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③]“일본 패배 원폭 때문 아냐···‘원폭 신화’에서 해방되어야”

[인터뷰] 코케츠 아츠시 일본 야마구치 대학 명예교수
“인류는 핵무기나 원전과 공존할 수 없다”
“핵과 함께 멸망이냐, 핵을 거절한 평화냐, 선택할 때”

20:31

“(2차 대전)일본 패배의 실제 이유는 원폭이 아니라 대對 아시아 전쟁, 특히 대對 중국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본 패배의 원인이 원폭에 있었다고 하고, 최종병기로서 핵무기에 대한 신뢰와 의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원폭 긍정 사상이라고 할까, 감정이라고 할 것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일본 패배의 심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쟁을 끝낸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인간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른바 ‘원폭 신화’의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케츠 아츠시(纐纈 厚, 66) 일본 야마구치 대학 명예교수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패배했다는 것은 전후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코케츠 교수는 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을 앞두고 합천에서 열린 ‘원폭자료관 개관 기념 국제포럼’에 참석해 ‘미국의 원폭투하와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 소재’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뉴스민>은 코케츠 교수와 인터뷰를 통해 노 교수의 주장을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코케츠 아츠시 교수는 5일 합천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패배했다는 것은 전후에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 ‘일본의 전쟁 패배가 원폭 때문이 아니다’, ‘중일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라는 주장은 낯선 학설이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부터 1937년 7월 중일 전면전 개시를 거쳐 1941년 12월 야마구치 현 이와쿠니 근해의 하시라지마 부근에 정박한 연합 함대 ‘나가토’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의 기습 명령에 따라 대對 영국·미국·네덜란드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전쟁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라고 호칭하는데, 일본군의 기세는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공세기에서 수세기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일본 패배의 큰 징조였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패배를 거듭하다가 패전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일본군의 전력도, 국력도 1943년 말에 이미 전쟁을 지속할 능력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그 후 일본의 전쟁은 말하자면, 패전을 늦추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1944년엔 이미 언제 패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대의명분 없는 전쟁은 단지 천황제를 국가지배 체제, 즉 ‘국체 수호’를 위한 전쟁으로서 지속됐을 뿐입니다.

= 그렇다고 한다면, 미국이 굳이 일본에 원폭을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일본 패배가 불가피하게 된 상황에서 미국이 원폭 투하를 단행한 건 일본 패배를 미국 혼자 실현시켜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소련에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폭은 일본에 투하한 거지만, 동시에 전후 아시아 지역의 주도권 확보를 목적으로 소련에 대한 위협 효과와 견제를 위해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알려지긴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이유는 전쟁을 조기에 종결짓고, 미군의 손실을 줄이기 위함이 아닌가?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8월 9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전쟁의 고통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젊은 미국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원폭을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전후 긴 세월을 거치면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되었고, 동시에 미국 국민들에게도 현재까지 원폭 투하 이유로 받아들여져 원폭 투하 긍정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미국의 원폭 투하 이유가 대세론을 얻게 된 데는 전쟁 당시 미 육군장관으로 있었던 헨리 스팀슨과 미 육군성, 미 국무성 고문을 역임했던 허버트 파이스의 저술의 영향이 큽니다. 특히 허버트 파이스는 원폭 투하 결정의 정통성을 과감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정통주의적 연구자’로서 평가를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폭 투하 이유에 대한 견해는 그것으로 고착된 건 아닙니다 가르 알페로비츠는 말 그대로 ‘원폭 외교(Atomic Diplomacy)’라는 저술을 통해 원폭 투하의 가장 큰 이유가 전후 예측된 소련과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확보하고 세계 정치에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페로비츠의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원폭 투하 이유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게 됐습니다.

▲코케츠 교수가 다른 발표자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 원폭 투하 이유가 소련 견제 목적이 있었다 게 지금 와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핵무기 폐기를 희망하고 있고, 원폭 투하가 결정적인 과오라는 걸 강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핵무기가 전쟁을 끝냈다는 ‘원폭 신화’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 종결과 직접 관련 없이, 다시 말해서 군사적으론 무의미하지만 정치적으로 의미 있다는 판단으로 원폭 투하가 강행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알려져야 합니다. 원폭 투하는 막대한 희생자를 대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땅을 빌려서 전후 세계 주도권 쟁탈전의 이정표로 실행된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핵무기 폐기 운동에 박차는 가해지지 않을 겁니다.

= 궁극적으로 핵무기 폐기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미 있는 주장이란 말인가?

단지 핵무기만이 아닙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이름으로 ‘핵의 공존’ 또는 핵과 함께 사는 선택을 굳이 하고 있는 세계가 존재합니다. 정말 ‘평화적 이용’이 가능할까요? 그 해답은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불가능했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원인을 단순히 기술적이고, 자연 재해의 문제로 왜소화할 것이 아니라 원래 핵무기든 원전이든 인류는 핵과 공존을 거부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와 안전을 획득할 수 없다는 걸,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류는 핵무기나 원전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핵으로 멸망할 것이냐, 아니면 핵을 거절하고 핵 없는 평화에 사느냐, 이 둘을 두고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벌써 오고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관련기사=[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①] 자료관 개관이 남긴 숙제···‘만든 거로 끝 아니`다’(‘17.8.6), [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②] “대한민국 정부가 원폭 피해자에 관심 가져야 해요”다’(‘17.8.6))