택한 ‘노동전문가’, ‘친박전문가’로

빅데이터로 보는 이완영의 6년
‘박근혜’가 인정한 ‘노동정책전문가’ 이완영은
‘노동정책전문가’로서 친’박근혜’ 국회의원으로

11:06

<연속기사>
[이완영의 모든 것] ① ‘정치자금법 위반’ 항소심 전관 변호사 선임, 변수 될까?(18.9.6)
[이완영의 모든 것] ③ 국회 입성 첫 법안은 ‘정수기 위생 강화’로(18.9.7)

2012년 3월 23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은 몸소 경북 칠곡까지 내려왔다. 열세에 있는 당 후보를 돕기 위해서였다. 경북 칠곡·성주·칠곡 지역구는 국회 새누리당 노동수석전문위원 이완영이 급파됐다. 이곳에서 출마를 준비해온 다른 후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낙마했다. 박근혜는 선거를 약 한 달 남겨두고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완영을 간택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완영 후보는 중앙 정부에서 지난 30년 동안 노동정책전문가로 열심히 일해온 든든한 일꾼”이라고 치켜세웠다. 1982년, 공직에 발을 들이고 1987년부터 20여 년을 (고용)노동부에서 일했다. ‘노동정책전문가’ 이완영은 국회의원이 돼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치됐다.

그로부터 6년, 노동정책전문가 국회의원은 노동정책과 멀어졌다. 재선에 성공하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정보위원회에서 일하다가 이제는 법제사법위원회로 둥지를 옮겼다. 상임위가 바뀌어서 그가 변했는지, 그가 변해서 상임위도 바뀌었는지 알 순 없다. 다만, 데이터는 지난 6년 동안 국회의원 이완영의 무게 중심이 ‘노동’에서 ‘친박’으로 이동했다는 걸 보여줬다.

빅데이터로 보는 이완영의 6년
‘박근혜’가 인정한 ‘노동정책전문가’ 이완영은
‘노동정책전문가’로서 친’박근혜’ 국회의원으로

<뉴스민>은 프로그램 R을 수집도구로 활용해 포털(다음)에서 지난 6년(2012년 6월~2018년 5월) 동안 국회의원 이완영을 다룬 뉴스 데이터를 수집했다. 수집한 데이터는 분석도구 텍스톰(Textom)과 UCINet6, NetDraw를 활용해 의미를 분석했다. 수집된 데이터 중 사진, 동정 기사를 제외한 2만 3,353건을 대상으로 했다.

처음 4년간 이완영 의원은 주목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집된 뉴스량만 봐도 2012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9,512건에 그쳤다. 월평균 198건 수준이다. 이완영이란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재선에 성공한 이후다. 이제 4년 임기 중 절반을 마쳤는데, 수집된 뉴스량은 지난 4년치를 훨씬 웃돈다. 2년간 1만 3,841건, 월평균 576건이다.

특히, 2016년 12월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만 뉴스 4,223건이 쏟아졌다. 시기가 묘하다. 이때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알려지고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시점(12월 9일)이다. 이 의원은 그해 11월 17일부터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다. 특위는 이듬해 1월 12일 마지막 회의를 했고, 이 의원은 1월 2일 특위를 그만뒀다.

이 무렵부터 이 의원 관련 뉴스에는 ‘박근혜’, ‘친박’이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전·후반기로 나뉘는 국회 일정에 따라 2년 단위로 이완영 의원 관련 뉴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회’, ‘지역구’, ‘통일’, ‘국정조사’, ‘근로시간단축’
300명 중 1명, 평범한 국회의원이었던 19대 전반기

19대 국회 전반기(2012년 6월~2014년 5월) 이 의원 관련 뉴스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 ‘정책’, ‘법안’ 같은 키워드가 주로 언급됐고,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아래는 19대 전반기 뉴스 데이터를 네트워크 분석한 이미지다. 해당 키워드를 나타내는 박스 크기가 클수록 많이 언급됐고, 중심에 위치할수록 해당 키워드와 연결된 키워드가 많다는 의미다.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별로 따로 모으면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19대 국회 전반기는 ▲국회 ▲지역구 ▲통일 대박 ▲국정조사 ▲근로시간단축법 등 크게 다섯 개 군집으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이중 국회와 지역구 활동 관련 키워드가 많아서 비중이 높다.

이 의원은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9월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2015년 9월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혁’을 명분으로 내놓은 개악법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었다.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는 총 6차례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됐다. 이 의원은 이 중 3차례 국정조사에 특위 위원으로 선임됐다. 국정조사 6건 중 4건이 전반기에 있었고, 이 의원은 전반기 국정조사 4건 중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등 2건의 특위 위원으로 선임됐다.

‘통일’은 국회의원 이완영과 대통령 박근혜를 이어주는 첫 고리다. ‘통일 대박’은 2014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발언이지만, 이 의원은 이보다 약 2달 앞서 ‘통일’에 다가갔다. 2013년 10월 새누리당 의원 31명은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이라는 통일 연구 모임을 결성했다. 원유철 의원이 대표를 맡았고, 이 의원은 간사를 맡았다. <동아일보>는 2013년 10월 15일 “통일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완영 의원이 (결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로 위기 처한 박근혜 정권
‘막말’, ‘노동개악’으로 친박 정체성 다져가

19대 국회 후반기 들어서 국회의원 이완영은 대통령 박근혜와 좀 더 가깝게 연결된다. 이때도 주된 활동은 ‘국회’였다. 아래 네트워크 분석을 보면 19대 전반기와 마찬가지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 ‘경제’, ‘노동’ 같은 키워드가 주요하게 배치됐다. 하지만 중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전반기에는 없었던 키워드가 등장한다. ‘세월호’, ‘논란’이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에 위기를 불러왔고, 위기 국면에 이완영은 ‘논란’이 이는 행보를 보였다.

아래 키워드 연관성 분석 네트워크를 보면 이 의원이 어떤 논란을 일으켰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국회 활동 군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옆으로 ‘세월호 막말’ 군집이 크게 자리한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의원은 2015년 11월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미국에서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 90%는 정당하다고 나온다”고 말해 막말 논란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특위에 참석해 졸다가 지적을 받았고, 지지부진한 국정조사에 항의하는 유가족에게 “내가 당신에게 말했냐”거나 유가족을 쫓아내라는 듯 “경비는 뭐하냐”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의원의 전문 영역인 ‘노동’은 후반기에 ‘노동개악’으로 도드라졌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5대 입법을 추진했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노동위원장이자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 특위 간사로 노동개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이 의원은 외부에 ‘소장파’ 모임으로 인식된 당내 초·재선 모임 ‘아침소리’ 일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소리 간사를 맡았던 하태경 의원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다. 이 의원이 ‘미국은 경찰이 총을 쏴 시민을 죽여도 정당하다’는 막말을 한 것도 이 모임 회의 자리였다.

파란만장했던 20대 국회 전반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정국 한가운데 자리
각종 구설 만들어, 강성 친박으로 자리매김

19대 후반기 각종 ‘논란’ 덕분이었는지 이 의원은 20대 총선에서도 무난하게 공천받아 당선됐다. 무난하게 당선된 20대 국회였지만, 전반기는 파란만장했다. 지역구 성주에 난데없이 골칫덩어리 사드가 날아왔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대통령은 탄핵됐고, 당은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아래 네트워크 분석을 보면 파란만장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국회’는 여전히 큰 박스로 등장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최순실’, ‘국정조사’, ‘위증’, ‘청문회’ 키워드가 반대편에 등장했다. 19대 국회 시절에는 ‘국회’나 소속 정당 이름이 네트워크 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20대 전반기에는 외곽으로 밀려놨다. 대신 상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떡하니 가운데 자리 잡았다. 민주당과 함께 이 의원이 자주 언급됐다는 이야기인데, 국회 활동에서 민주당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래 연관성 네트워크를 보면 파란만장함은 더 두드러진다. 우선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2개 당명이 각각 큰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게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각 당명과 함께 군집을 이루는 키워드들이 보이는 특징이다. 새누리당 군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키워드는 ‘박근혜’다. 박근혜 정권 마지막에 ‘박근혜’와 ‘정부’를 지키려는 노력(‘요구’, ‘주장’, ‘말’, ‘기자회견’)을 보여준다.

자유한국당 군집에서는 ‘정보위원회’,‘국정원’, ‘북한’을 찾을 수 있다.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키워드다. 이 의원은 정보위원회 간사로 ‘공식으로’ 국정원으로부터 북한 소식을 전해 옮기는 게이트였다. 더불어 강성 친박 조원진, 이우현 의원의 이름이 작은 크기로 자리해 옅어지는 ‘박근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7월 성주를 달군 사드는 20대 전반기 이 의원에게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긴 했다. 그러나 이 시기 핵심은 단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다. 이 의원은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위에서 새누리당 간사를 맡았고, 각종 구설에 올랐다. 청문회 참석 증인들에게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은 일파만파 퍼졌다. 시민들의 18원 후원금이 이 의원에게 급증한 것도 이때다. 이 의원은 결국 특조 위원직을 내려놨다.

‘노동정책전문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간택된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으로 박 전 대통령이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하는데 열성인 ‘친박’ 국회의원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남은 2년은 어쩌면 이 의원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거나, 기존 정체성을 확고히 굳히는 시간이 될지 모른다. 물론, 이 의원이 무사히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을 때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