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구시국대회 장소는 매번 바뀔까? “우리에겐 더 큰 광장이 필요해”

“광장의 크기는 상상력의 크기”...대구 대표 광장 만들기 포럼
중앙로, 국채보상로 등 대표 광장 공간으로 제안

20:39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구 시국대회가 매회 장소를 옮기며 열리는 가운데 대구 대표 광장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15일 오후 1시 대구시 중구 대구YMCA에서 ‘광장, 그 도시 상상력의 크기’를 주제로 시민포럼이 열렸다. 대구민예총,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가 주최하고, 대구민예총, 대구YMCA, 시간과공간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포럼은 2.18안전문화재단이 후원했다.

주최 측은 “서울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 청계천 광장, 부산역 광장 등 수많은 광장이 그 도시를 상징하고 있다. 그에 비해 대구시는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광장 외에는 광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장소가 없다”며 “한 도시를 대표하는 광장의 크기는 그 도시가 가진 상상력의 크기이고, 민주주의의 장이라는 생각으로 대구 대표 광장을 만들기 위한 포럼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첫째 주부터 시작된 박근혜 퇴진 대구 시국대회는 매회 늘어나는 시민들로 2.28기념중앙공원, 중앙네거리 중앙파출소 앞 대중교통전용도로, 반월당네거리~중앙로네거리, 중앙로네거리~공평네거리 등으로 장소를 옮겨 다녔다.

주최 측은 “대구 시민들은 2002년 월드컵 때 5~10만 명이 모였던 범어네거리, 2008년 광우병소 수입 반대 집회에 1만 명이 모였던 한일로, 최근 국정농단 사태 때 중앙로에 넘치듯 역동적으로 운집했던 10만 명 등 광장의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며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안전광장’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상임이사는 서문시장, 약령시장, 달성토성, 대구역 등이 광장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권 상임이사는 “전통적으로 대구에 광장은 없었다. 조선시대 중후반 시민 권력에 의해 광장이 만들어졌다”며 “해방 이후 국가권력이 없던 시기 1946년 10월 2일(대구10월항쟁) 서문시장 한 방직공장 여공 2천 명이 거리로 나왔다. 6.25전쟁이 나던 시기에는 시민들이 라디오를 듣기 위해 대구역에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도심에 왜 광장이 필요한가의 핵심은 기억이다. 그 도시 기억의 크기는 문화의 크기, 문명의 크기다. 집단적 감흥을 동시에 한 장소에서 여러 명이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도심 광장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상훈 대구민예총 사무처장은 중앙로를 대구 대표 광장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사무처장은 “대구 지하철 참사 후 도로 붕괴 위험 때문에 한동안 차를 통제했다. 그 거리에 기억과 추모를 위해 매일 집회와 공연이 열렸던 기억이 있다”며 “그곳이 광장이 됐을 때 느낌이 아직도 크다. 중앙로를 상징적인 안전 광장, 민주주의 광장으로 만들며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은 국채보상로를 제안했다. 김 사무총장은 “국채보상로는 대구성 안쪽이고, 중앙로를 십자로 횡단하는 공간이다. 대구 역사가 축적된 공간”이라며 “시국에는 언제든지 전체를 광장으로 활용하고, 일상적으로는 대중교통전용차로로 활용할 수도 있다. 차로를 S형 곡선으로 만들어 곳곳에 포켓형 광장을 만들면 일상적인 소규모 광장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럼에 참석한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은 “(최근 시국대회 등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연대감의 크기도 광장의 크기와 관계있다고 생각한다. 대구 도심은 시민들이 모이는 공간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짜여있는 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더 큰 광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