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안 연속기고] (3) ILO 핵심협약에 반하는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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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국제노동기구(ILO) 관련 이야기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실 이슈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다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2020년 12월, 지금 국회에서는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와 함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이 일방적으로 처리 될 상황에 놓여 있다.

노조법 개정은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과 함께 정부 법률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노조법 개정을 ILO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대비하는 차원으로서 국내의 노동관계법을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개정한다는 취지를 주장하고 있다.

ILO은 1919년 설립되어 국제노동기준을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제정하고 회원국의 국제노동기준 이행을 감독하고 있다. ILO 회원국은 187개국으로 우리나라는 1991년 가입한 152번째 회원국이다. ILO는 국제노동기준이 담긴 189개 협약이 제정되어 있고, 기본협약 8개, 거버넌스 협약 4개, 기술협약 177개로 구성된다.

ILO 기본협약은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비준해야 하는 약속이자 의무사항으로 4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에 8개 협약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제29호, 제105호)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상황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우리나라가 각종 국제기구에 가입할 당시부터 요구조건으로 제기되었고, 역대 정부가 수 차례 비준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아 국제적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번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이 통과 된다면, 늦었지만 이제서야 ILO 회원국 의무를 다하면서 노동후진국의 오명에서 벗어나 국제사회 일원으로 국가 신뢰를 회복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현장에서부터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보장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는 것을 선언하게 되는 것이고 국내법으로서 이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사관계에서 단결권 보장을 통한 노사 힘의 균형과 정부 간섭을 배제한 노사자치주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은 조건 없이 바로 비준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노동개악의 문제점, 노동기본권 제약 소지
ILO 핵심협약에 반하는 요소 포함

문제는 정부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노조법 개정안까지 제출하여 이를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협약을 비준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것으로 노조법 개정안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조법 개정안에는 노동기본권에 제약을 가하고 오히려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하는 등 ILO 핵심협약에 반하는 노동개악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번 노조법 개정안에서는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 단위 노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유일한 개선안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제외하고서는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전태일3법의 하나로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나 간접고용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 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전에 없었던 노동3권 실현에 있어 새로운 제약을 추가 시켜 개악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개정안은 현행법상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을 3년으로 연장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의 복수노조 사업장에 적용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하에서는 소수노조가 너무 오랫동안 단체교섭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것이므로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쟁의행위 시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사업장내 생산 및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를 금지한다는 것을 개정안에 명시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 판례에서도 사업장 시설의 부분적, 병존적인 점거로서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직장점거 형태의 쟁의행위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개정안으로 사업장 내 생산시설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이는 단체행동권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번 개정안에서 노동자를 종사자와 비종사자로 구분하여 차별적으로 의무와 제약을 부과하고, 대의원과 임원의 자격조건을 규약이 아닌 법으로 규제한 것, 노사자율교섭에 제한을 두어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초과하는 노사합의를 무효화하고 부당노동행위로 규율한 것 등 모두가 현재의 노사자치나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ILO 핵심협약 비준과 달리 노동기본권을 다시 후퇴시키는 노조법 개정안은 즉각 중단,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제정되어야 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2월 9일 정기국회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이 분주하다. 당초 여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대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2월 들어 여당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우선 입법과제에서 포함하면서 두 법을 조율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환되었고, 지난 2일에는 국회 법제사업위원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까지 개최되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국회의 입법 상황에서,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노동현장에서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중대재해는 단지 안전수칙이나 처벌을 일부 강화하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만으로 막을 수 없다. 즉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하여 중대재해 자체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서 중대재해를 예방 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는 원청과 기업 경영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가장 중요한 점은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수위라기 보다는 기업의 최고책임자, 원청책임자 그리고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는 처벌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재해 발생 시 그 책임의 분산 구조에 따라 경영책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도급, 위탁의 경우에도 그 형식을 불문하고 실질적인 사용자가 처벌을 받도록 한다. 그래서 공기단축이나 위험한 공법 사용으로 인한 중대재해에 대해 발주처에도 책임을 물으면서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 예방과 재발방지에 원청이 직접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자에 대한 형사처벌로서 징역형에 대한 하한형이 없고 벌금의 하한형이 500만 원에 그치고 있으며, ‘동시에 3명’ 이상 ‘1년에 3명’ 이상 사망 사업장에 추가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솜방이 처벌이나 현실성 없는 과징금 부과만으로는 중대재해 발생을 멈추기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더욱이 현재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90%가 집행유예와 몇백만 원의 벌금형만을 받고 있어, 중대재해 재발 방지에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기업 살인법이 제정되어 기업경영책임자에게 최고 수 십년형의 형사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안전보건이나 법률 전문가, 학계에서도 중대재해 발생 시 높은 형사처벌 수위와 징벌적 손해배상이 재발방지에 중요하고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적어도 사망사고 재해 발생 시 징역형과 벌금형에 하한형(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의 이하 벌금)을 두고 손해액의 몇 배(3~10배) 이상의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이 포함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