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 버스 기사 김민수 항소심도 실형···유예된 법원 온정

항소심 재판부, 일부 감형 했으나 집행유예에는 이르지 못해
"시민 8,000여 명 바람 저버려"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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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떡하죠···”

판사의 말이 끝나자, 김민수(가명, 42)의 동생 김민주(가명, 39) 씨가 참던 눈물을 쏟았다. 1일 오전 김민수 항소심 선고 기일을 앞두고 긴장한 탓에 마른침만 삼키던 민주 씨에게, 실형을 유지한다는 재판장의 말은 까마득히 멀어지는 듯했다.

1일 오전 9시 50분 대구고등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승규)는 김민수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사건 항소심 선고에서 원심인 징역 3년 실형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일부 감형이 이뤄졌지만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집행유예를 바랐던 김민수 측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불법체류 단속을 위해 공무원들이 검문을 요구하는데도 이에 불응하고 진행해서 공무원을 비롯한 차량을 충격했다. 그로 인해 다수 공무원이 상해를 입혔고 공용차량도 손괴됐다. 죄질이 좋지 않다”며 “그렇지만 피고인은 버스에 탑승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도와달라는 말에 충동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상해 정도도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 피해회복에도 노력했다. 피해 공무원 중 일부가 피고인 선처를 탄원하기도 했다”고 판시했다.

형량은 줄었지만, 집행유예로 김민수가 출소하길 희망했던 다수 시민들의 바람에는 닿지 못한 결과다. 김민수 사연이 알려진 뒤, 선처 탄원서만 8,000장 이상 모아져 재판부에 제출된 바 있다. 김민수도 범행을 반성하면서 항소심에서 반성문만 20차례에 제출했다.

난생처음 법원에 방문한 김민주 씨는 선고를 앞두고 재판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김민수와 함께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10년 전, 김민수 가족과 함께 달성군 한 고깃집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서빙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를 본 김민주가 무심결에 말했다.

김민주: “외국인이 이렇게 많아서, 우리나라 일자리도 없는데 어쩌지”  
김민수: “저 사람들 덕분에 네가 깨끗한 일을 할 수 있는거야. 지금도 공장에 저 사람들 없으면 돌아가지 않아. 앞으로 10년, 20년 뒤 우리 사회는 외국인이 더 많아질 거야. 무턱대고 싫다는 감정을 가지지 마.”

김민주 씨는 다시 두 얼굴이 떠올랐다. 중3, 초등학교 6학년인 김민수의 두 아이다. 지금 판결대로라면 두 아이는 내년 졸업식을 아버지 없이 치르게 된다. 부모 없이 남매끼리 치러야 했던 김민수와 김민주의 어린 시절이 김민수 자녀에게도 그대로 되물림되는듯 했다.

“선고가 다가오면서, 일도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내가 혼자 바깥에서 일하고, 웃고 하는 게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미안해서요···앞으로 나온다면, 저 혼자 생각이지만, 과연 오빠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잖아요. 또다시 똑같은 단속 위험과 선택지에 놓일 거잖아요.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어요.”(김민주)

실형 선고 이후 김민수를 돕던 이주노동자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는 대구고등법원 앞에서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피고인의 반성, 시민의 탄원, 법무부 피해 공무원의 탄원까지 모였는데도 사실상 김민수를 엄벌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8월 현행범 체포 이후 8개월 이상 구속상태로 있어 어느정도 처벌도 이뤄진 점도 참작이 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오늘 항소심 재판부도 김민수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단속 당시 도로에서 차량을 갑작스럽게 막았고, 이 때문에 위협을 느낀 이주노동자들은 공포 속에서 살려달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김민수는 이들의 절규를 거절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이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켜 37개 단체 탄원서, 8,333명 개인탄원이 모여 선처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도 확인됐는데, 다시 중형을 받아 갇힌 몸이 됐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 한 이에 대해 형법적 조문에 얽매여 실형을 내린 재판부 결정에 실망감을 넘어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김헌주 북부이주노동자센터장은 “뭐라 할 말이 없는 판결이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는 듯한 느낌이다. 김민수는 모든 잘못을 시인했고, 당사자인 법무부 공무원조차도 선처를 탄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정을 보냈는데도 법은 관대함을 보이지 않았다”며 “법보다 사람의 양심이 우선 아닌가. 이런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8개월동안 구금돼 있으면서 충분히 법적 처벌을 받았다. 비록 안타깝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김민수의 선한 행위에 대해 치유할 방법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김민수 추가 면회 이후 가석방 추진 등 방안을 두고 대응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김헌주 센터장
▲1일 김민수 실형 판결 직후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해 8월 김민수는 대구 한 공단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30여 명을 싣고 출퇴근 통근 버스를 운행하던 중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 차량을 만나자 아비규환 속에서 사고를 일으켰다. 출입국 직원을 확인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살려달라”며 울부짖자 실수로 엑셀을 밟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붙잡혔다. 당시 공무원 11명이 전치 2~3주 부상을 당했다. 이후 김민수는 반성하며 합의금을 공탁하는 등 노력했으나 원심 재판부는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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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