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형만 한 아우는 없나?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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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이 코로나19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한국에서 창궐한 올 2월부터 5월까지 넉 달간 영화관 관람객 수는 1,170만 명이다. 전년 같은 기간(6,840만 명)에 비해 5.8배 이상 차이가 났다. 2019년 한 해 영화관 관람객 수는 2억2,670만 명이고, 월평균 영화관 관람객 수가 1,890만 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올해 예견되는 영화산업의 위기는 우려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6월은 침체된 영화산업에 생기가 돋아난 달이다. 감염병이 사그라지기를 기다려 개봉 시기를 늦추던 새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기 시작했다. 6월 24일 개봉한 <#살아있다>는 첫날 관람객 수 20만 명을 넘어 개봉 첫 주말까지 닷새간 관람객 수 106만 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화된 2월 이후 최대의 기록을 냈다.

천만 영화 <부산행(2016년)>의 속편 <반도>는 감염병으로 움츠러든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시발점이 될 기대작으로 꼽혔다. 실제 개봉 첫날 관람객 수 35만 명을 기록하고 개봉 나흘째 오전 8시 10분 기준으로 관람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배급사 측은 역대 박스오피스 4위인 <국제시장(2014년)>과 비슷한 속도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영화 저널리스트와 영화잡지 기자도 호평을 남겨 관객몰이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반도>의 관람 후기는 반대다. 기대에 비해 실망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멀티플렉스 CGV 예매 앱에서 사전 기대 지수는 95%로 높았지만, 실관람평지수(골든에그)는 78%로 급락했다. <반도>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는 전작인 <부산행>이 K좀비 열풍을 일으킨 영화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창궐한 <부산행> 4년 후 한반도를 그린 <반도>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4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를 탈출하던 군인 정석(강동원)은 가족을 잃는다. 매형(김도윤)과 홍콩에서 목숨을 부지한다. 바이러스의 온상이란 차별과 냉대를 참던 정석과 매형은 거액의 달러가 담긴 차량을 빼내오라는 제안을 받아 한반도로 돌아간다.

4년 만에 돌아간 고국은 폐허로 변해 있다. 민간인을 돕다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은 631부대라는 조직을 만들어 살아남은 민간인(들개)을 잡아 여흥을 위한 노리개로 쓰다 버린다. 위기에 처한 정석을 구원한 사람은 앳된 소녀 준이(이레)와 유진(이예원)이다. 준이와 유진은 4년 전 정석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거절당한 민정(이정현)의 딸들이다. 정석은 민정 가족과 함께 631부대의 본진을 찾아가 트럭을 빼낸 뒤 탈출선이 있는 인천항으로 향한다.

배급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처럼 카 체이싱은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폐허가 된 도로 위에 가득한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질주하는 장면들은 매력적이다. 전진과 후진 기어를 수시로 바꾸고, 바퀴를 미끄러뜨리며 방향을 트는 드리프트 기술로 좀비 떼를 밀어버리는 장면도 쾌감을 극대화한다. 전체 상영시간 115분 가운데 카 체이싱의 비중은 20분에 달한다. 카 체이싱의 절정은 인천항을 향해 달리는 정석 일행을 631부대원들이 뒤쫓는 추격전이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년)>가 떠오르지만, 조잡한 CG가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단점은 액션의 전개가 <매드맥스>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대형 차량과 이를 보조하는 한 대의 차량을 다수의 차량들이 조명탄을 쏘아대며 추적하고, 거대한 조명을 주인공이 사격으로 전부 맞춰 파괴하는 것은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느슨한 서사, 예상 가능한 전개가 아니다. 카 체이싱보다 길게 느껴지는 작위적 신파 연출이다.

영화는 초반부 정석이 누나와 조카를 잃는 것부터 매형의 최후를 지켜보는 정석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슬픔을 강조한다. 후반부에는 민정과 딸들, 과거 군부대의 간부를 맡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단장 김 노인(권해효)의 가족애에 힘을 싣는다. 감동적인 장면을 신파로 비판하는 이유는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인 캐릭터에 감정이 이입되지 않았는데, 생존이 다급한 상황에서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슬로 모션과 극적인 음악이 동원되어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장면은 아니다. 스토리 전개상 필요하지만 극의 흐름을 끊을 정도로 과하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영화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상업주의와 비판 의식의 어색한 혼합, 여성 비하와 오락적 폭력의 과장, 틀에 박힌 전개와 최루성 결말 등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반도>의 한계점은 좁은 한반도에 갇혀 여전히 쫓기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점이 바뀌지 않아서가 아니다.

캐릭터를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한 탓이다. 좀비 창궐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631부대의 변화 이유를 가늠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의 장면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민정의 가족이나 김 노인, 서 대위(구교환), 황 중사(김민재)의 삶만 비춰졌더라도 캐릭터의 도구화라는 비판은 피할 수 있었다. <반도>는 <부산행>에 비해 커진 스케일에 반비례해 내실을 잃고, 화려한 액션만 남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산업에 암울한 미래가 그려지는 원인은 코로나19 때문일까? 전 세계에서 한국인은 영화관에 가장 많이 가는 민족이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영화관에 가는 즐거움을 안다. 우려의 원인은 오로지 돈만 운운하며 영화를 만들어 온 영화인들에게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